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행수입차 알고보니 AS '비지떡'
차량 가격 10~15%싸지만 부품 .수리시간 '바가지'
지난 19일 밤 9시 40분 CJ홈쇼핑의 전화통에 불이났다.
국내 최고가 차량으로 꼽히는 벤츠의 최고급 세단인 S클래스 'S550'이 국내에선 처음 홈쇼핑을 통해 방송되자마자 계약자들이 몰린 것이다.
이날 방송중 가계약금 100만원을 걸고 차량을 주문한 고객은 모두 50명.
계약금을 낸 고객은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시승 차량을 탑승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고 정식 계약은 시승 후 이뤄진다.
이날 홈쇼핑 시청률도 평균 시청률의 3배에 달할만큼 고공행진을 했다. 시청 고객도 대부분 고급 자동차에 관심이 많은 30~50대 VVIP급 남성 고객이었다.
CJ홈쇼핑은 당초 가계약금을 2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높여 잡았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주문이 이루어지자 판매 목표도 당초 2~3대에서 5대~10대로 높여 잡았다
이날 방송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모은 벤츠 'S550'은 국내 공식 수입업체인 한성자동차가 아닌 국내 모 대기업이 수입한 병행수입차량이었다.
이날 방송된 이 차량의 가격은 1억7450만원(VAT포함)으로 국내 정식 수입품에비해 15%가량 저렴했다.
국내에도 병행수입차 시대가 서막을 열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병행수입제’란 같은 상품을 여러 업자가 제각기 다른 경로로 국내에 들여와 판매할 수 있는 제도. 지난 1995년 11월부터 수입공산품의 가격인하를 유도하기 위해 허용됐다.
그러나 일반 공산품과 달리 AS나 유통경로가 독특한 차량은 병행수입이 허용된 이후에도 국내에서 별다른 움직임이 없이 정식 수입권자가 수입하지 않은 경차등에 한정돼 있었다.
자동차의 병행수입이 본격화된 것은 작년 일부 대기업등이 가세하면서 최근들어 부쩍 기세를 올리고 있다
그러나 한국 소비자를 봉처럼 여기는 수입차 업체들의 가격 바가지에 대응할수있는 유일한 대안으로 병행수입차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지만 AS에대한 불만은 일반 수입차보다도 크게 높아 수입차 소비자 불만의 또다른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병행수입 차량의 가장 큰 매력은 가격이 싸다는 것.정식 수입차량보다 풀옵션기준으로 10~15%가량 싸다. 현재 2억660만원에 팔리는 벤츠 S550는 병행수입차량으로는 3000만원 싼 1억7650만원에, 1억8520만원 하는 BMW 750Li도 3170만원 싼 1억5350만원에 구입할 수 있다. 또한 도요타, 아우디, 크라이슬러 차량들도 수백만원에서 최대 수천만원까지 저렴하다.
더우기 정식 수입차량이 대부분 소비자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풀옵션으로 판매되는데 반해 병행수입차량은 옵션을 선택할수있어 풀옵션을 선택하지 않으면 가격은 이보다 훨씬 더 싸게 살수있다. 한국의 수입차 가격이 바가지 수준이라는 것은 이미 공인된 사실.
한국소비자원의 최근 조사에서도 국내에서 판매되는 수입차 가격이 일본, 독일, 프랑스, 미국 등 G7 주요 선진국과 주요 아시아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2배 이상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자들의 높은 가격저항은 곧바로 이같은 '저렴한' 병행수입차량에대한 관심으로 나타나, 작년부터 국내 병행수입차량 시장도 본격적인 태동기에 접어들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병행수입차량이 늘어나면서 문제점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부품 가격이 정식 수입차량에 비해서도 크게 비싸고 고장이나 사고가 나면 AS기간도 너무 오래 걸리는 점 때문에 소비자들의 불만이 가중되고 있다.
