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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곳칼럼]이 시대에는 왜 입바른 호통이 없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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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곳칼럼]이 시대에는 왜 입바른 호통이 없는걸까?
  • 뉴스관리자 csnews@csnews.co.kr
  • 승인 2012.03.01 09: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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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한 정주영 명예회장과 관련해 전해지는 에피소드 한가지. 

 

정 회장은 형제가 무려 8남매였다. 물론 정 회장이 장남이어서 7명의 동생이 있었다. 막내동생인 정상영 현 KCC명예회장과는 무려 21살이나 터울이어서 ‘막둥이’에대한 정 회장의 애정이 깊었다고 전해진다.

 

그런 정주영 회장이 막내동생을 호되게 나무란 사건이 있었다.

 

22살의 나이에 ‘금강스레트공업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일찍 사업에 투신한 정상영 회장은 당시 새마을 운동으로 스레트 수요가 폭증해 사업이 단박 궤도에 오르자 슬며시 신사업에 눈독을 들였다.

 

바로 초컬릿 사업이었다. 외국에서 막 수입되기 시작한 초콜릿이 부유층들의 입맛을 사로잡으며 돈을 주워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열심히 시장조사를 하고 사업 준비를 하고 있다는 소식이 정주영 회장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정 회장은 당장 정상영 회장을 불러놓고 “초콜릿은 네가 아니어도 할 사람이 많다. 이왕 사업을 할거면 국가경제에 도움되는 것을 하라”고 호되게 몰아쳤다.

 

큰 형님을 아버지처럼 따랐던 정상영 회장은 그 길로 사업을 즉시 접고 이후로는 ‘아무나 할수있는’사업은 결코 쳐다보지 않고 건축·산업자재 국산화 한 우물만 팠다고 한다.

 

LG그룹사에도 비슷한 에피소드가 전해진다.

 

LG화학은 한 때 자회사를 통해 '비데' 사업을 했다. 욕실 타일 욕조등을 만들다 보니 비데가 잠재 성장 품목으로 눈에 꽂힌 것이다.

 

LG그룹의 품위에 맞지 않는다는 구본무 회장의 호된 질책을 받고 사업을 바로 접었다.

 

재계 역사를 뒤적이다보면 과거로 갈수록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나름의 사업 규율이 있었다.

 

어느 정도는 다른 기업의 영역을 인정해주며 겹치지 않게 하려는 일말의 노력이 엿보인다.

 

더욱이 사치품 고가 소비재등 국민정서상 거부감을 주고 ‘체면에 맞지 않는’사업은 자제했다.

 

가장 금기시한 것은 소시민들이 먹고 사는 소소로운 사업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국내 초장기 재벌가들이 식당 다방 수퍼마켓 세탁소사업을 했다는 얘기를 거의 들어본 적이 없다.

 

사업에도 나름대로의 건강한 생태계가 유지된 셈이다.

 

재벌이 수출로 큰 돈을 벌면 사람들을 많이 채용했으며 일자리를 찾은 사람들은 월급을 타서 안정적으로 밥을 사먹고 커피를 사먹으면서 재벌이 번 떼 돈의 일부가 자연스럽게 자영업자의 골목까지 스며들었다.

 

재벌이 수출로 번 떼돈이 서민경제의 초석이 된 셈이다. ‘산업보국(産業報國)'이란 말이 실감나는 시대였다.

 

그러나 재계의 세대교체가 거듭되면서 이같은 생태계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고 있다.

 

2세 3세로 분화한 젊은 재벌들은 더 이상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거대 산업보다 대자본만 있으면 손쉽게 손을 벌 수있는 감각적 비즈니스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바로 사치업 아니면 소시민 업종이다.

 

선진 외국에서 유학해 사치품에 밝은 그들은 자신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을 겨냥한 온갖 사치업종에 뛰어들어 시장을 넓혔다.

 

그들의 사치산업은 우리사회에 경제적인 이유말고도 온갖 사회적 풍상을 불러왔다.

 

된장녀 신드롬 같은 것이 바로 그것. 소득이 따라주는 않는 과소비를 부추겨 가계를 지속적으로 압박하고 누구에게나 박탈감을 안겨주고 있는 것

 

그러나 그정도의 풍상은 오히려 사치스럽다.

 

재벌의 막장사업은 바로 서민들의 삶을 갉아 먹어 생계를 위협하는 것들이다.

 

젊었을때 빵집 점원으로 들어가 어깨 너머로 기술을 배우고 월급모아 조그만 내 가게 하나 열고 아침부터 밤까지 부부가 매달려 가꾸던 가게들이 몰살당했다.

 

근면함과 악착스러운 대표 소시민 업종이던 구멍가게도 불도저로 밀듯 모두 엎어지고 있다.

 

일부 재벌들은 항변한다. 우리가 커피점을 했지만 골목 근처에도 안갔다고.

 

물론 그들의 럭셔리 커피점은 골목까지 갈 형편이 안된다. 한잔에 4천~5천원 짜리 커피를 사먹을 골목대장이 많지 앟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커피점을 스스로 열지 않았다면 그 자리엔 어떤 소시민이 운영하는 커피점이 들어가 한 가정의 생계나마 지켜낼 수있었을 것이다.

 

“초콜릿은 네가 아니어도 할 사람 많다. 이왕 사업을 할거면 국가경제에 도움되는 것을 하라”는 호통이 이 시대에는 왜 없는지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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