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어느 임금이 정력 가장 셌을까?

2007-02-05     연합뉴스
조선 역대 왕 중에서 가장 많은 부인을 거느린 왕은 누구였을까? 연산군? 아니다. 이 부분 기록 보유자는 3대 태종과 9대 성종. 모두 12명에 이르는 정비와 후궁을 두었다. 성병이 사망 원인이라는 소문이 도는 세종은 그 절반인 6명이었다.

조선 인조 15년(1637)에 실시된 무과시험에서는 합격자만 5천506명을 배출했다. 통상 무과 합격자는 30-50명이었으니 파격인 셈이다. 무슨 사연이 있었을까?

답은 병자호란이다. 그 전 해에 발발한 호란에 대비하기 위해 합격자들을 급조해 냈다. 그러다보니 다양한 계층에서 합격자가 나왔다. 그런 사정은 이눗쇠, 김끝세, 안끝남 등의 합격자 명단에서 단적으로 확인된다. 전쟁이 강고한 신분질서를 붕괴하고 사회의 역동성을 부여한 계기임을 엿볼 수 있다.

유교 질서라면 장자 중심주의라고 이해하기 쉽지만, 통계는 이를 거부한다. 역대 조선왕 27명 중 장자가 왕위를 계승한 경우는 고작 7명이다. 문종ㆍ단종ㆍ연산군ㆍ인종ㆍ현종ㆍ숙종ㆍ경종이 그들. 이 중 제대로 왕구실을 한 이는 숙종 정도에 그친다. 유교질서는 이상이었을 뿐, 실제는 냉혹했다.

고려시대 이후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치른 과거에서 형제 5명이 모두 합격한 경우는 7번이 확인된다. 고려조에서는 우홍득(禹洪得)ㆍ홍수(洪壽)ㆍ홍강(洪康)ㆍ홍부(洪富)ㆍ홍명(洪命)이 있고 조선시대에는 6번이나 있었다. 하지만 조선 인조 때 6형제 합격자를 배출한 원식(元植) 가문에는 미치지 못한다.

과거시험 최연소 합격자는 고종 3년(1866) 별시에서 병과(丙科) 3등으로 입격한 이건창(李建昌). 그는 만 13세였다. 반면 최고령 합격자는 문과ㆍ무과ㆍ사마시ㆍ잡과를 모두 포괄할 때 고종 27년(1890)에 실시된 기로응제시(70세 이상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시험)에 85세로 입격한 정순교(丁洵敎).

조선 인조-효종 연간에 영의정을 역임한 정태화(鄭太和. 1602-1673)는 사직상소를 무려 37번이나 올려 이 부분 신기록 보유자로 등록됐다.

이는 모두 한국학중앙연구원(한중연. 원장 윤덕홍)이 정보통신부 산하 한국정보문화진흥원과 한국정보사회진흥원(옛 한국전산원) 지원을 받아 '한국 역대인물 종합정보'(people.aks.ac.kr)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이다.

이렇게 구축된 한국역대인물 7만8천명에 관한 종합정보 서비스가 최근 일반에 개시됐다. 이는 조선시대 과거시험 합격자 7만4천명에 관한 인물정보를 포함하고 있다.

이곳에는 이 외에도 조선시대 관직명 정보 1천개, 성씨본관 정보 600개에 관한 내용도 포함됐다.

한중연은 이 인물DB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역대인물 정보 중 가장 방대하고 치밀하다고 자평했다.

한중연은 각 인물에 고유한 '식별자'(UCI. Universal Content Identifier)를 부여하고 이를 통해 외부에서 쉽게 연계 활용할 수 있도록 정보를 구축했다고 덧붙였다.

나아가 개인 홈페이지나 블로그에 쉽게 인물 검색창을 삽입할 수 있도록 검색 모듈도 별도로 제공한다. 이에 의해 예컨대 홈페이지 게시판 등에 검색창 삽입 소스를 '붙여넣기' 하는 식으로 누구든 인물 정보 검색창을 만들 수가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