일부 수입차량의 경우 품질보증서를 잃어버리면 운행여부에 관계없이 아예 무상보증을 거부해 소비자가 수천만원의 수리비를 바가지 쓰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경기도 부천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김모씨는 작년 6월 B사의 수입차를 구입하기 위해 매장에 들렀으나 풀 옵션의 차량을 권하면서 ‘사든지 말든지’하라는 태도에 화가나 그냥 나와 버렸다. 하지만, 병행수입차 매장을 둘러본 후 바로 차를 구입했다. 김씨는 “병행수입차 매장에서는 영업사원도 매우 친절하고 특히 10%이상 저렴한 가격에 옵션을 원하는 대로 고를 수 있어 만족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1년 동안 차를 굴리면서 김씨는 갖은 고생을 겪었다. 김씨는 “정식 수입차의 폭넓은 AS에 비해 병행수입차는 공식 업체에서 AS 받으려면 서비스 쿠폰을 사야만 했다. 또 엔진 미션계통 이외에는 무상수리가 안 되고 수리비의 30%가 할증이 붙는 등 조그만 부품하나 갈려고 해도 수리기간이 한 달 가까이 걸리는 바람에 여러 가지로 피해를 입었다”고 하소연했다.
품질 보증서를 잃어버렸다는 이유만으로 수천만원의 수리비를 바가지 쓰는 황당한 사건도 본지에 제보됐다.
자동차 병행수입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함모씨는 작년 12월 독일로부터 A차량을 수입해 올해 3월에 판매했다. 그러나 7월 말경 고객으로부터 차에 엔진경고등 점등과 더불어 차체가 심하게 흔들린다는 불만이 접수됐다.
정밀 진단을 한 결과 8번 실린더에서 압축이 새고 있으며 엔진의 실린더 블록에 스크래치가 있어서 엔진 전체를 통째로 교환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이럴 경우 1800만 원 가량의 비용이 소요된다.
함씨는 독일 본사와 A코리아에 연락해 월드와이드워런티(2년/무제한 km 무상보증)를 신청했다. 그러나 월드 와이드 워런티를 받기 위해서는 독일 현지판매 딜러의 도장이 날인되어 있는 서비스 스케쥴북이 있어야 되는데 없다며 워런티가 안 된다고 통보를 받았다.
그러나 함씨는 “구입당시 서비스 스케줄북을 받은 기억이 없다. 독일 A본사에 재발급을 요청하였으나 재발급은 안 된다고 한다. 구입당시 담당 딜러의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해도 연락처를 알 수 없다는 답변만 반복하고 있다. 다른 것도 아니고 그냥 책자하나 없어진 것이고 그 책자 하나 다시 도장 찍어 발행하는 것이 왜 안 되는 것인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며 “이 상황을 어찌 해결해야 할지 참 막막하다”고 하소연했다.
이에 대해 A사 관계자는 “서비스 스케줄북은 차를 구입한 곳과 판매한 딜러의 정보, 정비이력 등이 상세히 기록된 중요한 서류다. 회사 규정상 재발급은 불가능하다. 정상적으로 지정된 업체를 통해 수입된 차라면 모든 정보가 전산에 입력이 되어 있어 워런티를 받을 수도 있지만 지정업체가 아닌 병행업체를 통해 들어왔기 때문에 서비스북은 필수적으로 있어야만 한다”며 "지금이라도 서비스 스케줄 북을 찾아온다면 가능하다”고 말했다.
병행수입차를 차별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병행수입차량의 AS비용이 터무니없이 비싼 이유에대해 한 병행수입업체의 대표는 “정식 수입 차량은 차량가격에 AS 비용도 모두 포함된다. 하지만, 병행 직수입 차들은 차량 가격을 낮추면서 AS 보증을 줄일수밖에 없다. 정식 수입차량처럼 다 해주면 손해다”라고 잘라 말했다.
결국 수입차의 판매가격 바가지를 경우 벗어나는가 했던 소비자들은 병행수입차의 AS바가지로 옮겨탄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