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철 살인 비화…담당검사"나도 떨었다"

2008-08-04     뉴스관리자
 4년 전 여름 이맘때 전국을 공포에 떨게 했던 연쇄살인범 유영철 사건은 아직도 국민의 뇌리에 생생히 박혀 있다.

   유영철을 직접 수사했던 검사는 그에 대해 어떤 기억을 갖고 있을까.

   당시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에서 사건 주임검사를 맡아 유영철과 얼굴을 직접 맞대야 했던 이건석 변호사가 4일 발행된 검찰 전자신문 뉴스-프로스 8월호에서 유영철 사건의 숨겨진 이야기와 그에 대한 추억(?)을 뱉어냈다.

   당시 이 변호사는 같은 부 소속 최관수 변호사와 사건을 나눠 최 변호사가 출장마사지사 살인을, 이 변호사는 부유층 연쇄살인 등 나머지 사건을 전담했다.

   ◇ "검사도 무서웠다" = 이 변호사가 유영철을 처음 만난 것은 경찰의 현장 검증 때였다.

   검은색 모자에 군청색 판초 우의를 걸치고 마스크를 끼고 있던 유영철의 태연한 범행 재연 장면을 지켜보자니 그 자체가 괴기스런 공포영화를 한 편 보는 것 같았는데 갑자기 유영철이 빤히 자신을 쳐다보더라는 것.

   순간 섬뜩함을 느꼈던 이 변호사가 나중에 왜 그렇게 봤느냐고 물었더니 태연하게 "혼자 양복 차림이어서 그냥 한번 봤을 뿐"이라고 답변했다.

   유영철 신병이 검찰에 송치되기 전 어느 휴일 이 변호사는 검찰청 10층 특별조사실에 혼자 출근해 사건 기록을 검토했다. 특조실은 출입이 제한돼 평소에도 혼자 있으면 음침한 느낌을 받는 곳.

   기록에는 피해자들의 끔찍한 부검과 사건현장 사진이 편철돼 있었고 때마침 비가 많이 내렸는데 천둥과 번개까지 치기 시작하자 공포감이 몰려와 도저히 기록을 계속 볼 수 없었다고 이 변호사는 털어놨다.

   또 한번은 유영철이 조사실에서 갑자기 간질 환자처럼 입에서 거품을 물고 쓰러진 일이 있었다.

   잠시 후 깨어난 유영철이 괜찮다고 해 다시 조사했는데 당시 형사3부장이었던 이동호 변호사에게 그 일을 보고하자 이 부장이 "이 검사 간 크네"라고 했다는 것.

   간질병이 없는 것으로 확인된 유영철이 경찰에서 도망칠 때도 간질 환자를 가장한 적이 있다는 점에서 도주하거나 해를 끼치려 자신을 떠본 게 아닌가 생각된다고 이 변호사는 돌아봤다.

   ◇ 유영철의 '선물' = 이 변호사는 당시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던 여러 새로운 사실을 고백했다.

   특히 부유층 연쇄 살인사건 해결에 결정적 단서를 제공해 준 사람이 다름 아닌 유영철 본인이었다고 한다.

   구치소 이감 요구와 함께 단식을 하면서 검찰 소환에 응하지 않던 유영철이 결국 포기하고 조사실에 다시 나타났을 때 이 변호사에게 대뜸 "선물 하나 주겠다"고 했다.

   키가 작은 유영철은 구두 뒤축에 키 높이 보조 뒷굽을 붙이고 부유층 주택가에서 범행을 했는데 경찰 기동수사대 승합차 안에서 이 보조 뒷굽을 떼내 의자 밑에 숨겨놨다고 털어놓은 것이다.

   유영철은 처음 검거됐을 때 부유층 살인사건을 자백했다가 혼절한 어머니를 보면서 심경 변화를 일으켰고 승합차를 타고 현장으로 가던 중 기침하는 척하며 손톱으로 뒤축을 뽑아냈다는 것.

   물증을 확보하지 못해 애태우던 검찰에게 범행 현장의 족적과 구두 보조 뒷굽의 일치는 결정적인 증거가 됐다.

   ◇ "범행 대상이었던 변호사를 선임해달라" = 유영철은 저명한 모 여성 변호사를 자신의 국선 변호인으로 선임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그 변호사는 유영철이 저지른 구기동 부유층 살인사건 주택 부근에 살고 있었는데 사실 유영철이 그 변호사의 집에 침입하려 했지만 마침 인부들이 작업을 하고 있어 포기하고 대신 구기동 저택을 범행 대상으로 삼은 것이라고 했다.

   사람의 생사가 한 순간에 갈린 것이었다.

   이 변호사가 이유를 묻자 유영철은 "그 변호사가 나에게 희생당할 뻔 했기에 오히려 나를 잘 이해할 것이고, 여성이기 때문에 부녀자 연쇄살인사건 범행의 동기도 잘 이해할 것 같아서"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 변호사는 '그럴듯한 궤변'이라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이는 성사되지 않았고 사형제 폐지 단체 변호사가 자원해 국선변호인으로 선임됐다.

   ◇ 여죄 있을까 = 유영철은 검찰 수사에서 4명의 부녀자를 추가로 살해했다고 자백했다고 한다.

   유영철은 그 사체들도 토막 내 다른 11구를 암매장했던 야산 주변에 묻었다고 말했고, 최 변호사는 더운 여름날 아직 남아 있던 이들 사체의 부패한 냄새를 참아가며 용하다는 점쟁이까지 동원해 두 차례나 현장을 뒤졌지만 결국 실패했다.

   최근 이 변호사는 당시 수사 경찰관들과 술자리에서 최 변호사가 사형이 확정된 유영철을 면회갔던 일화를 전해 들었다고 한다.

   그때 유영철은 최 변호사에게 "법무부 장관의 형집행장을 갖고 오면 여죄를 털어놓겠다"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이 변호사는 "그의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지금도 모르겠다. 진실이라면 아직도 땅에 묻혀있는 피해자들의 원혼은 어떻게 달래야 하나"라며 당시 수사 검사로서의 고뇌를 내비쳤다.

   과연 유영철은 그의 말대로 전체 사건 중 일부만 자백하고 사형집행이 임박했을 때 한 건씩 추가로 털어놓는 수법으로 삶을 연장하려는 것일까.(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