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입자좀 구해 주오"..전세 물건 넘쳐 흘러
최근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세입자가 없어 전세물건이 남아도는 '역전세난'이 심화되고 있다.
겨울방학을 앞두고 이사 수요가 움직일 시기인데도 전.월세 수요는 찾아보기 힘들고 전세가격은 곤두박질치고 있다.
이에 따라 당장 이사를 가야 하는 세입자들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고통받고, 집주인과의 크고 작은 분쟁도 확산되고 있다.
◇ '이사 안간다'...급전세 속출 = 30일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114 조사에 따르면 서울, 신도시, 수도권 전셋값은 11월 한달간 1.28%, 1.06%, 0.89% 각각 하락했다. 이는 올들어 월별 변동률 기준으로 가장 많이 떨어진 것이다.
예년 이맘때 같으면 12월부터 시작될 방학을 앞두고 전세를 구하려는 사람이 늘었을텐데 올해는 찬바람만 분다.
올들어 서울, 수도권의 새 아파트 입주물량이 늘어난 반면 불경기로 이사수요는 급감했기 때문이다.
특히 강남, 서초, 송파, 강동구 등 4개구는 최근 입주한 대규모 재건축 단지의 전세 물량이 쏟아지면서 11월 한달간 서울 평균의 2배 가까운 2.45%나 하락했다.
대표적인 유명 학원 밀집 지역인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경우 '방학 특수'는 찾아보기 힘들다.
대치동 은마아파트의 경우 지난 9-10월 가을 이사철에 비해 전셋값이 평균 2천만-3천만원 하락했지만 전세 물건이 쌓이고 있다. 지난 가을까지 2억7천만원이던 112㎡는 현재 이보다 4천만-5천만원 싼 2억2천만-2억3천만원짜리 '급전세'도 나오고 있다.
현지 중개업소 관계자는 "은마아파트 단지에서 소화되지 않고 쌓여있는 전세 물량이 최소 100-200가구는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치동 쌍용1, 2차, 우성 1차 등도 최근 전셋값이 2천만원 정도 하락했지만 가격을 낮춰도 들어올 세입자가 없다. D공인 관계자는 "현재 나와 있는 전세물건의 3분의 2 이상이 계약 만기가 지난 것이고 심지어 가격이 높은 경우 내놓은 지 1년이 넘도록 빠지지 않는 것도 있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는 서울 강북과 수도권의 소형 아파트로 확산되는 모습이다. 소형 아파트 밀집지역인 노원구 상계동 주공 46㎡ 전세는 1억1천만원에서 1억원으로 떨어졌지만 거래가 안된다.
L공인 관계자는 "불경기가 지속되면서 이사비용이나 중개업소 소개비라도 아끼기 위해 이사를 가지 않고 그대로 눌러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 전세금 낮춰 재계약...분쟁도 속출 = 역전세난이 심화되면서 세입자의 고통은 커져가고 있다. 당장 새 아파트에 입주해야 하는 세입자는 잔금을 구하지 못해 입주에 차질을 빚고 있다.
강남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반포 자이, 잠실 주공 재건축 단지 등 새 아파트 입주자들이 전세금을 받아 이사를 가야 하는데 전세가 나가지 않아 애를 먹고 있다"며 "송파, 강동구 재건축 입주예정자 일부는 새 아파트 입주기간이 지났는데도 방이 빠지지 않아 입주도 못하고 관리비만 부담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집주인들도 괴롭긴 마찬가지다. 세입자와 벌이는 크고 작은 언성은 둘째치고 전셋값 하락으로 보증금을 일부 돌려줘야할 형편이다.
경기도 용인의 동아솔레시티 대형 아파트는 최근 집주인들이 계약기간 만기를 연장하려면 차액인 2천만-3천만원을 세입자에게 내줘야 한다.
분당신도시도 판교신도시 입주가 임박하면서 급전세가 쏟아지며 탑마을의 경우 주택형에 따라 1천만-5천만원 정도 세입자에게 돌려주고 재계약을 하고 있다.
전세 보증금 반환을 둘러싼 분쟁도 줄을 잇는다. 분당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만기가 한참 지났는데도 집이 안빠지는 경우 집주인이 대출을 받아 전세금을 갚기도 한다"며 "집주인과 사이가 안좋을 경우 임차권 등기를 설정하고 전세보증금 반환 청구소송을 진행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월세 체납과 관련한 다툼도 늘었다. 중계동의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소형은 보증금이 300만-500만원의 소액이다보니 월세가 몇 달만 밀려도 보증금을 까먹기 일쑤"라며 "명도 문제로 상담해오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올 겨울 방학특수도 사실상 없을 것으로 보고 있어 역전세난은 쉽기 해소되지 않을 전망이다.
부동산114 김규정 차장은 "최근들어 학군 특수가 사라진데다 경기 침체에 대한 불안감이 주택 시장을 짓누르고 있다"며 "올 연말부터 내년초까지 서울 강남권과 판교신도시 등 수도권 요지의 입주가 대기중이어서 전세가격 약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