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27년만에 사시 합격증 한인섭 교수
한인섭(49) 서울대 법대 교수는 11일 "검찰ㆍ경찰ㆍ국정원 등의 권력기관이 법의 테두리 안에서 부여받은 권한만을 행사할 때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 교수는 이날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법이 잠을 자고 곤봉과 최루탄이 난무하는 `어둠의 시대'가 갔고 권력기관의 폭력은 줄어들었다"며 "법이 존중받는 질적인 발전을 이뤘다"고 평가했다.
그는 그러나 촛불집회 정국에 대해 "권력기관이 정치권과 유착해 국민적 신뢰를 저버린 사건"이라며 "권력기관과 정치권이 긴장관계를 유지할 때 국민의 신뢰가 높아진다"고 일침을 가했다.
한 교수는 1981년 제23회 사법시험 2차까지 합격하고도 시위 참가 전력으로 같은해와 다음해 3차 면접시험에 불합격했으나 올해 1월 법무부가 시위 전력으로 사법시험에 탈락한 사람에 대해 불합격 처분을 취소해 27년 만에 합격증서를 받았다.
다음은 한 교수와의 일문일답
-- 대학을 다닐 때의 상황을 말해달라.
▲유신 말기와 5공화국 초기는 `어둠의 시대'였다. 검찰ㆍ경찰ㆍ안기부 등 권력기관은 그 자체가 권력이면서 더 큰 권력의 시녀 역할을 했다.
대학 2학년 때인 1978년 9월 학내 시위에 참여했다가 관악경찰서로 끌려갔다. 일주일 넘도록 취조가 계속됐고 수사과정에서 폭력은 일상적이었다. 유치장에서는 조금만 느리거나 반항하면 손찌검과 매질을 했다. 기본권이 제한된 시대가 아니라 유린당한 시대였다.
-- 사법시험 3차 면접에서 떨어진 이유는.
▲안기부가 학생운동으로 징계나 처벌을 받은 사람에 대한 자료를 시험당국에 보냈고 `국가관 불량'이란 이유로 면접에서 떨어졌다. 권력기관이 개인의 장래를 가로막은 폭압적 사건이었다.
-- 지난 우리 역사에서 권력기관의 지형도는 어떻게 변화했나.
▲1공화국에서 경찰, 3ㆍ4ㆍ5공화국에서는 중앙정보부와 안기부 등의 정보기관, 6공화국 이후에는 검찰의 영향력이 커졌다. 현재는 법원과 헌법재판소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졌다.
특히 1987년을 기점으로 질적인 차이가 있다. 1987년 이전에는 법보다 권력ㆍ주먹이 앞섰고 권력기관의 고문과 폭력은 독재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1987년 이후에는 시민을 향한 폭력성이 약해졌다. 권력기관은 법을 남용하더라도 `법대로 한다'며 정당한 권한기관(법적으로 부여받은 권한이 있는 기관)이 되기 위한 외형상 노력을 기울였다.
-- 권력기관의 한 축인 경찰의 변화에 대해 평가해달라.
▲경찰은 지난 10여년 동안 엄청난 자기혁신을 했다. 민주경찰ㆍ인권경찰이란 말이 나왔고 검찰보다 먼저 변호인 참여제도를 도입해 인권수호를 위해 노력했다. 경찰은 이를 통해 숙원사업인 수사권 독립을 이룩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번 촛불집회를 통해 10여년 동안 쌓은 이미지가 한번에 무너졌다. 국민은 자신들을 공격하는 경찰에 실망했다. 결국 이 문제는 부메랑으로 돌아와 수사권 독립을 더욱 어렵게 할 것으로 본다.
-- 국정원의 변화에 대해서도 말해달라
▲국정원 역시 자기혁신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과거사 청산에 앞장섰고 실제로 결과물을 내놓았다.
예전에 비해 국정원이 국민의 관심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다는 사실은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 검찰의 변화상에 대해서 설명해달라
▲6공 때 검찰의 영향력이 크게 확대됐다. 특히 지난 참여정부는 검찰에게 가장 행복한 시기였다. 검찰은 청와대와 긴장관계를 형성했지만 오히려 국민의 신뢰는 높아졌다.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국민 검사란 말도 나왔고 격려 편지와 선물 등이 쇄도했다.
또 강금실-송광수, 천정배-김종빈 관계에서 볼 수 있듯이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돌았고 덕분에 아무도 권력을 남용할 수 없었다. 실익은 없지만 국민으로부터 존경이라는 더 큰 이익을 얻었다.
-- 현재의 검찰의 모습에 대해서 어떻게 보나.
▲검찰의 장기적인 위상에 많은 폐해를 초래하고 있다.
PD수첩 수사의 경우 언론사 간 논쟁을 통해 진실을 밝히면 되는 것인데 검찰이 개입했다. 검찰이 PD수첩을 압박함으로써 정권에 믿을만한 파트너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위상을 보장받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국민적 신뢰를 상실하고 있다.
네티즌 댓글과의 싸움도 마찬가지다. 검찰은 경찰 수사력이 감당할 수 없는 거악(巨惡)을 척결해야 하는데 개미와의 싸움을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검찰 홈페이지에 `나도 잡아가라'는 식의 비아냥거림을 듣고 있다.
정치권과의 유착은 눈에 보이고 소소한 사건에 당사자로 끼어들어 싸우고 있다.
-- 각 권력기관이 앞으로 나가야 할 방향에 대해 말해달라.
▲모든 기관은 조직의 힘을 키우려는 조직 이익 극대화의 욕망이 있고 수뇌부에게는 출세를 향한 야망이 있다. 이런 요소들은 권력기관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게 방해하는 현실적인 방해요소다.
각 기관은 법적으로 제한된 권한을 행사하고 다른 기관과의 견제와 균형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