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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뚫린 소비자규정⑧] 가전제품 묵은 재고 팔아도 책임 '無'...가이드라인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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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뚫린 소비자규정⑧] 가전제품 묵은 재고 팔아도 책임 '無'...가이드라인 시급
  • 유성용 기자 sy@csnews.co.kr
  • 승인 2018.06.19 07: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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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가 물건을 구매하거나 서비스를 이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분쟁들은 '소비자분쟁해결기준' 등 업종별로 마련된 소비자법을 근거로 중재가 진행된다. 하지만 정작 그 규정들은 강제성이 없을 뿐 아니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빠른 시장 상황을 담지 못해 소비자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은 올 하반기 동안 2018년 기획 캠페인 '구멍 뚫린 소비자보호규정을 파헤친다' 기획 시리즈를 통해 소비자분쟁해결기준의 문제점들을 짚어보고 개선 방향을 찾아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전자제품 구입시 제조일자로 인해 예기치 못한 손해를 입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신상품이라 믿고 산 제품의 제조일이 2년 전이라거나 이와 유사한 민원이 적지 않다. 제조일이 오래된 제품 구입 사실을 늦게 알았다면 보상받을 길이 요원하다.

올 초 쿠쿠전자 안마의자를 렌탈한 소비자 김 모(남)씨는 우연히 제품 제조일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 지난 2월에 계약해 설치 받은 제품의 생산일자가 2016년 6월이었던 것. 김 씨는 “렌탈 계약이 끝나는 4년 뒤 소유권을 넘겨받게 되는데, 그럴 경우 4년이 아닌 6년 된 중고품을 사게 되는 것 아니냐”며 황당해 했다.

렌탈 계약 후 설치 받은 제품은 공장에서 갓 생산된 새 제품이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나 제조일자가 오래된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업체의 재고관리에 구멍이 생길 수 있기 때문. 김 씨 역시 협력(납품) 업체의 재고관리 실수로 제조일이 오래된 안마기를 받은 것이다.

생산된 지 1년 지난 제품은 폐기 하는 등의 내부 가이드라인이 있다고 해도 중소 업체라면 이 같은 재고관리 시스템이 대형사에 비해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정수기, 비데, 공기청정기, 안마의자 등 설치 렌탈 제품의 경우 제조일자와 관련한 규정이 없어 소비자는 업체 측의 도의적 책임에 기댈 수밖에 없다.

코웨이, SK매직, 청호나이스, 쿠쿠전자 등 대형 렌탈 업체들 사이에서도 내부 가이드라인으로 삼고 있는 재고관리 기준의 차이는 크다. 업체 들은 계약 후 최근에 만들어진 제품을 우선 출고한다는 입장이나 이 기간은 1~3개월로 차이가 있다.

대전시의 김 모(여)씨는 GS홈쇼핑 카탈로그를 보고 에어컨을 구매했는데 2년 전 제조된 제품을 받았다며 황당함을 토로했다. 최신호 카탈로그를 보고 주문했던 터라 2년이나 묵은 재고품이 배송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고 한다.

전자상거래법에서는 카탈로그 지면의 한계로 정보를 다 제공할 수 없을 경우 소비자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으로 표기하게 돼 있다. 홍보나 이벤트 게시물 등에서 ‘자세한 상품정보는 인터넷을 통해 확인하거나 상담실로 문의하라’는 문구가 들어가 있는 이유다.

카탈로그는 광고‧선전에 목적이 있고 꼭 어떤 사항을 표기해야만 한다는 강제적인 규정은 없다. 상품 설명에 대해서도 업체의 재량에 따르도록 돼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가전제품의 경우 언제 생산했는지, 언제 출시했는지 여부가 안전 등의 측면에서 소비자한테 꼭 필요한 결정적인 정보는 아니기 때문에 카탈로그에 표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업체 측에 책임을 묻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부산시에 거주하는 박 모(여)씨는 지난해 초 재고제품을 사면 할인해준다는 안내에 캐리어 에어컨을 구매했다. 6개월쯤 지나 우연히 모델명을 인터넷에 검색해본 박 씨는 재고라던 제품이 정격냉장능력, 최저소비효율기준 미달로 2015년 7월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생산판매금지 행정처분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전자제품이 다양한 유통경로로 판매되다보니 전량 수거 되지 않아 발생한 문제였다.

통상 산업부로부터 생산판매금지 처분을 받으면 제조사는 즉시 제품생산을 중단하고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제품을 회수해야 하지만 몇 단계에 걸쳐 유통되는 제품을 모두 회수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대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직영대리점이나 대형마트가 아닌 도소매점에는 회수되지 않은 제품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행정처분이 크게 이슈 되지 않기 때문에 판매처 역시 이를 모르고 판매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산업부는 이럴 경우 제조사 측에 관리책임을 묻는다. 다만 소비자가 보상받기란 여의치 않다. 판매처가 몰랐다고 발뺌하고, 제조사는 단종 된 모델에 대해선 교환 및 환불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기 때문이다.

소비자단체 관계자는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 등에 따라 전자제품에는 제조일자가 표기된다”며 “소비자는 저렴한 가격에 현혹되지 말고 구입 전후 제조년월을 반드시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 = 유성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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