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조치' 판사 10여명 고위법관 근무

2007-01-30     연합뉴스
유신시절 긴급조치 위반사건의 재판에 관여한 판사 중 일부가 대법관과 헌법재판관을 비롯한 고위 법관으로 재직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29일 진실ㆍ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작성한 `긴급조치 위반사건 판결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1970년대 긴급조치 위반으로 기소된 589건을 판결한 판사 492명 중 10여명이 현재 지법원장 이상 고위직을 맡고 있다.

이들 가운데는 대법관과 헌법재판관도 여러 명 포함돼 있다.

또 긴급조치 판사 중 전직 지법원장 이상 고위 법관을 지낸 뒤 변호사로 개업한 판사는 100명 가량으로, 대법원장 4명, 대법관 29명, 헌재소장 1명이 포함돼 있고 고등법원장을 끝으로 퇴임한 판사도 14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고서에는 현직 A헌법재판관이 1978년 유신헌법과 긴급조치 폐지를 주장하며 시위를 주도한 대학생에게 징역 및 자격정지 2년6월을 선고했고, B대법관은 1976년 유언비어를 유포한 혐의로 기소된 피의자에게 징역 1년6월을 선고한 것으로 돼 있다.

진실화해위는 "30일 오후 임시 전원위원회를 열어 긴급조치 판결에 관여한 판사 실명을 공개할지 여부를 최종 결정하려고 했는데 실명이 이미 공개돼 당황스럽다"며 "전원위는 예정대로 진행하고 보고서를 유출한 직원은 징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위원회 관계자는 "판사는 공인인 데다 사건번호만 알면 담당판사를 알 수 있다고 생각해 보고서에 실명을 기재해도 문제가 없을 것으로 판단했었다"며 "재판기록을 요약ㆍ정리하는 차원에서 판사 이름을 썼을 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것은 아니다"고 했다.

보고서에 실명이 공개된 사실이 알려지자 상당수 판사들은 "과거 실정법에 따라 판결한 법관의 실명을 무분별하게 공개하면 당사자를 매도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라고 반발했다.

실명 공개에 대한 시민단체 반응도 엇갈렸다.

선진화국민회의는 성명을 통해 "실명공개는 정치적 의도를 갖고 사법부를 공격하는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며 "실정법에 따라 재판한 판사를 여론재판 대상으로 삼아선 안된다"고 밝혔다.

반면 새사회연대 이창수 대표는 "담당판사의 명단 공개는 과거청산 차원에서 당연한 조치"라며 "판사는 자신의 판결에 책임을 지는 뜻에서 피해자나 유족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대법원은 자체 과거청산위를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