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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소비자 피해 제보와 ‘뫼비우스의 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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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소비자 피해 제보와 ‘뫼비우스의 띠’
  • 백진주기자 k87622@csnews.co.kr
  • 승인 2014.02.20 08: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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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속담이 있다. 결과만 좋으면 수단과 방법, 과정은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다.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시급했던 개발도상국 시절에 몸에 배여 있던 ‘빠르게, 더 빠르게’의 관습에 젖어 크고 작은 문제가 생길 때마다 우리 사회의 일면을 꼬집으며 등장했던 속담이다.

이제는 옛날 옛적의 이야기가 됐을 듯싶지만 지금도 별반 다를 게 없다.

소비자 피해 제보를 기반으로 취재하는 기사를 수년간 다루다보니 기사화 이후 업체 측에서 가장 많이 쏟아지는 항의가 바로 “잘 해결됐는데 왜 기사화를 했느냐?”라는 내용이다. 과정이야 어찌됐건 간에 마지막에 소비자와 원만하게 민원을 해결했으면 그만이지 않느냐는 항변이다.

반론 요청에 어영부영 시간을 끌면서 그 와중에 협상(?)를 진행한 후 크든 작든 보상을 받은 소비자의 심리를 악용해 기사화에 동의하지 못하도록 압박하기도 한다. 한발 더 나아가 이미 보도된 기사를 두고 뒤늦게 ‘해결’을 이유로 삭제 요청을 하는 터무니없는 경우도 적지 않다.

어떤 원인으로 문제 제기가 됐는지, 어떤 과정을 통해 개선이 가능할지에 대한 점검 없이 민원 소비자 한 두 명의 입만 막는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는 것을 그들 역시 모르지는 않을텐데 말이다.

다음으로 많은 항변 내용이 바로 “예외적인 한시적 문제”라는 말이다.

수십만 개씩 판매된 제품, 수천 개의 상황 중 벌어지는 극히 일부의 문제를 지나치게 확대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다.

'별난 소비자가 트집잡은 특이사항'이 아니라는 건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유사 민원을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본지에는 하루에도 150여 개가 넘는 소비자 피해 제보 글이 줄을 잇는다. 물론 그 중에는 관련 규정을 무시한 채 소비자는 왕이라는 식으로 무조건적인 해결을 요구하거나 환불 등 규정을 사전에 꼼꼼히 확인하지 않아 벌어진 일임에도 업체 측 선처를 바라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버젓이 법적 규정 안에 있고 업체 측 잘못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소비자의 이해와 양보만을 강요하거나 되레 소비자 탓으로 돌려세우는 사례가 분명 더 많다.

수많은 소비자 민원이 끝없이 반복되는 이유는 업체와 소비자가 똑같은 사안을 바라보는 시각의 격차가 극명하다는 데 있다.

소비자들이 격분하는 부분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엉뚱한 곳만 긁어봐야 고객 만족, 소통 경영이라는 그럴 뜻한 말은 말장난에 그칠 뿐이다.

일례로 최근 대형 온라인몰의 경쟁이 심해지면서 재고 관리의 허술함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배송되기만을 기다리는 소비자들이 ‘품절’이라며 일방적으로 구매 취소를 안내받는 사례가 부지기수다.

표면적으로 소비자들이 손해를 본 건 없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피해를 본 건 확실하다. 제품을 검색해 가격 등 조건을 비교하고 배송될 때까지 기다린 시간과 노력은 누가 보상해 주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보상책이 있을 리 만무하다. 업체 측의 형식적인 ‘죄송하다’, ‘시스템을 개선하겠다’ 한마디면 끝이다. 

기사보도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해도 꿈쩍도 않는 배짱 두둑한 업체들도 많다보니 앞뒤야 어찌됐건 뒤늦게라도 민원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분명 가상하다.

그러나 한시적인 일부의 문제라고 애써 자신들을 속이며 코앞에 닥친 문제만을 덮기에 급급해서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불가능하다.

작은 구멍에서 시작된 누수가 댐을 무너뜨리는 것처럼 1~2건으로 시작된 ‘작은’ 문제가 구조적인 문제로 드러나는 경우를 숱하게 봐왔다.

하나 둘 제기되는 작은 소비자 민원에 처음부터 귀 기울려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언제가 됐건 수천, 수만 건의 민원이 되어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다. 무한순환되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말이다.

그 과정에서 더 많은 비용과 시간이 필요함은 물론 떨어진 신뢰 회복에 고전해야 한다는 사실은 이미 수많은 본보기들이 있다.

한 개그프로그램의 유행어가 이 상황에 절묘하다싶다. '모조리 잃어봐~~야 정신 차리지?'

[소비자가만드는신문=백진주 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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