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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 갑질 보고서⑧]상처 받는 감정노동자 보호에 이제야 눈 뜬 기업들

유성용 기자 sy@csnews.co.kr 2018년 11월 29일 목요일 +더보기

기업들에게 분명 ‘소비자(고객)는 왕’이다. 하지만 왕으로서의 권리라고 착각하는 행태의 도 넘은 갑질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소위 블랙컨슈머라고 불리는 행태는 소비자가 있는 곳이라면 업종을 망라하고 발생하고 있다. 소비자 갑질은 결국 기업의 비용 부담을 높여 선량한 소비자들의 피해로 이어지게 된다. 권리주장을 위해 했던 행동이 뜻하지 않게 '갑질'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하고 반성하기 위해 다양한 소비자 갑질 행태를 살펴본다. [편집자 주]

패스트푸드 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도 모(남)씨는 무인판매대 설치가 확대되면서 사용법에 익숙지 않은 고객들로부터 항의 듣는 일이 잦아졌다. 제대로 해보지 않고 무조건 안 된다고 화를 내며 목소리를 높이는 고객들이다. 도 씨는 “‘거기 멀뚱히 서 있을 거면 주문이나 받지 뭐 하는거야’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심한 모멸감을 느꼈고 이후 며칠간 불면증으로 고생했다”고 말했다.

유통매장에서 10년 동안 판매일을 해온 이 모(여)씨는 최근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다. 말도 안 되는 일로 시비를 걸어오는 일부 고객 탓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고 어느 순간부터 사람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블랙컨슈머들의 주 타깃이 되는 대형 유통‧서비스업체들은 갑질 폭력에 시달리는 현장 직원을 지키기 위한 보호 조치에 속속 나서고 있다. 일부 고객의 갑질 행위에 대응하기 위한 매뉴얼을 만드는 등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전통적으로 ‘고객은 왕’이라는 마인드가 강한 유통업계에서조차 상담 직원 등 감정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팔을 걷고 나섰다.

지난 7월 ‘화장품 갑질녀’ 사건을 겪었던 신세계백화점은 이달부터 고객의 폭언과 폭행으로부터 직원을 보호하기 위해 매장 전면에 고객 선언문을 내걸었다. ‘고객님의 따뜻한 말 한 마디가 더욱 친절한 신세계를 만듭니다’라며 웃는 모습의 그림이 그려진 안내문으로 마주하고 있는 직원을 존중해 달라는 정중한 요청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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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백화점 본점 의류 매장에서 일하는 판매직원 이 씨는 “여전히 목소리를 높이는 고객이 있지만 무조건 직원이 참고 머리를 숙일 필요는 없다는 사회적 변화가 생긴 것만으로 스트레스가 좀 줄어든 느낌”이라고 말했다.

현대백화점은 지난해 10월부터 ‘감정노동자 보호와 문제행동 소비자 대처방안 가이드북’을 전 점포 고객상담실과 협력사에 배포했다. 롯데백화점은 백화점 3사 중 가장 늦은 지난 8월 전 매장 고객상담실에 ‘존중 받을 용기’ 책자를 비치하고 일부 비상식적인 고객들의 지나친 요구나 폭언, 협박 등에 대해서는 상담직원이 응대를 거부할 수 있도록 했다.

◇기업들 소비자 횡포로부터 직원 보호 위해 팔 걷었다 

폭언과 욕설에 가장 쉽게 노출되는 콜센터 직원 보호를 위한 기업들의 제도 개선 역시 적극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마트는 사원보호제도 ‘이케어2.0’을 통해 악성 민원 사전 차단에 주력하고 있다. 고객이 상담 중 폭언과 욕설을 하면 우선 경고 멘트를 하고 그럼에도 그치지 않으면 상담거부 ARS를 내보낸 후 재량껏 끊을 수 있는 매뉴얼을 운영 중이다.

GS홈쇼핑의 경우 상담사가 폭언을 자제하도록 하는 멘트를 한 후 ‘전화를 끊겠다’는 의사를 표하는 매뉴얼을 갖췄다. 녹취가 되고 있으며 법적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도 ARS를 통해 전달한다.

현대카드는 업계에서 블랙컨슈머에 대응하는 선제적 사례로 꼽힌다. 2012년부터 상담직원들이 상습적으로 성희롱 등 언어폭력을 행사하는 일부 소비자의 전화를 먼저 끊을 수 있도록 했다. 동일한 고객으로부터 2차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블랙컨슈머 관리 프로세스’도 구축했다. 블랙리스트를 작성하는 전담직원도 따로 배치했다.

현대카드에 따르면 제도 시행 후 상담원들의 만족도는 컸다. 상담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 결과 53%가 '스트레스가 감소했다'는 응답을 했다. '원활한 상담에 도움이 된다'고 응답한 비율은 79%에 달했다. 상담원들의 업무 안정감이 높아졌다는 의미로 해석 가능하다.

또 단선조치 시행 후 고객만족도 역시 39%에서 60%로 높아졌다. 감정노동자 보호제도가 활성화되면서 고객만족도가 올라가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물론 이런 방안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콜센터에서 취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인 단선 조치조차도 임시방편일 뿐이라는 지적도 있다.

카드사 고객센터 상담원으로 일하는 연 모(여)씨는 "마구 욕설을 하는 고객의 경우 끊어버리면 다시 전화를 해서 나 대신 다른 동료 상담원이 괴롭힘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며 "전화를 먼저 끊었다는 이유로 흥분해서 욕설이 더 심해지는 터라 가급적 1차 민원에서 정리하고자 노력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일부 고객의 갑질 행위에 스트레스를 받은 직원들의 심리치료를 위한 프로그램도 마련하고 있다.

신한카드는 ‘직원 지원 프로그램(EAP)’을 통해 고통을 호소하는 직원의 외부상담과 치료를 진행하고 인사이동 등의 조치를 한다. 하나카드도 ‘콜센터 상담사 힐링프로그램’을 마련하고 힐링 강연, 전문가 맨투맨 치료 등을 진행하고 있다. KB국민카드는 콜센터 직원의 심리치료와 상담을 위해 고객응대 고충처리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소비자의 갑질 행위로부터 감정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규제도 마련됐다.

지난달 18일부터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사업주는 고객이 폭언 등을 못하도록 요청하는 문구를 사업장에 게시해야 한다. 고객 응대 업무 지침을 마련하고, 전화로 응대하는 경우에는 이를 음성으로 안내해야 한다.

기업들의 대응과 법령 개정 등의 변화는 이제 겨우 첫 걸음을 뗐을 뿐이지만, 적어도 소비자라고 해서 상식과 룰을 파괴할 권리는 없다는 사회적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유성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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