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뿐 아니라 대부분 업체들은 소비자가 제조물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 제품 영수증과 병원 치료비 영수증, 진단서 등 증빙자료를 요구한다. 소비자의 주장만 듣고 보상을 하기 어려운 만큼 제품과 병의 인과관계를 입증할 수 있는 근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과관계를 증명할 진단서를 떼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병원에서 발급하는 진단서에는 병명이 기재돼 있지만 ‘무엇 때문에’라는 원인을 기재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발병 원인과 시기를 환자의 진술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의사로서는 어떤 음식을 섭취, 또는 어떤 제품을 사용해서 병이 발생했다고 작성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음식을 먹고 식중독에 걸렸다 해도 원인이 다양하고 잠복기나 발병시간도 다르기 때문에 ‘바로 그 음식’을 먹고 탈이 났다는 증거를 찾기가 쉽지 않다. 병원에서는 ‘감염성 및 상세불명의 위장염 및 결장염’, 즉 원인을 알 수 없는 복통 및 장염이라고 기재해주는 것이 대부분이다. 진단서 작성으로 인해 법적인 책임까지 질 수 있어 방어적으로 작성할 수 밖에 없는 셈이다.
최근 이슈가 된 햄버거병(용혈성 요독성 증후군. HUS)도 진단서에 정확한 원인이 기재되지 않아 보상을 받지 못한 경우다. ‘햄버거병’으로 알려진 HUS를 주장한 피해자는 맥도날드에 진단서를 가지고 보상을 요구했지만 맥도날드는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다며 보상을 거부했다. 진단서 상에 병명인 HUS는 적혀 있었지만 ‘맥도날드에서 먹은 햄버거 때문’이라는 기록은 없었다.
제품에서 중금속 등이 검출됐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만약 피부병이 발생했다 하더라도 어디까지가 제품으로 인한 병인지 증명하기 쉽지 않다.
진단서를 통해 입증이 어렵고 업체 측이 보상을 거부한다면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소비자가 해당 음식 이외에 다른 음식을 먹지 않았다거나, 다른 음식에 문제가 없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다만 지난 3월 제조물책임법이 개정되면서 피해자 입증 책임이 완화되고, 제조물 결함에 대한 공급자 책임이 강화되는 만큼 진단서 등 보상 규정도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업체 관계자는 “현재 소비자분쟁해결기준 등에 따라 최대한 소비자 보호를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업체 입장에서도 입증할만한 근거 등 기준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라며 “진단서가 명확하지 않아도 도의적인 차원에서 보상을 해주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 = 문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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