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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무원, 독립투쟁정신 기리는 제1회 영석상 수상...사회공헌활동 공로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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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무원, 독립투쟁정신 기리는 제1회 영석상 수상...사회공헌활동 공로 인정
  • 조윤주 기자 heyatti@csnews.co.kr
  • 승인 2019.12.06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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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무원이 독립운동에 전 재산과 생명을 바친 영석 이석영 선생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영석상의 첫 수상자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풀무원은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을 펼친 공로와 업적을 인정받아 수상자로 결정됐다.

풀무원은 지난 5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 1회 우당상∙영석상 시상식에서 영석 이석영상을 수상했다고 밝혔다.

제1회 우당 이회영상은 김성수 전 대한성공회 대주교가 수상했다.

우당이회영교육문화재단은 오는 2020년 우당 6형제의 중국 망명 110주년을 기념하고 독립투쟁정신을 기리고자 영석상과 우당상을 제정했다.

영석상은 평생 독립 운동에 헌신한 우당 6형제 중 둘째로 당대 최고 자산가로서 전 재산과 생명을 독립운동에 바친 영석 이석영(穎石 李石榮)선생의 정신을 높이 세우기 위해 사회공헌활동에 현저한 공로와 업적이 있는 기업을 수상자로 한다.

우당상은 형제중 넷째인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友堂 李會榮)선생의 자유평등사상과 자주독립정신을 기리기 위해 개인을 수상자로 하는 우당상을 제정했다.

이날 시상식에는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인 이종찬 이사장과 이종걸 의원, 윤형섭 우당선생기념사업회 회장 등 정관학계 인사 및 독립운동가 후손 등 300여 명이 참석했다.

이종찬 우당교육문화재단 이사장은 인사말을 통해 “우리 사회를 지킨 위대한 분들의 발자취를 소개함으로써 어떠한 국난을 당해도 분연히 일어서는 기품을 만들기 위해 우당상과 영석상을 제정하게 됐다”며 “오늘날 우리 사회에 필요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을 세상에 알리는 숙제를 계속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축사를 보내온 문희상 국회의장은 “한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말할 때 우당 이회영 선생 집안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라며 “우당의 6형제는 1910년 경술국치 이후 3만섬에 이르는 막대한 재산을 모두 처분하고 만주로 떠나 목숨을 건 독립운동을 펼쳤다”고 밝혔다.

허성관 우당교육문화재단 심사위원장은 “영석상 수상자로 선정된 풀무원은 위대한 농부이신 원경선 선생의 유기농을 통한 이웃사랑과 생명존중 정신을 계승해, 세계적인 생명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며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 지구사랑기금, 이웃사랑기금, 생명의 텃밭, 물환경교육, 바른먹거리 캠페인, 풀무원재단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사회공헌활동을 전개해 13년 연속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으로 선정됐다”고 말했다.

우당 이회영상 수상자로 선정된 김성수 전 대주교에 대해서는 “성공회 사제 서품 이후 봉사의 개념을 도입해 평생을 사회적 약자를 돌보고 계시며 민주화 운동에 선도적으로 참여해 우당 이회영 선생의 자유평등 사상과 독립운동 정신을 구현했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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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일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우당이회영교육문화재단(이사장 이종찬)이 제정한 제1회 우당상⋅영석상 시상식에서 이효율 ㈜풀무원 대표이사(가운데)가 영석상을 수상한 후 상패를 들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이효율 풀무원 대표는 수상 소감을 통해 “풀무원이 영석 이석영 선생의 숭고한 독립투쟁 정신을 기리는 제1회 영석상 수상 기업으로 선정돼 너무나 영광스럽다”며 “독립운동에 전재산과 생명을 바치신 영석 이석영 선생을 기리는 영석상 수상을 계기로 풀무원은 우리 미래사회와 글로벌공동체에 기여하는 사회적 가치가 큰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영석 이석영 선생(1855~1934)은 삼한갑족(三韓甲族)으로 유명한 명문가출신으로 문과에 급제해 한림승지까지 지냈으나 1910년 일제의 침략으로 경술국치를 당하자 동생인 우당 이회영선생(1867~1932)과 함께 6형제와 식솔 등 50여 명을 이끌고 독립운동기지를 개척하기 위해 만주로 망명했다.

당시 우당 6형제가 망명하면서 처분한 전 재산은 현재가치로 최소 600억 원에서 수천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당대 최고의 자산가였던 영석 선생은 당시 남양주의 전답 등 전 재산을 매각한 자금으로 동생인 우당과 함께 만주 서간도에 독립군 간부를 양성하는 요람인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고 운영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학교 이사장격인 교주를 맡았다. 신흥무관학교는 그 후 10여 년간 봉오동전투와 청산리대첩, 의열단 등 독립무장투쟁의 주역이 된 3500여 명의 독립군 간부를 양성하는 해외독립운동의 중심기지가 됐다.

영석은 그 후 일제에 쫓겨 북만주와 상하이, 난징 등을 전전하며 어려운 생활을 하다 1934년 상하이 프랑스조계에서 서거했다. 정부는 1991년 영석 선생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독립운동에 헌신한 우당 6형제는 우당 이회영선생이 중국 여순감옥에서 순국하는 등 5형제가 타국에서 숨졌고, 유일하게 다섯째인 임시정부 국무위원이었던 성재 이시영 선생만이 광복 후 귀국해 초대 부통령을 지냈다.

우당 집안은 당대 최고의 명문가이자 갑부였지만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독립투쟁이라는 고난의 가시밭길을 걸어 우리 역사에서 흔치 않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실천한 표상이 되고 있다.

한편 재단은 독립운동사를 연구하는 대학생과 대학원생을 격려하기 위하여 각 대학교에서 추천 받은 20명에게 300만원씩 장학금을 지원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조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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