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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소비자 소송②] 진에어 지연운항 소송 '안전운항 면죄부'에 제동

송진영 기자 songjy@csnews.co.kr 2019년 01월 09일 수요일 +더보기

지난해 BMW화재 사건을 비롯한 각종 사고가 잇따르면서 소비자보호를 위한 집단소송제 도입에 힘이 실리고 있다. 증권분야에만 제한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포괄적 집단소송제를 확대해 당사자들이 일일이 소송을 제기하지 않아도 판결의 효력이 전체에게 미치도록 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포괄적 집단소송제가 도입되더라도 보수적인 법원의 판결기조가 바뀌지 않는 한 효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도 존재한다. 국내에서 진행된 소비자 단체소송에서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국내에서 제기된 주요 소비자소송의 진행 상황을 살핌으로써 포괄적 집단소송제의 성공적인 도입을 위해 어떤 논의와 고민이 필요할 지를 점검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항공기의 결항이나 연착으로 여행을 망쳤다는 소비자들의 불만이 해마다 수도 없이 되풀이 되고 있는 가운데 보다 못한 소비자단체가 팔을 걷고 나섰다. 

지난 2017년 11월 3일 소비자단체인 한국소비자연맹은 녹색소비자연대전국협의회, 연세대 공익법률지원센터와 함께 저비용항공사 진에어를 대상으로 소비자 69명을 모아 단체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은 현재 항공사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현재의 보상규정과 이에 의지해 소비자 보호에 무심한 모습을 보여온 항공사의 행태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한국소비자연맹을 비롯한 원고 측은 진에어가 항공기 결함을 이유로 승객을 15시간 무방비 상태로 대기시키고 지연 운항을 한 과정에서 소비자의 안전과 권익을 과도하게 침해했다는 입장이다.

한국소비자연맹은 일명 진에어 사건에 대해 “소비자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한 상황이었다”고 주장하며 손해배상청구액을 인당 위자료 200만 원으로 결정했다.

1. 소송 배경 : 항공기 지연·결항 밥 먹듯 하고 보상은 외면

사실 항공기의 지연·결항으로 인해 소비자들이 겪은 피해가 적지 않음에도 소비자 보호를 위한 장치는 별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기상악화 등 누구나 납득이 갈 만한 상황 외에도 항공사들은 지연·결항 등이 발생할 때마다 승객 안전을 위한 조치였으며 불가피한 상황이라는 이유를 대는 것으로 빠져 나가고 있다. 정비 불량이나 안전관리 미흡 등 항공사의 과실이 있어도 안전을 우선시 하는 규정 때문에 피해 보상에는 면죄부를 받고 있다. 소비자들은 금전적, 시간적, 정신적 피해를 크게 입어도 항공사로부터 거의 보상을 받지 못하는 형편이다.

이런 사례는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작년 4월 제주항공의 인천-베트남 다낭행 항공기가 회항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저녁 10시 40분에 인천을 출발해 제주도를 지난 뒤 갑자기 항공기 전자 장비에 문제가 생겼다며 대만 인근까지 운항하다가 결국 인천으로 방향을 틀어 회항한 것. 승객들이 다시 인천공항에 도착한 것은 출발 후 4시간이 지난 새벽 2시 40분이었고 2시간을 더 기다려 총 7시간 만에 다른 항공기를 이용해 재출발했다. 이에 대해 제주항공은 1인당 5만 원을 보상하는 것으로 끝냈다.  

작년 7월에는 대구-제주행 티웨이항공 항공기는 2시간 가까이 지연돼 많은 승객들이 일정에 차질을 빚으며 피해를 입었지만 항공기 접속 관계로 인한 지연으로 항공사의 불가피한 상황이라는 이유로 승객들은 그 어떤 보상도 받지 못했다.

2. 소송 쟁점 : 연료탱크 결함으로 결항된 진에어, 다음날 같은 비행기에 재탑승

이번 단체소송에 관련된 사건은 2017년 6월 1일에 발생했다. 국내 저비용항공사 진에어의 항공기 LJ060편이 새벽 1시 30분 베트남 다낭을 출발해 인천으로 향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승객들이 탑승하기 전 연료탱크의 안전결함을 이유로 4시간 동안 지연됐고 결국 결항되고 말았다.

탑승 대기석에서 4시간 동안 아무것도 못하고 노심초사 기다리고 있던 승객들은 이후 11시간을 더 기다려야만 했다. 당시 LJ060편에는 15개월 영유아부터 70대 노인들까지 다양한 승객들이 있었지만 총 15시간의 대기시간 동안 진에어의 배려나 후속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고 알려져 큰 논란이 됐다.

논란은 그 뿐이 아니었다. 15시간 대기 후 대체 항공편을 제공한 것이 아니라. 결함으로 결항됐던 LJ060편에 승객들을 재탑승시켜 분노를 키웠다. 당초 수리가 불가능해 결항을 결정했던 항공기에 그대로 고객들을 탑승시키는 것은 심각한 안전 불감증을 여실히 보여주는 처사라고 비난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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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소비자연맹은 녹색소비자연대전국협의회, 연세대 공익법률지원센터는 2017년 11월 3일 진에어 15시간 지연운항으로 피해를 입은 소비자 69명을 모아 단체소송을 진행했다. (사진출처-한국소비자연맹)

한국소비자연맹 정지연 사무총장은 “진에어는 연료게이지 문제가 있어 안전 이유로 결항을 결정해놓고 다른 대체 항공기를 마련하지 않은 채 승객들을 무방비 상태로 기다리게 한 후 안전에 문제가 있었던 항공기에 다시 탑승시켰다”고 문제를 제기 했다. 정 사무총장은 “승객들이 15시간 동안 불안함 속에 기다려야 했고 비행기 탑승 후에도 또 다시 4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극도의 불안함 속에 떨어야 했는데 이는 승객들을 우롱하고 안전을 위협한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또한 진에어는 15시간의 대기시간 동안 승객들에게 지연시간 경과에 따른 적절한 안내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상황 설명을 제대로 하지 않아 승객들이 나서서 지연 이유를 물었고 진에어 측은 그때서야 연료게이지에 문제가 있음을 실토했다고.

