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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소비자정책 진단②]'안전' 최우선 외치면서 '케미포비아'에 속수무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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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소비자정책 진단②]'안전' 최우선 외치면서 '케미포비아'에 속수무책
  • 문지혜 기자 jhmoon@csnews.co.kr
  • 승인 2018.12.03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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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2월 3일은 소비자의 날이다. '고객은 왕'이라는 구호가 무색하게 실생활에서 소비자는 보호 받지 못하는 약자로 방치돼 있기가 다반사다. 기업의 각성과 양심에만 매달려 소비자의 이익이 보호되기를 바라기보다는 정책적이고 제도적인 변화와 노력이 요구된다. 정부의 소비자보호정책이 어떤 궤적을 따라가고 있는지, 앞으로 보완되어야 할 점은 무엇인지를 집중 점검한다. [편집자 주]

지난해 가습기 살균제, 살충제 계란 등 소비자 생활에 밀접하게 닿아있는 생활용품, 식품에서 ‘소비자 안전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면서 제도 개선에 대한 정부의 역할에 관심이 쏟아졌다.

공정거래위원회 역시 제4차 소비자정책 기본계획 가운데 ‘안전’ 문제를 첫 과제로 꼽았다. 식품 및 화학제품에서 소비자 안전을 확보하고 위해정보를 분석해 선제적으로 소비자 안전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올해 들어 가구부터 주거공간 전체에 걸친 라돈공포가 확산되는 가운데 정부의 뒷북 대응이 또 다시 도마에 올랐다. 위해물질 관리와 사고 대응에 관련해 소비자의 불안이 지속되면서 갈 길이 먼 것으로 평가된다.

◆ 가습기 살균제·살충제 계란 ‘케미포비아’...정부는 “괜찮다” 반복


가습기 살균제부터 피부에 직접 닿는 생리대, 살충제 계란 등 전방위로 퍼져 있는 '케미포비아'는 최근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그럼에도 식품의약품안전처와 공정위 등 관계당국은 ‘유해한 수준’이 아니어서 괜찮다는 말로 문제를 덮기에만 급급해 소비자의 불신을 키웠다.

정부의 화학 물질 규제에 대한 불신은 ‘가습기 살균제’로부터 시작했다. 1994년 SK케미칼의 전신 유공은 물에 첨가해 사용하는 ‘가습기메이트’를 제조사와 유통사에 공급했다. 유공에서도 국내 최초, 세계 최초라고 대대적으로 광고했을 정도로 전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제품이었지만 정부는 판매 허가를 내줬다.

2000년대 들어 옥시는 가습기 살균제 원료를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으로 변경했다. 호흡기에 치명적인 물질이었지만 별다른 제재 없이 판매됐다.

문제가 생긴 건 2000년대 들어 원인을 알 수 없는 호흡기 질환이 발생하면서부터다. 상대적으로 몸이 약한 유아, 임산부의 폐손상 사망 사고가 늘어나 추적한 결과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으로 밝혀졌다. 14년 만인 2011년 유통이 중지됐지만 이미 사망자는 200명에 가까웠다.

2013년에서야 피해자 구제 법안이 상정됐지만 현재까지도 제대로 된 결론이 나지 않았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16년 8월 애경과 SK케미칼이 판매한 가습기메이트를 ‘안전하다’고 광고한 사건에 대해 ‘판단불가’로 심의절차 종료 결정을 내렸다.

지난해 12월, 올해 2월 김상조 위원장이 직접 나서서 과거의 결정에 대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막중한 소임을 지키지 못해 반성하고 사죄한다”며 뒤늦게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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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당국의 적절한 대응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위해물질 관련 사건이 잇따르면서 국가적인 위해관리시스템 정립의 필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지난해 1월에는 유한킴벌리 하기스, 그린핑거 등 물티슈에서 메탈올이 허용치 이상으로 검출됐다. 또 지난해 8월 깨끗한나라 ‘릴리안’ 생리대에서 독성물질이 검출됐다는 시민단체 조사로 ‘생리대 파동’이 벌어졌다.

유럽에서 발생한 살충제 계란 파동도 국내를 휩쓸었다. 피프로닐, 비펜트린 등 농가에서 사용한 살충제 성분이 계란에 녹아들어 독성이 발생한 것이었다. 관계 부처들은 국내는 문제가 없다고 발표했다가 살충제 성분이 잇따라 발견되자 뒤늦게 전수조사를 벌이는 실수를 저질렀다.

이로 인해 정부에 대한 불신만 키우는 결과를 나았다. 

소비자시민모임 윤명 사무총장은 ‘생활환경의 위해요인으로부터 국민건강 보호를 위한 토론회’에서 “소비자들이 화학물질의 공포 속에서 살고 있음에도 정부의 대처가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 끝나지 않는 라돈 사태...손놓는 사이 생활용품 등 전방위로 번져


이 같은 사회분위기를 감안해 공정거래위원회는 소비자 안전을 확보하려면 위해요소를 사전적으로 탐지하고 대응해야 한다며 ‘선제적 소비자 안전 확보’를 소비자 정책 기본계획의 1순위로 꼽았다.

하지만 올해 5월부터 6개월째 생활용품, 가구 등 소비자 실생활에 밀접한 제품 전반을 휩쓸고 있는 ‘라돈 사태’에 대한 정부의 대응을 살펴보면 여전히 '발표 번복'과 '뒷북대응'이라는 구태가 반복되고 있다.

