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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곳칼럼]시장이 알아서 할 일을 구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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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곳칼럼]시장이 알아서 할 일을 구태여...
  • 최현숙 주필 csnews@csnews.co.kr
  • 승인 2011.05.23 08: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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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초년 기자 시절에 프랑스의 세계적인 디자이너 크리스찬 디올을 인터뷰한 적이 있었다.

국내 유명 화장품 회사와 제휴를 맺고 있던 크리스찬디올은 당시 향수 신제품 론칭 행사 차 한국을 찾았다.

당시 90년대 초반 오리지널 크리스찬디올 향수는 가격이 쌀 한 가마에 육박했고 국내에서 거의 귀부인들이 사용하는 고급품이었다.

별다른 품질 차이가 없어 보이는 국내산 향수는 그보다 10분의1가격도 안됐다.

내가 물었다. 크리스찬디올 향수가 왜 그렇게 비싼가? 특별한 원료를 사용하는가? 하고.

그가 대답했다. 우리가 파는 것은 향수가 아니라 ‘크리스찬 디올’이라고.

당시 그의 대답은 하나의 충격이었다. 상품 가격이 원료+토지(설비)+인건비+적정 마진으로 결정된다고 생각했던 나의 고루한 경제관이 뒤집히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그 후 20여년 경제기자 생활 내내 그 진가를 입증했다.

다방 커피 한잔이 1천원 남짓 하던 시절 갑자기 커피전문점이라고 하는 새로운 매장이 들어서더니 커피 한잔이 3천원으로 훌쩍 뛰었다.

제일 기가 막혔던 건 그렇게 비싼 커피가 셀프라는 것. 푹신한 소파에 기대고 앉아있으면 예쁜 아가씨가 와서 주문을 받고 친절하게 탁자에 놓아주는 서비스는커녕, 돈은 선불로 치루고 딱딱한 플라스틱 간이의자에 앉아 있다가 호명하면 재깍 카운터로 가서 커피를 받아와야 하는 시스템이 터무니없다 느껴졌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장사가 될까?

그러나 나의 예상은 다시 빗나갔다. 10년 만에 이 ‘엉터리’매장은 대박을 터트렸고 싸고 서비스 좋던 다방은 다 문 닫았다.

사람이 돈을 쓰는 기준이 그렇게 합리적이고 논리적이지만은 않다는 근거다.

요즘 회사 직원들이 뿔났다. 인근 식당 백반집이 점심값을 5천원에서 6천원으로 느닷없이 올린 것이다.

모두 6천원의 밥값이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아니다 다를까 항상 줄서서 먹던 그 식당의 손님이 팍 줄었다.

그러나 식당 밥값 1천원에 그렇게 민감한 사람들도 식사 후에는 3천원짜리 커피집으로 발길을 돌린다. 커피냄새가 은은한 매장의 창가에 앉아 먹는 커피 한잔에는 3천원을 군소리 없이 지불한다.

가격은 원료값+토지 (설비)+인건비 외에 아주 중요한 문화적 가치가 내재돼 있다. 소비하는 사람에 주는 만족감과 가치부여가 원료값보다 더 크게 작용한다.

그 원리가 반드시 화장품 액세서리 옷 등 패션상품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식품이나 가전제품 필기구 가구 등 모든 생필품에도 예외 없이 소비 결정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농심 신라면, 롯데제과 월드콘, LG생활건강 캔커피 등 몇 가지 프리미엄 제품의 가격해부에 나섰다는 뉴스다.

가공식품 업체들이 리뉴얼, 업그레이드, 프리미엄 등을 표방하며 제품의 가격을 올리고 있는 편법 인상을 원천적으로 막겠다는 취지다.

조사를 위해 공정위 직원들이 현장조사는 물론 해당업체들에 원료 성분에 관한 자료까지 요구했다는 소문이다.

공정위가 가공식품의 성분 분석과 영양성분 해부까지 담당해야 할 판이다.

사실 공정위가 이 같은 일을 한다는 것도 어불성설이지만 근본적으로 상품의 문화와 가치에 대한 몰이해라는 점에서 더욱 문제가 크다.

똑같은 성분의 제품이라도 브랜드에 따라, 문화적 가치에 따라 가격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고 소비자들은 그에 대한 지불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다만 물가상승을 억제하려는 목적이라면 이들 업체들이 가격이 오르지 않은 종전 제품을 단종하지 않도록 감독하는 일이 감독기관의 본연의 임무일 것이다.

가격이 오른 신제품을 출시한 뒤 예전 제품을 곧바로 단종해서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막는 편법만 막으면 그 뿐이다.

가격을 왕창 올린 신제품이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건 받지 못 하는 것은 시장에 맡겨둬야 할 일이다.

제품의 인기만 믿고 가격을 올렸다가 경쟁제품에 밀리거나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해 아예 궤멸해버린 상품도 얼마나 많은가?

얼마 전 LG생활건강의 섬유유연제 샤프란이 30년 아성의 피죤을 넘어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는 보도가 터졌다.

30년 아성이 힘없이 무너진 이유는 단 하나, 피죤이 가격을 올렸기 때문이었다.

무리한 가격인상이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은 것이다.

시장은 잘 작동하고 있다. 공정위가 성분분석을 하고 영양가를 따지는 등 손을 대지 않으면 물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을 거란 ‘우려’도 말하자면 일부 기우가 가득한 건 아닐까 ‘우려’해본다.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최현숙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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