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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메르스 공포와 '눈먼자들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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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메르스 공포와 '눈먼자들의 도시'
  • 김순자/ 평택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csnews@csnews.co.kr
  • 승인 2015.06.10 16: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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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한 도시에서 차를 몰고 가던 한 회사원이 갑자기 앞을 볼 수 없게 된다. 한 남자가 나타나 그를 도와 집까지 데려다 주지만 그 남자는 차를 훔쳐 달아난다. 이 회사원은 병원을 찾았지만 의사는 증상의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한다. 다음날 진료를 했던 의사를 비롯해 감염자와 접촉한 사람들은 모두 앞을 볼 수 없게 된다.

소위 백색 질병에 사람들은 연쇄적으로 전염돼 하루 만에 수백 명이 감염된다. 발병 원인은 알 수 없고 갑자기 눈이 멀게 되는 병의 특성 때문에 사회전반에 공포심과 불안은 확산되고 사회질서는 급속히 붕괴된다.

정부는 전염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환자들을 수용소에 격리 감금시킨 후 억압적이고 서투른 방식으로 수용소 바깥에서 질서를 유지시키려고 한다. 더 이상 환자를 수용할 수 없는 수용소는 위생상태, 생활 조건, 도덕성은 급격하게 나빠진다.

식량부족이 부족해지자 수용자들 간에 힘의 논리로 지배와 피지배관계가 생긴다. 수용소 안에서는 총을 가진 도당들이 식량배급을 조종하고 동료 수용자들을 지배하고 강간과 약탈을 일삼는다. 마침내 반기를 든 수감자가 수용소에 방화를 하게 된다.

방화로 인하여 환자들은 탈출을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감독하던 군인들도 전염의 공포로 이미 떠나버린 것을 알게 된다. 동물과 다를 바 없는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과 인간의 존엄성이 사라진 수용소 안의 적나라한 모습이 드러난다. 수용소 외부의 도시도 먹을거리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과 무법과 무질서로 완전히 폐허로 변해있다.

위 내용은 1998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포르투갈의 작가 사라마구의 소설 '눈먼자들의 도시' 줄거리이다. 다행히도 소설에서는 사람들이 시력을 다시 회복하는 것으로 결말이 난다.

특히 소설의 도입부분은 마치 메르스의 공포와 불안에 떨고 있는 요즘 우리사회의 모습과 흡사하다. 연일 뉴스나 신문의 헤드라인은 온통 메르스 소식으로 가득하다. 여기에다 SNS에서 떠도는 각종 루머와 괴담 그리고 언론 매체의 과도한 보도는 확대 재생산되어 사회전반에 공포심과 불안은 확산되고 있다.

사람들은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고 다니고, 공기를 들이마시면 모두 전염될 것 같이 불안해 한다. 진원지인 병원과 이 지역의 초중고 대학까지 모두 휴학에 들어갔다. 백화점은 임시휴업을 하고 거리와 식당에는 손님의 발길이 드물다고 한다. 경기가 다시 침체되고 평택노선의 고속버스도 매우 한산하다고 한다.

뉴스보도에는 메르스의 진원지인 평택의 번화가는 텅 비었고 평택에 들어가면 바로 메르스에 걸릴 것처럼 생각하게 한다. 평택에 살고 있다 보니 지인들로부터 여러 통의 안부전화를 오랜만에 받았다. 평택을 탈출해야 되지 않느냐며 건강을 조심하라고 염려를 해준다.

전염성이 강한 병이라면 평택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엊그제 해질 무렵 안성천을 따라 평택호 근처로 자전거를 타러갔다. 메르스 공포 때문인지 사람이 거의 없는 강변은 한산하고 평화로웠다. 평택의 풍광을 바라보며 선선한 바람을 맞고 망초와 이름 모를 꽃들이 열병하듯 양옆에 줄지어 서있는 안성천을 따라 자전거를 타며 서쪽으로 넘어가는 일몰을 유유자적하게 즐겼다. 공기를 통해서 오염되었다면 벌써 병원에 가있어야 하리라.

지금 언론은 메르스에 관한 추측보도나 확대보도로 대중들을 불안에 떨게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과대 보도를 자제하고 일파만파 퍼지는 공포나 불안 심리를 조성하지 않는 정확한 보도와 해결책에 대한 보도를 듣고 싶다. SNS의 잘못된 루머나 정치적인 이용은 사람들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 것이다.

우리는 이미 광우병파동으로 촛불집회 등 국가적으로 혼란을 겪은 전례도 있다. 광우병으로 시민은 과연 몇 명이나 사망했는가. 메르스도 광우병 파동처럼 언젠가는 진정될 것이다. 성경의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구절처럼 메르스 사태 또한 지나갈 것이다. 다만 메르스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감염자들은 격리 수용되는 사람도 있지만 본인이 증세가 나타났을 때 스스로 격리요청을 해야할 것이다. 감염에는 관료나 권력자들도 예외는 아니다. 그리고 일반인들이 안심할 수 있도록 보건복지부의 정확하고 적절한 진단과 정부의 적절한 대책, 그리고 언론의 자중을 기대해본다. 그리고 시민들도 현명하게 판단하고 차분하게 현재의 상황을 대처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이 위기를 함께 극복할 수 있으면 좋겠다.

[김순자 교수 / 평택대학교 교양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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