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투기자의'촌지실록'<8>'낑'의 분배 방정식
박 기자의 '기자실 가입'은 어렵게 이루어졌다. 가입을 받아들이는 대신 몇 가지 조건이 붙었다.
① 이번 출장에는 일단 참여시켜주는 것으로 한다.
② 그러나 '낑'은 나눠주지 않는다.
③ 만약 나눠주더라도 절반, 또는 절반의 절반 정도만 준다. 약간만 준다.
④ 박 기자도 앞으로 기자실 '복리후생'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한다.
⑤ 공식 가입 문제는 출장을 다녀온 뒤 적당한 시간에 다시 거론해서 결정한다.
등등이었다. 그러니 '절반만 가입'한 셈이 되었다. 이렇게 힘들고 까다로웠다.
박 기자와 함께 또 한 명의 기자도 '절반만 가입'하면서 덩달아 출장에 동행할 수 있었다. 박 기자와 비슷한 연배와, 비슷한 여건인 C신문사 기자였다. 누구는 절반 가입을 허용하면서, 누구는 제외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금융기관 버스를 함께 타고 출장 길에 오른 기자는 모두 15명이 되었다. 기존 출입기자 13명과 반쪽 짜리 가입 기자 2명이었다.
15명이면 제법 '대부대'였다. 금융기관 버스를 통째로 이용할 만한 인원이었다. 여기에다 한국은행의 공보실장은 빠질 수 없었다. 그러면 16명이 된다. 서두에 10여 명이라고 밝혔던 승객 수는 정확하게 말하면 16명이었다.
김봉투 기자는 출발에 앞서 박 기자에게 '가입 조건' 등을 통보해줬다. 출장을 가면 선배 기자들에게 행동을 각별하게 조심하라는 충고도 해줬다. 다녀온 후에 기자실의 '복리후생'을 위해 노력하는 의욕을 보여야 할 것이라는 '충고' 또한 빠뜨리지 않았다. 그래야 나중에 공식 '총회'를 열어 정식 멤버로 가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얘기해줬다.
그러면, 출장 결산을 해보자. 김봉투 기자는 이번 출장에서 '낑'을 도대체 얼마나 챙겼을까. 정확하게 기억하지는 못한다. 워낙 '낑'을 받은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당시의 기억을 최대한 돌이켜보았다.
출장비를 '협조'한 곳은 대충 다음과 같았다.
▲ 한국은행 100만 원
▲ 5개 시중은행 100만 원 x 5 = 500만 원
▲ 당시에는 특수은행이었던 외환은행 100만 원
▲ 역시 특수은행이었던 국민은행 100만 원
▲ '협조'한 대기업 최소한 2곳 100만 원 x 2 = 200만 원
▲ 지방 금융기관 100만 원
이 정도만 돌이켜봐도 모두 합치면 1,100만 원이나 된다. 1,000만 원을 훌쩍 넘어서는 것이다. 이 1,100만 원을 15명의 기자가 나누는 것이다. 단순하게 계산하면 1인당 73만 원이다. 그렇지만 반쪽 가입 기자 2명에게는 아마도 덜 분배했을 것이 뻔하다. 출장에 참여시켜준 것만으로도 고마워했을지도 모른다.
만약, 반쪽 가입 기자 2명을 제쳐놓고 13명으로 나누면 1인당 84만 원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하지만 이것 역시 정확하지 못하다. '단비(團費)'라는 것을 어느 정도 떼어놓기 때문이다. '단비'란 기자실 운영비를 말한다. 여러 기자들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에 공동경비가 어느 정도는 필요한 것이다. '간사'라는 것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 김봉투 기자로서는 '단비'의 내역을 제대로 알 수 없다.
어쨌거나 우수리를 떼고 기자 1인당 70만 원씩 '낑'을 챙겼다고 쳐보자. 온갖 접대와 향응을 받은 것까지 합치면 적어도 2배는 될 것이다.
김봉투 기자는 당시 월급이 60만 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랬으니 월급보다도 훨씬 많은 '낑'을 챙긴 것이 된다. 그것도 빳빳한 신권으로만 챙겼으니 짭짤했을 것이다.
한 곳에서 '협조'한 100만 원을 10여 조각으로 나누면 얼마 되지 않는다. 푼돈일 뿐이다. 하지만 그 푼돈이 여러 곳에서 모이면 어느 정도 뭉칫돈이 될 수 있다. '낑'도 마찬가지였다. 티끌 모아 태산이었다.
'낑'은 그것말고도 더 있었다. 구미공단의 대기업이 나중에 '낑'을 보내온 것이다. 공장에서 '무관의 제왕'을 몰라보고 '결례'를 했다는 정중한(?) 해명까지 곁들인 '낑'이었다. 그랬으니 김봉투 기자의 '낑'은 '70만 원 + α'였다. (2006.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