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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투자손실에도 한국전력 경영감시엔 '팔짱'...정부 눈치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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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투자손실에도 한국전력 경영감시엔 '팔짱'...정부 눈치보기?
  • 김국헌 기자 khk@csnews.co.kr
  • 승인 2020.02.28 07: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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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이사장 직무대행 박정배)이 투자대상 기업의 경영투명성 제고를 목적으로 최근 상장사 56개사에 대해 주식보유 목적을 '단순투자'에서 '일반투자'로 변경하면서 한국전력(대표 김종갑)을 제외해 논란이 되고 있다.

재벌 기업 견제에는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으로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는 한국전력의 경영상황은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가총액 30위권 기업 가운데 국민연금이 주식보유목적을 단순투자로 한정하고 있는 기업은 삼성바이오로직스(4위)와 한국전력(19위) 뿐이다.

국민연금은 최근 상장사 56개사에 대해 주주 가치 제고 및 대주주의 전횡 등을 저지하고 임원의 선임·해임 또는 직무 정지 등 회사의 기관과 관련된 정관변경 등을 요구한다는 취지로 이들 기업의 주식보유 목적을 단순투자에서 일반투자로 변경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국민연금이 지분 5% 이상을 보유한 상장사 수는 313개사로, 전체 상장기업의 14%가량이다. 

KT나 포스코, 네이버, 신한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 등 9개사는 국민연금이 최대주주다. 그리고 국민연금이 2대 주주로 있는 기업은 170여 곳에 달한다.

이들 기업 가운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현대자동차, 대한항공 등 56개사에 대해 주식보유 목적이 일반투자로 변경됐다.

단순투자 목적일 때는 주총안건에 대해서만 의결권 행사가 가능했지만 일반투자의 경우 배당·지배구조 개선 등을 적극 요구할 수 있다. 또 횡령, 배임 등 법 위반 혐의만 발견되면 사내이사 해임을 요구할 수 있다.

일례로 국민연금은 한진그룹 한질 칼과 대한항공을 대상으로 주주권을 행사한 바 있다. 지난해 5월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 국민연금이 이사 연임을 반대하는 바람에 고(故)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이 당시 경영권을 상실했다.

이로 인해 일반투자 목적으로 분류된 기업들은 국민연금 '감시 대상'으로 불리기도 한다.

당장 오는 3월 해당 기업 주총기간에 국민연금이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2020년 2월27일 코스피 시가총액 순위(자료: 네이버)
▲2020년 2월27일 코스피 시가총액 순위(자료: 네이버)

문제는 이 명단에 심각한 경영위기를 맞은 한국전력이 빠져 있다는 점이다. 

주주권 행사를 통해 주주 가치를 제고하겠다는 취지라면 최근 몇 년간 최악의 실적을 내면서 주주의 이익을 갉아먹은 한전이 '일반투자 목록'에 포함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한전은 정부가 51.1%의 지분을 보유한 최대주주이고 산업은행이 32.9%를 보유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7.2%로 3대 주주다.

◆ 한전에 한없이 관대한 국민연금, 정권 입맛에 맞는 주주권 행사 우려

한전은 문재인 정권 출범 후 탈원전 정책에 따라 수익이 급감하고 주가도 반 토막이 났다. 한전은 지난해 1조 7000억 원에 달하는 당기순손실을 낸 것으로 추정된다. 한전이 탈원전 정책에 발맞춰 제조원가가 낮은 원전을 줄이고 값비싼 액화천연가스(LNG), 신재생에너지 등의 비중을 늘린 결과다.

주가도 3년 전 대선 직전 4만5800원에서 27일 기준 2만3600원까지 하락했다. 이 때문에 국민연금도 7000억 원 이상 손해를 본 것으로 추정된다. 국민연금은 국민이 낸 세금으로 한전 지분을 샀기 때문에 주가하락이 곧 국민의 노후 자금 손실과 연결된다.

그럼에도 국민연금은 한전 경영진에 어떠한 책임도 묻지 않고 있다. 지난해 주가 급락에 뿔난 소액주주들이 나서서 "탈원전 정책을 그만두라"며 호소했지만, 국민연금은 한전 이사 선임을 반대하는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심지어 기업 경영을 해본 적이 없는 낙하산 인사의 이사 선임에 찬성하기도 했다.

이번 일반투자 변경제외도 국민연금이 한전에만 경영 개입을 하지 않겠다는 의도로 읽히고 있다.

재계에서는 한전이 일반투자 변경에서 제외된 배경을 국민연금이 권력에 침묵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한전은 상장사지만 공기업 성격이 짙고 정권의 정책에 순순히 따르고 있다. 

막대한 손해를 입으면서도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고분고분 따르고 있고, 적잖은 투자가 필요한 한전 공대 설립도 추진 중이다. 이밖에 정부의 선심성 가전제품 할인 행사와 각종 체육행사에 동원되기도 했다.

현재 국민연금은 기금운용위원회 위원장을 보건복지부 장관이 맡고 있다. 위원장을 포함한 20명의 위원 구성도 정부 편향적으로 구성할 수 있다.

국민연금은 주주권 행사를 주도할 기구로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를 구성했다. 민간 전문가로 구성한다며 지난해 위원을 선정했지만 총 14명 중 9명이 진보 성향이거나 정부 영향력이 가는 인사들로 구성됐다.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이 정부 입김에서 벗어나지 못한 구조다.

이 때문에 국민연금이 정부의 손발 역할을 하는 한전에 일반 사기업처럼 적극적인 경영권 개입을 할 수 없는 상황이 초래되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한전은 탈원전 정책으로 실적이 급락하고, 주가도 반 토막이 난 점을 고려하면 일반투자 목록에 응당 포함되어야 하는데 제외했다는 것은 정권 입맛에 맞는 블랙리스트 작성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가 정권을 위해 행사될 수 있고, 이 때문에 국민의 노후자금이 손해를 입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서강대 김정호 교수는 "국민연금 기금 규모가 엄청나서 마음만 먹는다면 국민연금은 거의 모든 상장기업 경영에 개입할 수 있다"며 그동안 국민연금은 비교적 조심스럽게 투자를 해왔지만, 이번 주총부터 분위기가 바뀌며 매우 공격적인 경영개입이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대로 가다가는 멀쩡한 우리 다국적 대기업들이 실질적으로 공기업이 되어 경쟁력이 추락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전이 일반투자 변경에서 제외된 건과 관련해 국민연금 관계자는 "개별기업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란 어렵다"며 답변을 거부했다. 한전도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연말 국민연금 기금에 손실을 봤음에도 한전에 대해서는 침묵한다는 언론보도에 해명자료를 낸 바 있다.

당시 보건복지부는 "한전 주가급락 등의 사유는 수탁자책임에 관한 원칙 및 지침 등에 따른 ‘중점 관리사안 또는 예상하지 못한 우려 사안’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국민연금은 기업가치 훼손 내지 주주권익 침해하는 사안이 발생할 경우 공·사기업 구분 없이 주주활동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었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여전히 한전에 대해 주주활동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김국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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