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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곳 칼럼]재벌가의 현대판 '분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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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곳 칼럼]재벌가의 현대판 '분재기'
  • 뉴스관리자 csnews@csnews.co.kr
  • 승인 2012.07.27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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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말 인기리에 방영됐던 ‘공주의 남자’ 드라마에 경혜 공주가 등장한다. 문종의 딸로 남편인 영양위 정종(鄭悰)과 동생 단종을 비명에 잃은 비운의 주인공이다.

드라마에서 경혜공주는 남편 정종이 단종 복위 사건에 연루돼 모반대역죄로 능지처참된 뒤 관비가 된 것으로 나와 많은 시청자들의 안타까움을 샀다.


그러나 최근 경혜공주가 죽을때까지 공주의 신분을 그대로 유지했다는 문서가 발견돼 화제다.

바로 경혜공주가 1473년 죽기 직전 유일한 혈육인 아들 정미수에게 재산을 물려주면서 작성한 분재기가 발견된 것.

분재기(分財記)가 무엇일까? 바로 물려줄 재산을 기록한 문서다.

공주는 분재기에서 “내가 불행히 병이 들어 유일한 아들인 미수가 아직 혼인도 못했는데 지금 홀연히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며 “노비는 갑작스러운 사이에 낱낱이 기록해 줄 겨를이 없어 정선방(貞善坊·조선시대 한성부 중부 8방 중의 하나)에 있는 하사받은 가사(家舍·집)와 통진(지금의 경기 김포)에 있는 밭과 땅을 먼저 허락해 준다”고 썼다.

경혜공주는 또 정선방에 있는 집은 자기가 죽은 뒤 사당을 세워 제사를 지내고 자손에게 전하며 오래 지니고 살라고 당부했다.

공주가 외아들에게 집과 땅을 물려주고 돌아가셨음으로 적어도 관노는 아니었다는 증거가 된 셈이다.

분재기는 조선시대 양반들이 재산의 상속과 분배를 기록한 문서다.

조선시대 분재기는 많은 문서들이 발견 보관되고 있다고 하는데 분재기를 통해 본 당시 재산상속의 내역은 가옥·토지·노비·가재도구 등인데 주로 상속대상은 노비와 토지였다고 한다.

분재기는 크게 화회문기와 분급문기라는 것으로 나뉜다.

화회문기는 재주(財主)인 아버지가 사망한 뒤에 어머니와 자녀의 화회에 의하여, 또는 부모 모두의 사망 뒤에 형제자매의 화회에 의하여 재산을 분배하는 문서이다. 즉 상속 문건이다.

재산은 재주의 생전에 재주의 의사에 의하여 분재되는 경우도 적지 않으나, 생전에 분재의 지정이 없었던 경우에는 죽은 뒤에 그 자녀들의 화회에 의하여 분배한다.

화회문기는 대개 부모의 사망 뒤 3년 상을 마친 뒤에 작성됐다.

분급문기는 재주가 살아 있을 때 자녀들에게 재산을 나누어주는 문서이다. 지금으로 따지면 증여에 관한 문서다. 재주가 자손에대한 당부 등을 적고 다음에 피상속인별 분재수량을 적는다.

분재기에 나타난 조선시대의 상속의 또 다른 특징은 적어도 17세기까지는 남녀가 상속에서 별달리 차별을 받지 않았다는 점이다.

조선 성리학의 거목 퇴계 이황의 경우 6천석을 거두는 천석꾼이었고 노비의 숫자만도 367명에 달하는 ‘재벌’이었다.

부모로부터 받은 재산과 함께 어머니와 두 아내, 며느리 모두 안동권 명문사족의 규수로 평등하게 재산을 분배받아 그같은 부를 축적했다고 한다.

최근 국내 재벌과 기업 CEO의 경영성과 순위를 매김하는 사이트 ‘CEO스코어’가 국내 재벌 그룹의 재산 증여 현황을 조사 발표했다.

일감 몰아주기 등 재벌들의 편법적인 상속 증여 문제가 사회문제화 되고 대선을 앞둔 유력 후보들이 재벌 개혁의 기치를 높이 든 경제민주화를 경쟁적으로 부르짖고 있는 가운데 나온 따끈따끈하고 흥미로운 자료여서 눈길을 쓴다.

CEO스코어가 만든 현대판 분재기 ‘20대그룹 자산 승계율 순위’ 에 따르면 롯데 두산 KCC 효성 동부등 중위권 그룹들의 자산 증여 속도가 높았다. 이미 자식들의 재산이 아버지의 재산을 추월했다.

분재기중 재주가 생전에 자식들에게 재산을 분배하는 분급문기에 해당하는 자산분배가 이루어진 셈이다.

대부분 재주(경영주)의 나이가 많은 그룹들이다. 롯데 신격호 총괄회장은 90살, 두산 박용곤 명예회장은 80살, KCC정상영 명예회장 76살, 효성 조석래 회장 77살 등이다.

반면 상위 재벌들의 자산 승계는 크게 더디다.

'CEO스코어'에 따르면 삼성 30%, 현대차 58%, LG 37%에 불과하고 그나마 SK그룹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물론 이건희 회장 70살, 정몽구 회장 74살, 구본무 회장 67세 등으로 승계율이 높은 그룹보다 재주의 나이가 조금 젊은 탓도 있지만 자산의 덩치가 워낙 커서 물려주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옛 말이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면 3가지를 잃는다고 했다. 하나는 자식이요 둘은 인생 세 번째는 재산이었다.

그러나 그도 그야말로 옛 말에 불과한 모양이다. 재벌들이 1대 2대 3대 4대를 내려가며 세세손손 부귀영화를 누리며 잘 사는걸 보면…

[마이경제뉴스팀/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최현숙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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