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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판례] 위조된 인감과 비밀번호로 예금 인출...은행 책임 범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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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판례] 위조된 인감과 비밀번호로 예금 인출...은행 책임 범위는?
  • 박관훈 기자 open@csnews.co.kr
  • 승인 2019.03.11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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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이 의심을 가질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는 상황에서 예금 수령 권한이 없는 자에게 예금을 지급한 경우 업무상 주의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으로 보기 힘들다는 판결이 나왔다.

지난 2010년 3월 A씨는 부산은행을 통해 거래인감과 비밀번호로 언제라도 인출·해지가 가능한 자유저축예금에 가입했다. 당시 A씨는 사실혼 관계에 있던 B씨의 부탁에 따라 B씨의 친구(C)가 A씨의 명의로 화물운송사업을 영위하면서 운송료 수입을 해당 예금계좌로 수령·관리하는데 동의 했다.

A씨는 C씨에게 예금통장과 체크카드를 교부하고 그 비밀번호를 알려줬다. 그러나 B씨는 C씨로부터 예금통장을 건네받은 다음 이듬해인 2011년 1월 A씨의 동의 없이 위조한 원고 명의의 도장을 날인한 예금청구서와 예금통장을 부산은행 ‘ㄱ’지점에 제출하고 비밀번호 입력기에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방법으로 2000만 원을 인출했다. B씨는 같은 날 다른 지점에서 같은 방법으로 1200만 원을 인출했다.

원심에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은행이 B씨에게 3200만 원을 지급한 것은 주의의무를 다하지 못해 변제수령권한이 없는 자에 대한 변제로써 은행에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위조된 인감 등이 인감대조에 숙련된 직원이 주의의무를 다해 대조했다면 그 차이를 식별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판결은 대법원에 가서 뒤집혔다. 대법원은 은행에 주의의무를 소홀히 했다는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예금 지급 청구자에게 정당한 변제수령권한이 없을 수 있다는 의심을 가질 만한 특별한 사정이 인정돼야 한다고 판시했다.

당시 예금 청구자인 B씨가 통장 명의자인 A씨와 사실혼관계에 있었으며 예금통장 원본을 소지하고 있었고, 나아가 비밀번호까지 정확하게 입력했던 점, 위조된 인감이 육안 대조만으로는 다른점을 확인하기 힘들다 점을 지적했다.

대법원은 “인감 대조와 비밀번호의 확인 등 통상적인 조사만으로 예금을 지급하는 금융거래의 관행은 금융기관이 대량의 사무를 원활하게 처리하기 위한 필요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며 “이는 예금인출의 편리성이라는 예금자의 이익도 고려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비밀번호가 가지는 성질에 비춰 비밀번호까지 일치하는 경우에는 금융기관이 그 예금인출권한에 대해 의심을 가지기는 어렵다”면서 “금융기관에게 추가적인 확인의무를 부과하는 것보다는 예금자에게 비밀번호 등의 관리를 철저히 하도록 요구하는 것이 사회 전체적인 거래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박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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