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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포장이 훼손됐다는 이유로 '철회권'을 행사할 수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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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포장이 훼손됐다는 이유로 '철회권'을 행사할 수 없는가?
  • 이병준 한국외대 교수 tae@csnews.co.kr
  • 승인 2018.12.14 07: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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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법에서 '철회권'은 소비자 보호를 위한 가장 중요한 제도이다. 그러나 소비자가 철회권을 행사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사업자들은 재산적 손실을 입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많은 경우에 소비자는 구매하였던 물품의 포장을 훼손하거나 사용한 후 돌려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철회권을 인정하는 소비자법은 기본적으로 소비자에게 상품의 포장을 뜯고 상품을 이용하는 것을 보장하고 있으므로, 이러한 행위를 하더라도 소비자는 철회권을 행사할 수 있다.

소비자가 철회하여 반품된 제품은 많은 경우에 더 이상 신제품이 아니므로 사업자는 해당 상품을 중고상품으로 저렴한 가격으로 다시 팔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이러한 재산적 손실을 피하기 위해 사업자는 다양한 사유를 들어서 소비자의 철회권 행사를 '제한'하려고 한다. 

하지만 모든 제한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방문판매법, 전자상거래법 등 소비자관련법에서는 소비자의 철회권을 인정하는 동시에 사업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철회권이 배제되는 '사유'와 배제되는 '절차'를 규정하고 있다. 즉 이러한 배제사유와 배제절차가 모두 충족된 경우에만 철회권이 인정되지 않는 것이다. 

철회권 배제사유 가운데 중요한 것 하나만을 이야기한다면 '제품 포장'과 관련한 배제사유다. 배제사유에서 포장과 관련된 부분은 두 번 나온다. 

첫째, 소비자의 귀책사유로 상품이 멸실 내지 훼손된 경우 철회권은 배제되지만, 상품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포장을 훼손한 경우는 배제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소비자에게 포장을 훼손하여 상품 내용을 확인한 후 철회권 행사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해서다. 

둘째, 복제가 가능한 상품의 포장을 훼손한 경우에 철회권은 배제된다. CD에 담긴 컴퓨터 프로그램 내지 음반의 포장을 개봉하였다면 쉽게 그리고 동일한 품질로 복사본을 만들 수 있으므로 철회권의 행사를 인정한다면 사업자에게 막대한 손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현재 거래계에서는 전자제품, 명품 등의 포장을 훼손하였다는 이유로 소비자가 철회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한다. 심지어 해당 포장에 '포장을 뜯는 경우에는 반품할 수 없다'는 문구도 적어 놓는 경우가 많다. 

물론 전자제품의 포장을 훼손하게 되면 전자제품은 더 이상 새것이 아니라, 중고품이 되고 만다. 그리고 명품의 경우에는 포장 자체도 고급이므로 포장비용 자체도 작은 금액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철회권 관련 규정은 모두 준수돼야 하는 규정인 강행규정이므로 소비자에게 불리한 내용을 특약으로 정할 수 없다. 그리고 철회권은 인정되는 것이 '원칙'이며 배제되는 것이 '예외'에 해당하므로 이러한 예외사유는 엄격하고 좁게 해석해야 하고 넓게 해석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사업자는 이러한 사유를 넓게 해석하고 싶어 한다. 복제가 가능한 상품의 포장을 훼손한 경우에만 철회권이 배제되는 것으로 법률상 인정되고 있으나, 사업자는 모든 상품의 경우에 포장이 훼손되면 배제된다고 주장한다. 

또한 상품의 포장이 훼손되면 상품의 가치가 하락하고 포장을 다시 사용할 수 없어서, 배제사유 중 하나인 '소비자의 사용 또는 일부 소비로 재화 등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여기서 규정되어 있는 현저한 가치 감소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사용 내지 일부소비가 있었어야 하는데, 단지 포장만을 훼손한 것 가지고는 이 배제사유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 그리고 현저한 가치감소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최소한 50% 넘는 가치감소가 있어야만 한다.

문제는 사업자만이 이러한 부당한 사유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최근 행정기관에서 제정한 피해기준에서도 배제사유의 부당한 확대해석이 이루어지고 있다. 2018년 10월 25일 방송통신위원회는 이동통신분야 맞춤형 피해구제기준을 마련하였다. 그런데 이동통신단말기의 철회권과 관련하여 개통 또는 개봉이 된 단말기는 철회할 수 없다고 하면서 철회권 배제절차를 안내하고 있다. 

그런데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동통신단말기는 복제가 가능한 제품이 아니므로 포장의 훼손만으로는 철회권이 배제되지 않으며, 개통 내지 개봉만으로 제품의 현저한 가치 하락도 있다고 볼 수 없다.

통상 철회권 배제사유는 사업자의 로비 목록이라고 한다. 하지만 배제사유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법률에 반영해야 한다. 법률에 반영하지 않고 행정기관의 해석에서 인정되더라도 해당 사업자는 소비자법을 위반한 것이다. 방송통신위원회에서는 잘못된 해석기준을 속히 바꾸어서 사업자의 부당한 철회권 방해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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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 약력 -

고려대학교 법학과 
고려대학교 대학원 법학 석사(민사법)
독일 튜빙겐대학교 법학 박사(민사법, 소비자법, 인터넷법)
전) 부산대학교 조교수, 부교수
전) 대법원 재판연구관
현)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국소비자법학회 제6대 회장 (20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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