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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현의 '유럽돋보기'-11>천국의 데모 vs 지옥의 데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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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현의 '유럽돋보기'-11>천국의 데모 vs 지옥의 데모
'등록금 부담 강도 = 데모 강도' 등식의 타당성 공감
  • 유태현 기자 yuthth@hanmail.net
  • 승인 2006.12.06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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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생이’ 독일 대학생들이 최근들어 ‘독’을 내뿜고 있다. 60년대 베트남 전쟁 반대 데모 이후 거의 뜸했던 대규모 시위도 독일 전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독일 대학생들의 시위라고 하지만 집회 신고를 하고 구호를 외치는 것이 거의 전부다. 일부 과격파들이 경찰의 저지선을 뚫고 길거리로 뛰쳐나가기도 하지만 헬리콥터까지 동원한 공권력 앞에선 번번이 무너지고 만다.

    화염병과 각목이 난무하는 '시위 문화(?)'에 길들여진 우리네 눈으로 보면 수준 낮은 ‘범생이’놀음에 불과하지만 준법정신이 철저한 그네들에겐 이런 시위를 감행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사건’이다.

    이들이 ‘감히’ 시위에 나서는 이유는 거창한 정치ㆍ사회적 구호도 아니고 철저한 ‘민생고’ 때문이다. 대학이 등록금을 내란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들으면 참으로 웃기는 얘기다.

    독일 대학은 전통적으로 무료 교육이다. 대학을 4년 다니건, 10년 다니건 몇 과목을 수강하든 공짜다. 우리나라 돈으로 10만 원 정도 하는 학생회비만 내면 된다.

    학생회비 10만 원 내고 받는 혜택은 만만치 않다. 모든 교통비를 할인받을 수 있고, 학교식당은 시중의 10분의1 수준이다. 독일 내에서 뿐 아니라 거의 유럽 전역에서 이 같은 혜택을 받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학 문을 일찍 나설 필요도 없다. 학생 신분을 유지하면서 1~2년 ‘딴짓’을 하고 놀다가 다시 복학하고 다시 휴학하고 … 이런 일이 거듭되다 보니 학교를 10년씩 다니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등록금이 면제될 수밖에 없는 사회. 문화적 배경도 있다. 독일 사람들은 자식이 18세가 되면 독립시킨다. 대개 우리나라 중고등학교에 해당하는 김나지움이나 레알슐레를 졸업하는 나이다.

    그 이후로 아이들은 스스로를 부양해야 한다. 김나지움 졸업 후 바로 취직하면 문제가 없지만 대학에 가면 아르바이트 등를 하면서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

    그런 대학생들이 아르바이트로 등록금을 마련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정부 재정에서 등록금을 부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난 1989년 통독 이후 국가재정이 어려워지면서 궁여지책 끝에 대학 등록금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이다. 우선 이번 2006-2007학년도 겨울학기부터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니더작센, 바덴-뷔르템베르크, 바이에른, 함부르크 등 5개 주에서 대학생들에게 학기 당 500유로(원화 약 62만 원선)의 등록금을 부과했다.

    이중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과 니더작센은 신입생에게만 등록금을 부과하고 내년 여름학기부터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등록금을 받는다고 한다. 헤센과 자를란트도 내년 겨울학기부터 대학 등록금 제도를 잇달아 도입할 예정이다.

    이러한 추세라면 앞으로 독일 대학 전체에 등록금을 부과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대학생들이 길거리로 뛰쳐나갈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이다.

    우리나라도 이제 곧 2007년 봄학기 등록금 납부가 시작된다. 보통 독일이 부과하고 있는 등록금의 10배 수준이다. 매년 인상률이 두 자리 숫자다. 학부형들의 허리는 휘어질 대로 휘어지는데, 대학들은 흥청망청이라는 지적도 많이 나오고 있다.

    캠퍼스를 파헤치지 않는 대학이 없는 지경이다. 공사장 굉음 때문에 공부하기도 어렵다고 한다. 그래도 우리나라에서는 무턱대고 올려대는 그 등록금을 아무런 소리도 없이 다 부담하는 부모들이 많다. 그래봤자 고등학생 때 과외비에 비하면 ‘새발의 피’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그러나 부모들이 직장을 잃거나 사업에 실패한 가정, 집안 사정이 궁해서 500만~600만 원의 돈을 매년 두차례 부담할 수 없는 학생, 대학 재학 중에는 아르바이트 등 ‘딴 짓’ 보다는 공부에만 매달리고 싶은 학생들에게는 매년 1000만 원 이상의 등록금은 녹록지 않은 액수다.

    어디 그 뿐인가? 매년 치솟는 하숙비. 전월세 비용. 책값까지 합하면 등골이 휘는 정도가 아니라 부러질 정도다.

    독일 대학생들이 한국에서 1년만 유학하면 어떻게 될까? 등록금을 신설하는 자기 나라 정부와 대학당국에 대해 데모는 커녕 오히려 고맙다고 큰 절을 하지 않을까?

'등록금 부담강도=데모 강도'라는 등식의 타당성을 어느정도 확인한 셈이다. 재적.퇴학까지 불사하며 총장실을 점거해 농성을 벌이는 한국의 대학생들, 졸업을 해도 취직이 어려운 우리 대학생들의 투쟁은 데모라기 보다 차라리 '발버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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