대진침대 라돈 사태는 한 소비자가 음이온 침대를 구매한 후 우연히 라돈아이(검출기계)를 사용하면서 알려졌다. 뒤늦게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조사를 진행했지만 1차 조사 결과 ‘문제가 없다’고 발표했다가 2차 조사 시 이를 뒤집으면서 정부의 조사 신뢰성에 금이 갔다.

라돈 사태는 대진침대 21종 제품에서 유해성분이 추가 검출되면서 확대됐으며 이후 ‘음이온’을 표방한 전기매트·온수매트·베개·생리대뿐 아니라 아파트 등 공동주택 건설 분야까지 번졌다.

소비자 불안의 가장 큰 이유는 정부의 뒤늦은 대응 때문이었다. 소비자가 직접 라돈 검출 기기인 ‘라돈아이’를 사용해 문제 제품을 신고하면 뒤늦게 온수매트, 흙침대 등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발표할 뿐이었다.

라돈에 대한 소비자 공포가 커지자 원안위는 11월2일 생활방사선안전센터를 발족했다. 생활방사선 제품안전 관리체계의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발표한 ‘생활방사선 제품안전 강화대책’ 가운데 하나다.

부적합 의심 제품을 상시 신고·접수받고 신속하게 수거해 조사하며, 문제가 생길 경우 중앙행정기관, 지자체, 유통업체가 힘을 합쳐 리콜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정부 대응도 보여주기식에 그친다는 지적이다. 환경보건시민센터는 “라돈 침대의 방사선 피폭량을 일주일도 안돼 기준치 이하에서 이상으로 번복한 사실과 안정성을 번복한 이후에도 안내지침 발표나 피해접수 같은 실질적 대책이 없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지난 11월28일에도 광화문에서 기자회견을 열며 “원자력안전위원회의 늦장 조사는 직무태만”이라며 “생활방사선안전센터는 현재 접수만 받고 검사는 하지 않는 등 허울뿐”이라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 제품 사전 검토·소비자 친화적인 리콜 제도...실효성 높여야


사실 위해물질에 대한 안전관리는 공정위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현재 위해물질에 대한 관리 책임이 여러 부서에 쪼개져 있고, 관리시스템도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다만 소비자보호의 기본정책을 입안해야 하는 공정위가 주요 제도의 개선을 통해 큰 틀을 잡는 역할을 다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위해물질 관리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시급한 조치로 꼽히는 게 소비자 피해가 생기기 전에 선제적으로 조사를 실시할 수 있는 ‘제품 표본 조사’와 소비자 친화적인 리콜 제도 도입이다.

라돈 사태가 터지기 전인 지난해 12월 국가인권위는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서 사업자의 제품에 대한 표본조사 실시 및 소비자 불만신고 관리·확인 등 정책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제품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사후조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산자부는 이미 선진국보다 엄격한 안전 관리와 안전관리체계를 시행·운영하고 있으며,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 중에서도 표본조사를 하는 곳은 없어 기업에 과도한 부담이 될 수 있다 등 소극적인 태도를 취했다.

하지만 인권위는 선진국에 없다는 산자부 주장과 달리 이미 독일에서 시행되고 있다고 반박하며 사전 예방을 강화하라고 재권고 했다.

인권위는 “침대 매트리스에서 1급 발암물질인 라돈이 검출됐으나 정부는 이 제품 원료로 쓰인 모나자이트의 사용, 유통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며 “제품의 생산 단계에서는 물론 유통 이후에도 제품의 잠재적 위험에 대한 신속한 인지와 조치를 위한 사업자의 제품 관찰 의무 대책 마련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사후 조치 역시 리콜 제도를 강화해 강력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공정위는 리콜 정보에 대한 소비자 접근성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실효성 있는 방안은 나오지 않고 있다.

리콜 제품은 한해 1400여 개 가까이 쏟아져 나오며 리콜 주체 역시 국가기술표준원, 식품의약품안전처, 환경부, 국토부, 한국소비자원(권고) 등으로 다양하다.

공정거래위원회 행복드림앱 등 한 곳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이트가 있지만 제품 구매 시 매번 리콜 여부를 검색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이미 구입한 제품을 매번 검색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이는 소비자에게 리콜 정보를 ‘알리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직접 ‘검색하는’ 방식을 고집하고 있어 생기는 문제다.

리콜 명령 이후 ‘이행 여부’도 손을 놓고 있다. 회수 자체를 업체 자율에 맡기고 있기 때문에 리콜 계획이 예정대로 이뤄지지 않거나 회수율이 저조하더라도 처벌 규정이 없다.

위해제품에서 소비자가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리콜 정책이 나와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11월22일 산업통상자원부와 국가기술표준원이 개최한 ‘글로벌 제품안전혁신 포럼’에서도 국내 리콜 제도의 문제점으로 제품 위해사고 정보를 수집하고 대응할 수 있는 체계가 미흡하고 리콜이행점검이나 보완 명령을 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국가기술표준원 김동호 제품안전정책과장은 “리콜 정보 수집은 언론의 모니터링이나 소비자신고에 의존하고, 유관기관과의 협력체계가 구축이 안돼 사고발생 정보파악이 어렵다”며 “제품이나 업체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인 이행점검도 회수율을 낮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공정위가 소비자 정책 기본계획 1호로 꼽을 정도로 중요한 사안인 안전 문제는 사실 공정위가 단독으로 끌고 가기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관리해야 할 대상이 너무 광범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정위가 안전 정책에서 실효성을 거두기 위해서는 관계 부처는 물론, 민간과의 협력도 강화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문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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