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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효 지나 안 갚아도 되는 빚 채권추심 '성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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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효 지나 안 갚아도 되는 빚 채권추심 '성행'
'2주 이내' 이의신청 않거나 1만 원만 갚아도 시효 부활
  • 윤주애 기자 tree@csnews.co.kr
  • 승인 2016.01.29 08: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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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례1 A씨(당시 21세)는 2002년 3월 은행에서 200만 원을 신용대출 받았지만 2005년 10월경 실직 등으로 대출금이 연체됐다. A씨는 군 입대, 해외체류 등으로 채무상환독촉장이나 채권양도통지서 등을 받지 못해 채무 사실을 잊어버렸다. 그런데 2015년 3월 채권자가 대부업체로 바뀌고 급여는 법원의 압류명령이 내려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A씨는 회사에서 불이익을 당할까 두려워 대부업체에 원금(200만 원)을 입금하고 이보다 많은 연체이자 250만 원까지 갚았다. 그후 A씨는 이미 소멸시효가 완성된 채무였는데도 법원의 지급명령에 이의신청을 하지 않아 대부업체로부터 채권추심을 받았다는 걸 알고 황당했다.

# 사례2 B씨(당시 40세)는 2003년 4월 은행에서 신용으로 1천만 원을 빌렸다가 2006년 5월경부터 대출금이 연체됐다. B씨는 이혼, 여러 차례 이사를 다니면서 채무상환독촉장과 채권양도통지서 등을 받지 못했다고. 2015년 초 갑작스럽게 연락해 온 대부업체 측은 "지금 당장 1만 원만 입금하면, 대출금보다 많은 연체이자 1천500만 원을 전액 면제해주고 원금도 절반으로 깍아주겠다"고 했다. B씨는 바로 1만 원을 인터넷뱅킹으로 송금하고, 3개월 이내에 500만 원을 갚겠다며 채무이행각서도 썼다. B씨 역시 갚지 않아도 될 빚이었단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일부 저축은행과 대부업체들이 소멸시효가 완성된 채권을 매각하거나 추심 행위를 하고 있어 소비자들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금융회사의 대출채권은 상사채권의 일종으로 권리를 행사하지 않은 때부터 5년이 지나면 소멸시효가 완성되고, 채무자인 소비자는 변제의무가 없어진다.

하지만 이를 알지 못하는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원금보다 많은 이자를 청구하는 등의 불법 채권추심이 이뤄지고 있다.

◇ 금융회사, 소멸시효 완성채권 매매

여신(대출)은 현 상태를 기준으로 ▲정상 ▲요주의 ▲고정 ▲회수의문 ▲대손(추정손실) 등 5단계로 분류된다. 고정이하여신은 부실채권 중 원리금 상환이 3개월 이상 연체된 대출을 의미한다.

금융회사는 전체 여신에서 고정이하여신이 차지하는 비율이 너무 높아지면 건전성이 악화되기 때문에 리스크를 관리해야 한다. 마지막 단계인 대손은 1년 동안 돈을 받지 못한 채권이다. 소멸시효가 완성된 채권은 대손보다 더 밑에 있다.

금융회사들은 통상적으로 소멸시효 완성채권을 소각처리하고 있으나 일부 회사는 몇 퍼센트라도 건지려고 대부업체 등에 매각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5년까지 최근 5년 동안 금융회사 162개가 4천122억 원(미상환원금)의 소멸시효 완성채권을 120억 원에 매각했다. 매각가율은 2.9%였다.

은행의 경우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 일찌감치 채권을 털어버리는 편이다. 미상환 채권은 은행에서 저축은행, 규모가 큰 대부업체, 규모가 작은 대부업체로 넘어간다.

대부업체들은 소멸시효 완성채권을 헐값에 사들여 연체이자까지 더해 법원에 지급명령을 신청하거나, 채무자에게 소액변제를 받아내는 수법으로 시효를 부활시켜 채권추심 행위를 하고 있다.

이 경우 채무자가 지급명령에 대해 '2주 이내'로 이의신청을 하지 않으면 채권자 주장대로 지급명령이 확정돼 시효가 부활한다. 1만 원만이라도 채무를 상환할 경우 별도의 법적절차 없이 시효가 부활한다.

◇ 안갚아도 될 빚 갚는 서민 피해 '눈덩이'

문제는 소멸시효가 완성된 소액채권 채무자 대부분이 서민, 취약계층으로 잘 알지 못해 갚지 않아도 될 빚으로 채권추심을 당한다는 사실이다.

금감원은 우선 금융회사들이 소멸시효 완성채권을 추심하거나 대부업체 등에게 매각하는 행위를 자제하도록 지난해 12월1일부터 행정지도를 하고 있다.

또 금융회사가 '채권양도통지서'를 보낼 때 서류 양식에 소멸시효가 완성됐는지 여부를 표시하도록 했다. 지난해 9월 은행이 먼저 이를 적용했고, 저축은행과 여신전문금융회사(10월), 농협 신협 등 상호금융조합(11월)도 소멸시효 완성사실을 채무자에게 알리고 있다.

특히 소멸시효를 악용해 채권추심이 성행해도 법적 안전장치가 없어 문제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박병석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12월18일 '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박 의원 등 24인은 채권추심자가 소멸시효 완성채권을 추심하지 못하도록 하고, 이 채권을 금융회사간 사고 팔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조항을 개정안에 신설했다.

박 의원실 관계자는 "부모가 진 빚이 상속된 경우라든가 소비자가 채권을 갖고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주말이든 휴일에도 빚독촉을 받아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운 서민들이 많고, 채권추심이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이른바 '죽은 채권 부활금지법'으로 불리는 공추법은 법무부에서도 법 개정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은 소멸시효 완성채권의 매매를 자제하도록 행정지도를 하고 있지만 법적 구속력이 없어 법무부에 원금 기준으로 1천만 원 이하 소액채권의 경우 소멸시효 완성 시 추심을 법적으로 제한하는 방안을 건의한 바 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윤주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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