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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곳칼럼]이장님과 워런버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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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곳칼럼]이장님과 워런버핏
  • 뉴스관리자 csnews@csnews.co.kr
  • 승인 2012.04.24 08: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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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모처럼 고향마을에 갔었다. 친척중에 한분이 환갑을 맞아 축하 인사차 다녀왔다.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중 나도 잘아는 마을 이장님이 2일전 서울 큰병원으로 수술하러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놀라서 무슨 수술이냐고 물었으나 마을에 아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당연히 무슨 병인지도 모르는 채였다.

 

같은 마을 사람들끼리 너무 무관심한 거 아닌가 싶은 심사 때문에 약간 삐딱해졌다.

 

“물어보고 위로 좀 해주지 그러셨어요”

 

그러자 하나같이 “본인이 얘기안하는걸 어떻게 물어봐”

 

#투자의 현인으로 불리는 워렌 버핏은 지난 17일간 주주들에게 서한을 보내 생명에는 위협이 없는 전립선암 1기 진단을 받았다고 공개적인 서한을 보냈다

 

버핏은 서한에서 "‘전혀 생명에 지장이 없으며 심지어 어떤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되지도 않을 것’이라고 의사들이 말했다“고 전했다.

 

또 7월 중순부터 두 달간 방사선 치료를 받아 여행을 못 가겠지만 다른 일상생활에는 전혀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병을 대하는 한국인과 서구인들의 의식을 차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국인은 병을 ‘사유화’ 한다. 철저히 사적인 영역에 머문다. 또 워낙 터부시 되는 까닭에 남들이 쉽게 물어보지도 못한다. 본인이 내켜서 먼저 말하면 모르지만 구태여 물어보는 것도 예의에 어긋나는 것으로 간주된다.

 

위중한 병일수록 더 그렇다. 가벼운 감기나 알레르기 비염정도를 쉬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 때문에 말을 안하면 더 무서운 상상이 곁들여지기도 한다. 또 그 상상이 소문이 되어 실제보다 상황이 부풀려지기도 한다. 살아서는 물론 죽어서도 병의 언급은 터부시된다.

 

유명인들의 부고 기사에도 대부분의  사인이 의학사전에도 없는 '숙환' 이다. 오죽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치명적인 병이 숙환이란 유머가 나오기도 한다. 숙환으로 돌아가시지 않은 사람이 없기 때문에 숙환은 사망률 100%인 병인 셈이다.    

 

그러나 워린 버핏의 경우처럼 서양에서는 보다 개방적이다. 자신의 약점으로 작용할 수있는 사안이지만 대부분 ‘팩트’를 알린다.

 

실제로 워런 버핏이 전립선암 발병 사실을 알린 직후 시장은 조심스럽지만 부정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일부 투자자들은 워런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 해서웨이에대해 내재가치가 타격을 받을 것이라며 포지션을 재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많은 주주와 투자자들이 워런버핏에 후계자를 밝히라고 압력을 넣고 있다는 보도도 이어졌다.

 

어쨌든 워런버핏 입장에서는 발병에따른 정신적 충격과 사회적 대응을 함께 고민해야 하는 이중부담을 안게 된 셈이다.

 

그렇다면 워런 버핏은 왜 발병 사실을 밝혔을까? 위중한 병세도 아니라면 마을 이장님처럼 철저히 개인 프라이버시속에 묻어둘 수도 있었을 사안이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흔하지 않지만 서양에서는 이런 일이 드물지 않다.

 

2004년 작고한 미국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작고하기 10년전 알츠하이머(노인성 치매)에 걸려 투병중이라고 알려 세계인의 안타까움을 사기도 했다.

 

작년 세상을 떠난 애플의 창업주 스티브잡스도 마찬가지다.

 

2004년 췌장암 진단을 받은 후 이를 세상에 알렸고 수술과 투병생활에대해서도 ‘팩트’를 숨기를 않았다.

 

그럼 이들이 남들과는 한 차원 다른 비범한 사람들이어서 그런 것인가?

 

작년말 국내에서도 개봉된 미국 영화 50대50을 보면 그렇지도 않다.

 

27살의 주인공 아담은 술도 마시지 않고 담배도 피지 않으며 교통사고에 대한 우려로 운전면허 조차 없는 평범한 라디오 작가이다.

 

그런 그가 느닷없이 척추암에 걸린다.

 

암을 고백하자 애인은 금새 다른 남자를 만나며 아담을 떠나고 만다.

 

평범한 사람들도 이점에서는 세계적인 유명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 싶다.

 

이처럼 자신에게 치명적 부메랑이 될수도 있는 ‘지병’을 고백하는 서양인들의 심리적 배경은 무엇일까?

 

필자 개인적으로는 사회적 책임 의식이 다르지 않은가 생각한다.

 

한국인에게 내가 책임져야 하는 범위는 자신과 가족 뿐이다. 서양인의 책임의식은 그보다 좀 더 넓은 사회까지 확장되는게 아닌가 싶다.

 

내가 사장이라면 나 자신과 가족외에 내 회사, 종업원, 주주, 투자자 이런 ‘관계망’속에 있는 사람들에대한 책임, 내가 작은 직분을 갖고 있는 종업원이라도 내가 종사한 업무의 영속성, 주변 동료, 거래 상대방등에대해서도 책임의식이 발동하는 건 아닐까?

 

그렇게 따지면 마을 이장의 사회적 책임도 역시 적지 않을 것인데...이장님은 아무 말도 안남기고 홀연히 떠났다.

 

이장님에게 자신의 책임은 철저히 자신과 가족으로만 좁혀져 있었던 것일까? [마이경제뉴스/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최현숙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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