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금융사의 일감 몰아주기가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한한다며 계열사 펀드 판매 비중을 규제하는 취지가 무색해진 상황이다.
28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45개 금융사의 계열사 신규 펀드 판매 비중은 15.5%로 전년 동기 13.9%에 비해 1.6%포인트 올랐다.
계열사 펀드 비중은 전체 펀드 신규 판매 금액에서 계열사 펀드 금액이 차지하는 비율이다. 현재 펀드를 판매하고 있는 은행 13개, 증권사 23개, 보험 6개, 기타 3개 등 45개 금융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조사 대상 가운데 신규 펀드 판매 금액이 없는 금융사는 제외했으며 계열사 펀드 금액이 없는 경우만 ‘0%’로 표시했다.
업권별로는 13개 은행의 평균 비중이 20%로 지난해 1분기 17.2%에 비해 2.8%포인트 확대됐다. 보험의 경우 지난해 1분기 16%로 은행과 비슷한 수준이었으나 올해 1분기 12.6%로 3.4%포인트 낮아졌다. 6개 보험사 역시 지난해 1분기 8.5%에서 올해 7.3%로 1.2%포인트 축소됐다.
금융사 가운데 계열사 펀드 판매 비중이 가장 높은 곳은 미래에셋증권이었다. 미래에셋증권은 계열사인 멀티에셋자산운용, 미래에셋자산운용, 에너지인프라자산운용 펀드 상품 비중이 36.1%에 달했다.
미래에셋증권 관계자는 "최근 연금시장의 머니무브로 당사 연금자산도 많이 늘어나게 됐는데 미래에셋TDF의 수익률이 좋아 가입이 늘었다"며 "타 계열사의 좋은 펀드를 발굴해 연말까지 비중을 30%로 조정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NH농협은행도 NH아문디자산운용 펀드가 36%, 기업은행은 IBK자산운용 펀드가 32.7%에 달했다.
금융위원회는 금융사들이 계열사 펀드만 판매하는 ‘일감 몰아주기’ 현상을 막기 위해 2018년 6월 금융투자업규정을 개정해 계열사 펀드 판매 비중 상한을 조정했다. 금융사의 계열사 펀드 판매 금액을 공시하고 비중을 기존 50%에서 25% 수준으로 낮춘 것이다.
다만 시장 부담을 줄이기 위해 단계적으로 매년 5%포인트씩 낮추기로 했다. 2018년 45%를 시작으로 2020년 35%, 2021년 30%, 2022년 25%로 제한된다.
지난해 연말 기준으로 대부분의 금융사가 35%를 맞췄다. 미래에셋증권이 35.4%로 0.4%포인트 넘었으나 NH농협은행 34.9%, 부산은행 32.3% 등으로 낮췄다.
지난해 1분기까지만 해도 코로나19로 인해 주식시장이 요동치자 펀드에 투자금이 몰리면서 특정 증권사의 계열사 판매 비중이 50%를 넘어가기도 했다. 리딩투자증권 70.7%, 키움증권 61.3%를 기록했으며 제주은행 42.6%, 미래에셋증권 42.5% 순이었다. 하지만 계열사 비중을 맞추기 위해 하반기 조절하면서 35% 마지노선을 맞춘 셈이다.
업계에서는 계열사 펀드를 무조건 줄이는 것은 오히려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한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특정 자산운용사에 상품이 많고 수익률도 좋은데 같은 계열사 펀드라는 이유로 투자자에게 권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선택권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냐”며 “내부통제 기준에 따라 ‘일감 몰아주기’라고 할 만한 상품 자체가 없다”고 억울해 했다.
다른 금융사 관계자 역시 “분기별이 아닌 연말 기준으로 비중을 관리하고 있다”면서도 “특정 펀드를 무조건 권하는 분위기가 아니라 수익률을 바탕으로 포트폴리오를 투자자에게 제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문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