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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곳칼럼] 신라면의 역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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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곳칼럼] 신라면의 역습
  • 뉴스관리자 csnews@csnews.co.kr
  • 승인 2011.04.28 08: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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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9월 15일. 삼양식품이 우리나라에 최초로 라면이라는 새로운 식량을 선보인 날이다. 이날 출시된 최초의 라면은 100g 중량에 10원이었다.

 

당시 삼양식품 전중윤 회장은 일본을 비롯한 동남아 지역을 돌며 먹거리 시장조사를 한 적있었는데 특히 일본에서 패전후 라면으로 식량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고 국내 생산을 결심했다고 한다.

 

당시 한국도 식량난이 심각해서 5원 짜리 ‘꿀꿀이죽’을 사먹으려고 노동자들이 장사진을 치는 일이 일쑤였다.

 

그러나 처음 출시된 라면에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한 끼니를 해결할 수있는 꿀꿀이죽보다 2배나 비싼데다 오랫동안 곡식 위주의 식사에 익숙하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밀가루로 만든 인스턴트 식품은 워낙 생소했기 때문.

 

회사 임직원들이 대로변에 점포를 설치하고 조리법을 알려주기도 하고 무료 시식회를 열어 겨우겨우 라면을 소개시켜 나갔다.

 

마침 1965년 식량난 해소를 위해 국가 차원의 대대적인 혼.분식 장려 운동이 시작되면서 라면은 국민 음식으로 자리잡아가기 시작했다.

 

라면 가격은 70년대까지 100원을 넘지 않았다. 워낙 서민음식이었던 탓에 가격이 조금만 올라도 소비자들이 민감하게 반응해 함부로 올릴 수없었기 때문이다.

 

과거 세계 챔피언을 꿈꾸던 헝그리 복서들의 스토리에 라면은 빠질 수없는 소재였고 가난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80년대를 넘어서며 라면값은 야금야금 오르기 시작했다. 150원대 짜장라면이 출시됐고 이어 1986년 신라면이 200원에 출시됐다.

 

이때쯤부터는 라면이 한 끼를 해결하는 구호식량이 아니고 기호품으로 변하던 시점이어서 가격 인상의 거부감을 덜어준 것도 ‘고가 라면’ 출시를 가능케한 요소였다,

 

200원 짜리 ‘고급 신라면’은 출시되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우리나라 대표 라면으로 자리매김했다.

 

신라면은 1986년 10월15일 출시된 이후 연간 8억 봉지가 국내에서 판매됐다. 지금까지 200억 봉지가 팔린 셈이다.

 

요즘 신라면이 시끄럽다. 농심이 신라면의 프리미엄급이라며 1천300원대의 신라면 블랙을 출시해 물가 두더기 잡기에 올인하는 정부의 눈총을 샀다.

 

공정거래위원회가  현장 조사에 나서고 농심이 광고한대로 영양가가 제대로 들었는지까지 파헤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농심의 사정도 딱하다.

 

25년전 200원이었던 신라면의 현재 가격은 대형마트 묶음단위 가격은 550원 정도, 편의점에서 낱개로 사면 650원 정도다.

 

가장 비싼 편의점 가격으로 해도 3.2배 오르는데 그친 셈이다.

 

이 기간 다른 물가의 상승률은 어땠을까?

 

1986년 최저임금제가 도입돼 1988년 첫 시행됏다. 당시 최저임금(시급)은 475원. 올해 확정된 최저임금은 4320원이다. 인건비가 23년간 9배 오른셈이다. 물론 이는 가장 단순직종을 기준으로 한 것일뿐 화이트 칼라나 기능직 임금은 이보다 오름폭이 훨씬 가파랐다.

 

당시 서울 압구정 현대아파트도 분양됐다. 1986년 144.7평방미터 현대아파트 분양가는 1억5천만원이었다. 현재 시세 17억2000만원에 견줘보면 12배가 오른셈이다.

 

심지어 라면의 원재료인 밀가루도 이기간동안 5.2배, 라면의 대체식인 자장면도 5.7배 올랐다.

 

신라면이 다중 소비 품목이어서 물가를 압박한다는 이유만으로 정부가 25년간 가격인상을 억눌러왔다면 이는 행정력의 남용이라고 밖에 봐지지 않는다.

 

더욱이 라면은 예전과 같은 식량의 개념도 벗어났다. 라면값이 오르면 최저생계 수준에 있는 사람이 굶어야 하는 상황도 아니다. 신라면이 출시됐을 무렵인 25년전 이미 상당부분 기호식품으로 진화했고 현재는 더더욱 그렇다.

 

이번 신라면 파문의 진원은 신라면이 아니고 신라면 블랙이다. 이 제품은 가격이 무려 1320원이나 한다. 기존 신라면보다 2.3배나 비싸다.

 

뭐 이러저러하게 맛과 영양을 보충했다고 하지만 소비자의 체감으로는 손이 움츠러들만 하다.

 

비싸면 그냥 신라면 먹으면 될 것아니냐는 것이 농심의 반론이지만 맛과 영양이 좋다고 하니까 옛날 신라면에는 손이 잘 안간다.

 

또 이전의 학습효과로 보면 어느 시점에선가 싼 신라면은 단종되고 비싼 신라면 블랙만 남아 결국 선택의 여지도 없어지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도 충분하다.

 

그러면 왜 이렇게 쏟아지는 화살을 맞으면서 농심이 비싼 제품을 내놨을까?  프리미엄 제품이라 소비자나 정부가 쉽게 양해하고 수용할 것이라 판단했을까? 신제품 출시 경험이 한 두번도 아닌 농심이 그럴리는 없다.

 

결국 25년간 억눌러온 가격 압박의 역습이 아닌가 생각된다.

 

지금 신라면보다 조금 비싼 800원 혹은 1천원짜리를 내놓았다면 4~5년새 금방 또 다시 가격인상 압박에 시달리게 되고 그렇다고 인상요인이 생겼을때 바로 바로 반영할 수있는 상황도 아니니 아예 10년, 20년치 인상분을 선 적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25년간 정부의 가격 압박이 결국 부메랑이 된 셈이다. 비정상적인 프로세스는 비정상적인 결과물을 만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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