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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농어촌기금 더 내라고 기업 CEO 호출하는 '갑질' 국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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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농어촌기금 더 내라고 기업 CEO 호출하는 '갑질' 국감
  • 유성용 기자 sy@csnews.co.kr
  • 승인 2019.09.27 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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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기업인 증인 출석 역대 최대’

매년 10월의 시작을 앞두고 단골손님으로 등장하는 기사타이틀이다. 실제로 국회사무처 자료에 따르면 제17대 국회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기업인은 연 평균 52명이었고, 18대 국회에서는 77명, 19대 국회에서는 120명으로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이번이 마지막 국정감사인 20대 국회에서도 지금까지 매년 평균 126명이 증인으로 선정됐다. 올해도 양상이 다르지 않다. 올해 국정감사 증인명단에서도 알려진 기업인 수만 100명이 넘는다.

일반인 증인 중에서 기업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대 초반만 해도 20%대에 불과했으나 2016년에는 46%까지 치솟았다.

오는 10월 2일부터 21일까지 진행되는 국회의 국정감사에서도 상임위원회들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신동빈 롯데 회장, 김승연 한화 회장 등 대기업 총수나 최고경영자(CEO)들이 증인 및 참고인으로 포함시켰다.

문제가 명확하다면 기업인을 무더기로 소환하는 것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리 없다. 하지만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는 기업인 소환이 이뤄지기 때문에 매년 논란이 된다.

올해 역시 증인 소환 사유를 보면 국회가 입법 기능 외에 정부를 감시 비판하는 역할을 하려는 것인지 민간 기업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것인지 고개가 갸우뚱 해진다.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 장인화 포스코 사장, 최선목 한화 사장, 홍순기 GS 사장, 이갑수 이마트 사장 등 재계 상위권 기업들의 최고경영자를 증인으로 채택했다.

민간기업들이 '농어촌 상생협력기금에 대한 기부실적이 저조한 이유'를 묻기 위해서라고 한다. 2017년 도입된 이 기금은 10년간 1조 원을 걷을 계획인데, 기업입장에서 의무적으로 기부금을 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자발적 행위가 잘 이뤄지지 않자 기업을 압박해서 기금 출연을 강제하려는 것 아닌지 의도가 의심된다.

보건복지위원회는 롯데푸드의 위생문제와 소비자 불만을 따지기 위해 신동빈 롯데 회장을 소환한다. 애플과 같이 애프터서비스(AS) 부실, 한국 소비자 무시 등 공감대가 크게 형성된 사안과 비교하면 지엽적인 문제인데도 그룹 총수가 불려가야 하는 게 맞는지 의문이 든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김승연 한화 회장은 정무위원회의 증인으로 불려가 각각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문제와 노사 갈등에 대해 추궁당할 것으로 보인다.

국회의 기업인 무더기 증인 채택은 고질적인 악습이다. 경영환경이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시계제로인 상황에서 최고경영자를 불러다 놓고 고함치고 윽박지르면서 망신주기 일쑤다. 의원의 호통 속에 한 마디도 답변하지 못한 채 발걸음을 돌리는 경우도 비일비재 했다.

지난 2015년 한 기업인은 국정감사 참석을 위해 해외 출장 중에 급히 귀국했지만 30초만 발언하고 돌아가는 일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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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특히 미‧중 무역분쟁, 일본 수출규제, 경기악화, 수출 감소 등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대다수의 대기업들이 비상경영에 들어간 상태다.

납득하기 힘든 이유로 기업의 무더기 소환은 국회의 ‘갑질’로 비춰질 여지가 크다. 상임위 국회의원들이 정치적 존재감을 높이기 위해 국정감사를 이용한다는 지적에도 고개가 끄덕여 질 수밖에 없는 장면이다. 올해 국정감사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있어 보여주기식 행위가 더 심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국정감사의 본질은 정부나 공공기관이 지난 1년간 일을 제대로 했는지 예산사용에 문제가 없는지 등 국정운영을 살펴보자는 것이다. 기업인이 아닌 말 그대로 국정이 대상이 돼야 한다.

최근 조금이나마 변화가 감지되는 소식이 들렸다. 당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정감사 소환대상에 올랐던 박정호 SK텔레콤 사장, 황창규 KT 회장, 하현회 LG유플러스 부회장 등 이동통신 3사 CEO가 증인에서 제외됐다.

근거 없는 의혹을 제기하거나 증인 출석 사안과 동떨어진 민원 해결을 주문하는 등 상식을 벗어난 행위가 올해는 좀 달라지는 신호탄으로 믿고 싶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 = 유성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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