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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과거에서 배워야할 것들

김정원 평택대학교 피어선칼리지 교수 csnews@csnews.co.kr 2017년 10월 22일 일요일 +더보기

요즘 신문 국제 면에서 미얀마 로힝야 족을 자주 접하게 된다.

로힝야 족은 미얀마 정부군과의 충돌로 많은 사상자와 피난민이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미얀마 동쪽 해안 지역인 라카인 주에 주로 살고 있는 소수 민족으로 원래는 방글라데시 등 벵골만 인근 지역이 주된 거주지였다.

미얀마 민족은 전형적인 불교도인데 반하여 로힝야족은 이슬람교를 믿으므로 미얀마 정착이 쉽지 않았다. 영국이 미얀마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버마 족을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로힝야 족을 대거 이주 시켰다. 이들을 앞세워 버마 족을 탄압한 것은 물론 무장한 로힝야 족을 앞세워 삼만 명에 가까운 버마 족을 학살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1948년 미얀마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하자 버마족의 로힝야 족에 대한 복수가 시작됐다. 로힝야 족의 시민권을 박탈하고 로힝야 족의 인구 증가를 막기 위해 두명 이상 출산을 하면 징역형에 처하기도 했다. 또 학교에서는 로힝야 어 수업을 중단시켰고 이사나 결혼도 마음대로 할 수 없도록 했다.

핍박이 이어지자 로힝야 족은 무장 단체를 만들어 정부에 저항을 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백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방글라데시 등지로 탈출을 할 정도로 위기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로힝야 족 사태는 영국의 식민 지배가 만들어낸 산물이지만 미얀마 인이나 로힝야 족 모두 역사의 피해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잘못된 과거를 바로 잡겠다며 피해자가 다른 피해자들에게 책임을 묻고 있는 것이다.

종족간의 갈등으로 지난 1994년 불과 3개월 만에 백만 명이 ‘인종 청소’를 당한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 르완다 사태도 세계 역사상 결코 잊을 수 없는 비극이다.

평화롭던 이 나라의 참극은 독일과 벨기에가 번갈아 통치하면서 발생하기 시작한다. 평소 사이가 괜찮았던 후투족과 투치족에 대해 종족 차별 정책을 펴면서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고 결국 서로에 대해 무차별 학살을 하는 초유의 대 참사가 일어난 것이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의 학살이기도 했지만 학살 행태도 끔찍했다. 마치 지옥과도 같았던 르완다가 대학살 20여년이 지난 지금은 아프리카에서 가장 투자하기 좋은 나라로 우뚝 섰다. 용서와 화합으로 그 힘든 아픔을 이겨낸 것이다.

전통적인 재판제도를 활용해 학살 관련자가 사실을 인정하고 용서를 빌면 대체로 낮은 징역형이나 공익형 노역을 선고했다. 또 가해자가 피해자 집에서 노동을 제공하거나 소 같은 재산을 제공하는 방법도 동원됐다.

여기에다 십만 명가량 되던 사법 처리 대상 중 잘못을 고백한 사람은 어려 차례에 걸쳐 석방하기도 했다. 자신들의 가족을 죽인 결코 잊을 수 없는 원수들이었지만 용서라는 방법으로 국가 재건에 뜻을 같이 했던 것이다.

요즘 우리나라 정치권은 지난 정부의 과거사 파헤치기로 나라 일은 거의 뒷전이다. 여권에서는 전(前) 정부를 넘어 전전(前前) 정권을 겨냥하더니 이에 질세라 야권에서는 전전전(前前前) 대통령의 뇌물 수수 사건을 들고 나왔다.

단연 세간의 유행어는 ‘적폐’다. 북핵 위기로 불안하기만한 상황에서 여야가 모두 힘을 합쳐도 위기 상황 돌파가 어려운데 정치권에서는 그저 상대방 죽이기에 급급해 귀중한 시간을 소비하고 있다.

르완다는 특정인, 특정 세력에 대한 응징과 보복을 내려놓은 뒤 새로운 국가로 출발할 수 있었다. 지금의 우리 정치권도 과거에서 배워야 할 점은 소비적인 과거에 대한 복수가 아니라 발전적인 미래를 위해 화합과 용서를 통한 국가적 통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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