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들, 올림픽 기간 업무능률 쑥쑥~!
박태환의 올림픽 수영 자유형 200m 준결승전이 열린 11일 오전 11시 20분 서울 중구의 한 회사 사무실.
일찌감치 "이제 곧 시작이야"라는 숙덕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휴대전화기 DMB나 인터넷 생중계 사이트가 하나둘씩 켜지기 시작했다.
"2등! 결선 진출. 우와 앗 짝짝짝∼". 상사가 짐짓 모른 척 하는 가운데 너무 크지 않도록 절제된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태극전사들이 보내오는 잇따른 낭보로 2008 베이징올림픽의 열기가 초반부터 달아오르면서 역사적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는 직장인들의 `눈치 시청'이 새로운 풍속도로 자리잡고 있다.
서울과 베이징의 시차는 1시간에 불과해 이번 올림픽의 주요 경기가 업무시간과 겹치면서 중계방송을 마음놓고 시청할 수 없기 때문이다.
AGB미디어리서치에 따르면 일요일인 10일 방송3사가 중계한 주요경기의 종합 시청률은 박태환의 수영 자유형 200m 예선 52.2%, 400m 결선 43.7%, 여자양궁 결승 49.3%, 윤진희가 출전한 53㎏급 여자역도 39.4% 등을 기록했다.
주말이라는 변수를 감안하더라도 이 같은 시청률은 이례적이다.
이번과 마찬가지로 시차가 1시간이었던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일일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경기는 축구 한국-모로코전(37.5%.9월 17일 일요일)과 유도 조인철의 결승전(36.2%.9월 19일 화요일).
이는 이번 베이징올림픽의 여자역도 윤진희의 경기보다도 낮은 수치다.
이번 베이징올림픽 관전이 8년전 시드니올림픽 때와 다른 점은 그동안 한국의 정보통신이 비약적으로 발전해 업무용 컴퓨터로 실시간 고용량 동영상을 볼 수 있고 휴대전화기 DMB를 통한 `몰래' 관전도 가능해진 점을 꼽을 수 있다.
실제 대다수 직장인들은 이날 일터에서 포털사이트에 연결된 실시간 중계나 휴대전화기를 통해 주요경기를 `훔쳐'봤다.
엘지화학에 다니는 김모(29.여)씨는 "사무실에 텔레비전이 있지만 업무시간에는 못 튼다"며 "영화와 음악 사이트 등은 접속이 막혔지만 경기는 포털사이트를 통해 동영상으로 보기 때문에 회사가 막기는 어려운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는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 때도 업무시간에 팀원들이 한 컴퓨터에 모여 함께 보거나 자기 컴퓨터로 경기를 보는 등 암묵적인 허락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렇게 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에스케이 네트웍스에 근무하는 심모(33)씨는 "낮에 특별한 경기가 있으면 인터넷이나 휴대전화기 DMB로 보면 된다"며 "회사측도 너무 엄격하게 막으면 사원들 불만만 커지고 업무 효율도 낮아지기 때문에 모른 척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엘지텔레콤 관계자는 "지금까지 주요경기에 전사적으로 시간을 따로 빼준 적은 없었고 제재 지침도 없었다"며 "다들 인터넷으로 중간마다 알아서 보고 팀에 따라서는 텔레비전을 켜놓고 일을 하는 곳도 있지만 업무능률을 감안해 내린 특별한 방침은 없다"고 밝혔다.
공무원들은 각종 엔터테인먼트 사이트에 접속하지 못하도록 업무 컴퓨터를 원천봉쇄한 데다 휴가철에 업무 공백이 없도록 기강을 확립하라는 지시까지 내려져 있어 일반 회사원들보다 고충이 큰 모습이다.
서울 모 구청의 직원 김모(32)씨는 "휴게실에 텔레비전이 있지만 관전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업무도 많은데 `짬밥'이 낮은 사람들이 특별한 허락 없이 실시간 중계를 찾아보긴 힘들다"고 아쉬워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