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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법, 빛 좋은 개살구...신청 44건에 교환· 환불 '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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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법, 빛 좋은 개살구...신청 44건에 교환· 환불 '제로'
회의 결과 공개할 홈페이지도 '준비중'
  • 박인철 기자 club1007@csnews.co.kr
  • 승인 2019.11.12 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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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행중 엔진정지 3회, 한번 더 겪어야? 경기도 파주시에 사는 이 모(남)씨는 지난 6월 BMW 520i를 구입하고 3개월 만에 주행 중 엔진 정지를 세 번이나 겪었다. 그중 두 번은 연료가 있었음에도 주유 경고가 떴고 얼마 못 가 시동이 꺼졌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이 씨는 BMW코리아와 딜러사를 통해 교환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이 씨는 “레몬법상 동일 하자가 한 번 더 발생해야 교체할 수 있다며 우선 연료펌프만 교체하라고 하더라”면서 “죽을 뻔한 고비를 얼마나 더 겪어야 차를 바꿀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 다양한 불량 반복, 중대결함 아니다? 경기도 평택시에 사는 김 모(여)씨는 지난 6월 한국지엠 더 뉴 스파크를 구입했지만 넉 달 만에 액셀 고장 2회, 주유판·네비게이션 고장, 후방 카메라 불량 등 잡다한 이상을 겪었다. 계속되는 스트레스에 서비스센터를 찾아 차를 바꿔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김 씨는 “한국지엠이 레몬법을 도입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액셀 이상이라는 중대 결함에도 왜 차 교환이 안 된다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 걸핏하면 배터리 방전되는 전기차 경기도 화성시에 사는 이 모(여)씨는 지난 2월 현대자동차의 더 뉴 아이오닉을 인도받고 하루 만에 차가 방전되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하이브리드카는 배터리 용량이 적어서 방전이 될 수도 있으니 자주 주행해야 한다"는 딜러의 말을 믿고 매일 운전했지만 3일 후 방전 사고를 또 겪었다. 배터리를 교체했지만 한 달 후 차 문이 안 열리는 일까지 발생했다. 이 씨는 “걸핏하면 방전되는 신차를 누가 안심하고 탈 수 있겠는가”라며 “같은 고장이 한 번 더 발생해야 교환이나 환불이 가능하다는데 방전될 때까지 타야 한다는 게 무섭기만 하다”고 말했다.

# 엔진 오일 누유, 부품도 없어 시간 허비만 서울 동작구에 사는 최 모(여)씨는 지난 8월 메르세데스 벤츠 E300을 구입했다. 한 달 만에 운행 중 계기판에 엔진 오일량을 점검하란 메시지가 떴다. 서비스센터를 찾으니 엔진오일 누유 문제로 부품 교환이 필요하며 최대 3주의 수리 기간이 소요된다는 얘기를 들었다. 최 씨는 “딜러가 이런 일이 종종 있다면서 서비스센터를 한 곳만 가지 말고 다른 곳도 가보자고 하는데 차량 결함을 은폐하려는 의도가 느껴졌다”면서 “산 지 한 달도 안 된 차에 이상이 생겨 수리를 길게 맡겨야 하는데도 교환이 안 된다면 동일 사례 피해자를 찾아 단체로 항의할 계획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차 구매 후 1년 안에 같은 하자가 반복되면 차량의 교환, 환불을 신청할 수 있는 일명 '레몬법'이 시행됐지만 여전히 신차 교환에는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레몬법에 따르면 올해 1월 1일 이후 구매한 차량에 한해 중대 하자는 2회, 일반 하자는 3회 수리하고도 같은 증상이 반복되거나, 고장으로 인해 차량을 이용하지 못한 기간이 30일이 넘을 경우 교환이나 환불 신청 가능하다.

하지만 정작 시행된 한국형 레몬법이 무용지물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소비자가 중대 하자 반복을 주장해도 업체가 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차 교환, 환불이 어렵기 때문이다. 앞서 사례들 역시 제조사에서 중대하자, 동일 증상을 인정하지 않아 차 교환, 환불이 이뤄지지 않았다.

여기에 구매 후 6개월이 지나면 소비자가 직접 하자를 입증해야 하는 데 약 2만 개가 넘는 부품으로 이뤄진 자동차의 하자를 전문가가 아닌 소비자가 증명하기 불가능하다는 문제도 있다.

페라리, FCA크라이슬러, 마세라티 3개 수입차 업체를 제외한 기아자동차, 쌍용자동차, 르노삼성 등 국내차는 물론 볼보, 폭스바겐, 아우디 등 대부분의 수입차 업체가 레몬법을 도입했지만 제도 자체에 강제성이 없어 실효성도 부족하다. 또 제조사의 서면 동의 차량을 구매하면 중재합의로 간주해 소비자는 법원에 소송조차 제기할 수 없다.

이뿐만이 아니다. 소비자에대한 정보 제공도 취약하고 레몬법 신청 절차도 복잡하다. 교환, 환불을 하려면 자동차안전하자심의위원회(심의위)에 신청서를 내야 하는데 인터넷이 아닌 우편으로만 가능하다. 국토교통부 고시에 따르면 심의위 회의는 공개를 원칙으로 하며 회의 결과는 홈페이지에 공개해야 한다, 그러나  회의록은 비공개에 홈페이지는 여전히 준비 중이다. 

중재 건수 자체도 많지 않다. 경제정의실천민주연합에 따르면 상반기 동안 교환, 환불 신청은 9건에 불과했고 이 중 3건은 기각, 6건은 중재까지 가지 않았다.

심의위 측은 “상반기에는 신청 건수가 많지 않았지만 10월 말까지 보면 44건까지 늘었다. 다만 교환, 환불로 이어진 사례는 아직 없다”고 말했다. 이어 “위원 30명이 모여 자동차 제작 결함을 심의·의결하는 회의는 공개로 진행하고 있으나 중재위(위원 3인 선정, 중재 해당 건마다 진행되는 회의)로 구성된 회의 내용은 특성상 비공개”라면서 “홈페이지는 연말 내 공개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진혁 서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레몬법의 가장 큰 문제는 하자가 재발하면 소비자가 먼저 자동차 제작자에 통보해야 한다는 점”이라면서 “소비자가 증거를 모으고 바로 심의위에 신청하게 해야 하는데 중간에 통보를 하면 업체들이 교환해줘야 하는 횟수까지 가기 전에 어떻게든 회유하거나 막으려 한다”고 말했다.

박진혁 교수는 레몬법이 입법 예고했을 때보다 소비자에게 불합리한 쪽으로 변경돼 시행됐다는 점을 지적했다. ▶리콜에 해당할 정도의 안전 우려 ▶경제적 가치 손상 ▶사용할 수 없을 정도의 수준이 돼야 교환, 환불이 가능한데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 미국처럼 자동차 결함 여부를 기업에서 입증해야 하는데 한국은 소비자가 입증해야 한다는 점 등 문제가 많은 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진혁 교수는 “국토부에서 문제를 인식해 지침이나 시행 규칙을 바꾸도록 조치해야 한다. 의지만 있다면 6개월 내라도 개선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박인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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