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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만의 한방이야기> 어느 노부부의 '마지막' 손잡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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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만의 한방이야기> 어느 노부부의 '마지막' 손잡음
  • 박재만 객원칼럼리스트 csnews@csnews.co.kr
  • 승인 2006.12.11 07: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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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주 월수금 격일로 한방병원으로 내원할 수 없는 입원환자들을 침치료하러 병실 진료를 다닙니다. 며칠 전에 여느 때처럼 진폐증 환자가 있는 입원실에 진료갔다가 우연히 한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같은 입원실에 있는 다른 환자 옆에 실시간으로 몸상태를 표시해주는 기계가 있는 것으로 봐서 그 의식이 불분명했던 할아버지 상태가 위급해졌나 봅니다.

    옆 침대 환자의 보호자가 하는 말이 그 할아버지가 그동안 간병해온 할머니의 손을 1시간이 넘게 붙잡고 있더라는 겁니다. 눈물까지 흘리면서… 간간히 몇 마디 말을 던지고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틀 후 다시 그 입원실에 진료하러 갔더니 그 할아버지가 누워있던 침대는 비어 있었습니다.  어떻게 된거냐고 물어보니까 그날 저녁에 돌아가셨다는 겁니다.

    그 할아버지가 당신 돌아가실 줄 알고 자식들도 빨리 오라고 불렀는데 자식들이 하루 이틀 입원해있는 것도 아닌데 별일 있겠냐 싶어 돌아가시고 나서야 왔더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때 그 장면은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용서를 비는 거였다고 합니다. 할아버지가 할머니와 결혼해서 살면서도 새 여자를 만나 그 사이에 아이도 생겼는데 할머니에게 모든 뒷감당을 떠넘겼다고 합니다.

    노년이 되도록 그렇게 살아오다 어느날 갑자기 쓰러져 입원하고 나니까 1년 넘도록 똥오줌 다 받아내고 하루 온종일 병간호하는 것은 할머니였다고 합니다. 할아버지는 그동안 너무 미안했다고 죽기 전에라도 용서를 빌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사람이 죽기 직전에 갑자기 평소 안하던 행동을 하고 얼굴에 광택이 비치고 주변 정리를 한다고 합니다. 마치 촛불이 다 타 없어지기 전에 살아날 듯 반뜩이듯. 의식이 불분명한 환자라고 해서 생각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생각은 있으나 남이 알아차릴 만큼 표현할 수 없기도 합니다. 그러다 꼭 해야할 말이 있거나 해야할 행동이 있으면 그야말로 마지막 온 힘을 다해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의 마지막의 언행은 인생이 걸린 진심이 담기기 마련입니다.

    할아버지가 죽기 전에 할머니에게 평생 너무 미안했다고 용서를 빌었다고 해서 죽는 순간 할아버지 마음은 편했을까?

    평생 그리 살면서 결국 이렇게 가고 마는구나 싶었을 할머니의 마음은 또 어땠을까? 살아 있다면 미안한 마음을 대신해서 그 무엇이라도 할 수 있으련만, 살아 있기라도 한다면 당신 왜 그랬냐고 넋두리라도 실컷 하련만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더 이상 당신들의 마음을 담아 그 무엇을 할 수 없게 돼버렸습니다.

    문득 그 생각이 났습니다. 언젠가 인천에 갔다 지하철 막차를 타고 서울로 오고 있었습니다. 제 옆자리에 젊은 남녀가 앉았는데 얼핏 들리는 이야기가 그들은 신혼부부인데 남편쪽 친척들을 만나고 오는 모양이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왜 좀 상냥하게 못 하냐, 그때 꼭 그렇게 했어야 했냐는 등 아내에게 핀잔을 주는 것 같았습니다. 아내 역시 나도 노력 많이 했다며, 그럴 때 좀 도와주면 안 되냐는 식으로 언쟁을 하고 있었습니다.

    고개를 돌려 쳐다보기 민망해서 건너편 유리창으로 그들을 힐끗 쳐다보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놀랐습니다.

    귀에 들려오는 이야기들은 분명 집안이 걸린 부부싸움이라 핏대를 올리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 부부는 그 대화를 손을 꼭 잡고 하는 거였습니다. 그 신혼부부가 손을 잡고 있다는 건 니가 잘 했냐, 내가 잘 했냐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생긴 문제에 대해 함께 풀어가고 있는 중이라는 강한 메시지였습니다.

    싸우고 있는 그 신혼부부가 너무 행복해보였습니다. 아, 가까운 사람과는 저렇게 손을 잡고 싸우는 거구나 싶었습니다.

    며칠전 보았던 그 노부부의 손잡음은 평생을 함께 했던 그들이 함께했던 질퍽한 한 생을 한스러워하면서도 용서를 비는 원망과 화해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들도 그때 지하철에서 보았던 신혼부부처럼 다정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평생 손 한번 잡아주지 못하고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생의 마지막에서야 그 노부부는 손에 땀이 차도록 잡을 수 있었습니다.

    손을 잡는다는 건 너와 내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함께하고 있다는, 함께 했다는 강한 표현입니다. 비록 몸은 가셨지만 마음의 질퍽함은 조금이라도 덜어지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생의 마지막 생각으로 사후 49일을 산다는데 할아버지는 지금도 용서를 비는 그 심정으로 할머니를 다 떠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생의 마지막에 온힘을 다해 만든 기력으로 눈물젖은 용서를 빌었을 할아버지를 할머니도 용서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미안한 마음으로 할머니를 두고 가야했을 할아버지, 저 세상에서의 명복을 빕니다.

    지난 세월이 한스럽지만 할아버지를 용서했을 할머니, 기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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