이에 대해 진에어 측은 “연료게이지 표시가 문제가 생겨 정비사가 수리를 진행했고 관련 내용을 승객들에게 안내했다. 또한 다음날로 운항이 결정된 후 고객들을 호텔로 이동시켰다”며 “승객의 안전을 위한 조치”였다고 해명했다.

3. 진행과정 : 소제기 1년 지나도록 1심 변론중...과중한 소비자 입증책임 탓?

2017년 11월 3일 오전 서울지방법원에 접수된 진에어 지연운항 단체소송은 1년이 지난 지금까지 1심 판결이 나오지 않은 상태다.

현재 진에어 지연운항 단체소송을 진행 중인 한국소비자연맹 서희석 소비자공익소송센터장은 “2017년 11월 3일 소송장을 접수하고 1년이 조금 넘은 현재 1심 변론이 여전히 진행 중이다. 올해 1월에는 1심 판결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이어 “단체소송은 민사소송 중 하나로 입증책임의 대원칙이 원고 즉 피해를 입은 소비자에게 있다. 입증책임이 너무 과중해 기업을 상대로 진행하는 단체소송의 경우 소비자나 소비자단체가 기업의 정보를 알기가 어려워 애를 먹는다”고 언급했다.

일각에서는 항공사들이 안전상 결함이 확인되지 않아도 이를 이유로 적절한 보상 없이 면책되는 경우가 많아 사업자 면책 범위가 넓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한 항공사들 대부분이 
소비자에게 관련 정보를 제한하고 있어 기술적인 이유나 내부적인 상황을 소비자가 입증해 기업의 과실 여부를 따지는 것은 바늘 구멍 통과하는 것보다 어려운 실정이다.

법무법인 평우의 조지윤 변호사는 
“보통 민사소송은 1차 판결이 나올때까지 1년 혹은 그 이상 걸리는 것이 특별한 일은 아니다. 다만 원고가 피해를 입증하는 과정이 힘들고 어려워 소송이 길어질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언급했다.

4. 해외 사례 : 미국, 민사소송 시 '디스커버리 제도' 이용해 기업정보 공개 요청 가능

원고에게 입증책임을 과중시키는 국내와 달리 미국의 경우 디스커버리 제도를 이용해 기업 정보를 공개하도록 요청할 수 있다.

서희석 센터장은 “원고 입증책임에 대해 보수적인 국내 상황과 달리 미국의 민사소송은 원고가 기업의 정보 공개를 요청하면 해당 정보를 공개토록 하는 디스커버리 제도가 있어 원고의 과중한 입증 책임을 덜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디스커버리 제도는 미국·영국 등에서 재판이 개시되기 전에 당사자 양측이 가진 증거와 서류를 서로 공개하는 제도이다. 합리적인 이유 없이 상대방의 서류 제출 요청을 거절하면 법원의 처벌과 제재를 받는다. 소송 시작과 동시에 해당 회사는 소송과 관련된 모든 정보를 보존해야 할 의무가 생긴다.

기업, 국가기관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낼 때 개인인 원고의 증거 확보권을 보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디스커버리가 종료된 후부터 본격적인 재판 절차가 진행된다. 따라서 쟁점을 명확히 해 기업의 과실여부를 보다 면밀히 따져볼 수 있고 이는 소송결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이다.

5. 전망 : 승소 가능성 예측...징벌적 손해배상 없이 만족할 수준 보상 기대 어려워

소송의 결과에 대해서는 비교적 낙관적인 예측도 있는 반면, 보상수준은 미흡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조 변호사는 
“모든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은 원고가 아니라 피고이기 때문에 보통 피고는 불리한 정보를 절대 공개하지 않으며 이는 항공사 또한 마찬가지”라며 “그렇지만 진에어 단체소송의 경우 전부 패소하거나 전부 승소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일부 전문가들도 법원 측이 전략적인 판단을 할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승소하더라도 보상액이 만족스러울지 의문이라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징벌적 손해배상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법원이 보상액 자체를 보수적으로 정하고 있다는 점이 이유로 꼽힌다.

법조계 관계자는 “1심 판사들은 보통 나이대가 젊은 편이라 위자료 액수를 많이 인정하지만 항소심 판사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아 기대했던 보상액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우리나라는 기업에 부담주는 판결을 잘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재판부 부담을 없애려면 '선례'를 많이 찾아서 제출하는 것이 좋다”며 “외국 사례나 다른 유리한 판례 등을 많이 제출할 경우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한국소비자연맹은 진에어 지연운항 관련 단체소송 진행 이유에 대해 “지속적으로 반복돼 소비자 불만이 발생하고 있는 항공사들의 지연·결항 문제와 관련해 항공사에게 경각심을 주고 소비자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향후 법원 판결로 항공기 지연과 결항에 따른 소비자 피해 구제에 청신호가 켜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송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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