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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뚫린 소비자규정㊶] 가전제품 설치기사 간 뒤에 파손 발견하면 속수무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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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뚫린 소비자규정㊶] 가전제품 설치기사 간 뒤에 파손 발견하면 속수무책
  • 유성용 기자 sy@csnews.co.kr
  • 승인 2018.11.23 07: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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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가 물건을 구매하거나 서비스를 이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분쟁들은 '소비자분쟁해결기준' 등 업종별로 마련된 소비자법을 근거로 중재가 진행된다. 하지만 정작 그 규정들은 강제성이 없을 뿐 아니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빠른 시장 상황을 담지 못해 소비자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은 올 하반기 동안 2018년 기획 캠페인 '구멍 뚫린 소비자보호규정을 파헤친다' 기획 시리즈를 통해 소비자분쟁해결기준의 문제점들을 짚어보고 개선 방향을 찾아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사례1 서울시 노원구에 사는 박 모(남)씨도 퇴근 후 롯데하이마트에서 구입한 LG전자 디오스 냉장고를 살펴보던 중 찍힌 자국을 발견하고 교환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한 경험이 있다. 회사 일 때문에 냉장고가 설치되던 낮에는 자녀들만 집에 있는 바람에 제대로 확인을 못한 게 문제였다. 냉장고에 찍힌 자국을 사진으로 촬영해 보냈지만 ‘설치 시에는 문제가 없었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사례2 고양시 일산동구에 거주하는 서 모(여)씨는 지난 9월 설치한 삼성전자 건조기 외관에서 긁힌(기스)자국이 발견돼 교환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해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설치 당일 피로감을 호소하는 설치기사를 그냥 돌려보낸 게 화근이 됐다. 서 씨는 “추후 교환 요청을 하려고 했는데 거절당하게 될 줄은 몰랐다. 당일 설치기사를 통해 제품 수령을 거부했었어야 했다”고 말했다.

#사례3 울산 중구에 사는 전 모(남)씨는 지난달 인터넷을 통해 중소기업 제품 TV를 62만 원에 구입했다. 배송된 박스를 열어 설치하고 전원을 켜보니 액정은 깨져 있었다. 제품 불량이라 생각한 전 씨는 즉시 제품 교환을 요청했지만 업체 측으로부터 소비자 과실이라며 60만 원의 패널 수리비를 안내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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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치기사가 떠난 뒤 긁힌 자국이 있다며 교환을 요청한 서 씨의 세탁기

이처럼 설치가 필요한 가전을 인터넷으로 구입했다가 뒤늦게 파손을 발견한 소비자들이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지만 이를 구제할 방법이 없어 발만 동동구르고 있다.

TV, 냉장고, 세탁기 등 설치가전을 구입한 후 얼마 안 돼 문제가 발견된 경우 소비자는 당연히 교환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고객센터 상담을 통해 만족할만한 보상을 받기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렵다.

제조사가 과실을 사용자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태반인데 소비자로서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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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씨가 인터넷을 통해 구입한 TV. 설치 후 전원을 켰다가 액정이 파손된 것을 알게 됐다.

설치 가전의 파손 및 결함에 대한 보상을 받기 위해서는 소비자가 설치 당시부터 제품에 문제가 있었음을 입증해야 한다. 만약 설치기사가 현장을 떠난 후 제품 이상을 발견했다면 그 시간이 단 1분이라하더라도 '소비자 과실'로 인해 유상수리를 안내 받을 가능성이 크다.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 따르면 공산품(30개 업종) 구입 후 10일 이내에 정상적인 사용 상태에서 발생한 성능‧기능상의 하자로 중요한 수리를 요할 때 교환‧환불을 권고하고 있다. 중요한 수리를 요구하는 하자에 대해서도 정상적인 상태를 가정하고 구입 1개월 이내라고 명시하고 있다.

즉 구입 후 한 달이 지났거나, 소비자의 과실이 인정될 경우 교환‧환불 및 무상 수리를 받기 힘들다는 소리다.

이 때 가장 핵심이 되는 요인은 ‘정상적인 사용 상태’ 부분이다. 설치 당시 문제점을 확인하지 못한 경우 제조사들은 '정상적 사용이 아닌 사용자의 과실' 강조해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다. 설치기사가 현장에 있을 때는 문제가 없었으니 그 이후의 일은 소비자가 책임져야 한다는 식이다.

   <새 제품의 교환·환불 규정>
 -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서는 구입 후 10일 이내에 정상적인 사용 상태에서 발생한 성능‧기능상의 하자로
   중요한 수리를 요할 때 교환‧환불을 권고

   <규정 속 허점>
 - ‘정상적인 사용 상태’라는 문구가 제조사 입장에서 면죄부가 되고 있다.

하자 여부를 입증할 수 있는 사진(시간 등을 체크할 수 있어야 함)등 증거자료가 명확하지 않다면 사실상 규정 안에서 도움을 받기는 힘들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설치 가전에 대한 보상은 소비자가 제품을 처음 받았을 당시 정상이었는지 여부가 가장 중요하게 작용한다”며 “설치기사가 떠난 후에 문제를 발견했다면 제조사 측에서는 소비자 과실로 이야기 하는 경우가 태반이고 이럴 경우 교환환불, 무상AS 등의 처리가 사실상 어렵다”고 설명했다.

소비자단체 한 전문가 역시 “설치 시 소비자가 꼼꼼히 검수할 수밖에 없다”며 “설치기사가 보는데서 정상작동이 확인 된 후 문제가 생겼다면 제품 하자 입증이 사실상 힘들다”고 말했다.

한편 분쟁해결기준의 중요한 수리에 대한 해석은 ‘성능·기능상 하자로 인한 중요한 수리’로만 표현될 뿐 상세 내용이 구체화 된 것은 없다. 품목에 따라 달리 적용된다는 의미다. 소비자단체 전문가는 “중요한 수리 구체화는 분쟁해결기준 개정 시 고려해볼 사안”이라고 말했다.

정상적인 사용 상태에서 교환·환불 기간을 ‘10일’로 정한 것은 분쟁해결기준 제정 당시 사업자와 소비자단체 간 의견조율을 통해 도출된 결과로 전해진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 = 유성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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