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성철 고시원참사, "칼 맞고 피흘릴 때 얼마나 아팠을까" 눈물
▶ 기획의도
2008년 10월 20일 아침, 논현동의 한 고시원에서 6명이 죽고 7명이 다치는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자신의 방에 불을 지르고, 연기를 피해 나오는 사람들을 칼로 찔렀다. '사이코패스가 저지른 묻지마 범죄'. 100여 일이 지나고 이 사건은 사람들의 뇌리 속에서 잊혀졌다. 그러나 유가족들은 고단한 삶을 견디던 가족의 죽음을 잊지 못한다.
사고가 난 고시원에는 '우리도 남들처럼'을 꿈꾸던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아들 수술비를 모으려 밥도 사먹지 못하며 일하던 엄마, 학비를 마련하려 아르바이트를 하던 딸, 가족과 헤어져 하루하루 먹고살던 아들. 논현동 먹자골목이 삶의 터전인 사람들에게 고시원은 보증금 없이 고단한 몸을 누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유가족들의 슬픔과 희생자가 남긴 흔적을 통해, 가난한 이웃의 삶이 남긴 간절한 소망을 들여다본다.
▶ 주요내용
1. 그 날의 기억
'8시 반쯤인가... 갑자기 여자 비명소리가 들렸어요.'
'까만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 올라와서 처음엔 불이 난 줄 알았어요.‘
'범인은 온통 검정색 옷을 입고 있었어요. 얼굴에는 두꺼운 마스크를 쓰고 검정색 물안경, 헤드랜턴을 끼고 칼을 들고 서 있었어요. 마치 특수부대원 같았어요.' '범인을 본 순간 여기에 있는 모든 사람을 죽이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사람을 죽이고 빨리 저 사람도 죽여야지 이런 느낌...섬뜩하죠.' '칼로 찌르는데도 표정은 너무 침착해 보여 당황스럽더라고요.'
-생존자들의 증언 中에
범인은 바로 그 고시원에서 5년 간 생활하던 사람이었다. 6명이 죽고 7명이 중경상을 당한 참혹한 현장이었다.
2. 남겨진 생존자들, 고통스러운 삶은 계속된다.
사고가 나고서야 아들, 딸의 삶을 알게 된 가족들.
"아들이 고시원에 사는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사고가 나서야 알았죠. 자기가 혼자 고시원으로 옮긴 거예요. 경비 좀 줄여보려고... 지금은 다쳐서 일도 못하고 쉬고 있어요. "
-생존자 임모씨 어머니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생존자 김대영(29)은 범인에게 칼에 찔리는 순간 자신이 죽는다고 생각했다.
"그냥 죽는구나. 아 이제 죽는구나. 가족 한 번 봤으면 좋겠다 그 생각 밖에 안 들더라고요. 그 상황에서는. 가족들 본지도 너무 오래됐고..." -김대영
김대영은 형편이 어려워 여러 가지 일을 했으며 가족과 떨어져 13년 동안 고시원에서 혼자 생활한 청년이었다. 이번 사고가 나서야 그렇게 만나고 싶었던 가족을 만났지만 또 다른 고통을 받고 있다. 복부 관통상으로 인해 소장의 3분의 2를 잘라내는 대수술을 받았고, 맨손으로 칼을 막는 바람에 엄지손가락 인대와 신경이 완전히 끊어졌다. 앞으로 생계를 위해 준비하던 굴삭기 자격증을 딸 수 없게 되었다. 기적적으로 살아남았지만 삶은 너무 막막하다. <묻지마 범죄>로 인해 자신의 소중한 일터와 꿈을 잃을 수 밖에 없었던 남겨진 생존자들의 끝나지 않는 고통을 만나본다.
3. 엄마는 살고 싶었다.
- 엄마의 소원
첫 번째 희생자였으며 범인에게 30군데 이상을 찔린 故 이월자(51)는 중국동포로 지난 2006년 12월 말 한국에 들어왔다. 엄마는 간절히 바라던 소원이 있었다. 엄마의 실수로 막내 아들은 세 살 때 가마솥에 다리가 빠져 중화상을 입었다.
"엄마의 소원이었어요. 다리 고쳐주겠다고 천 원 한 장도 아껴 썼어요.
돈 모아서 일성이 수술 시켜준다고 했는데.... "- 큰 딸 방해란'
수술비 2천만 원을 모으기 위해 몸이 부서지도록 일을 했다. 하루 13시간씩 식당에서 설거지를 하며 고시원에서도 가장 작고 창문도 없는 방에서 생활했다.
"먹지도 못하고 입지도 못하고 매일 잠도 못자고.... 설거지를 너무 많이 해서 손의 뼈마디가 다 튀어나오고 그랬어요. "-큰 딸 방해란
불타버린 엄마의 방에는 아껴먹으려 전 날 퍼 놓은 밥 반공기와 펼쳐놓은 벼룩신문, 처음으로 제 돈 주고 사 본 4만 원짜리 옷 두 벌만이 남아 있었다.
- 온 가족과 아파트에 사는 게 꿈이었다.
故 조영자(52) 또한 중국동포로 작년 2월 한국으로 들어왔다. 한국에서 열심히 돈을 벌어 올해 4월 중국으로 돌아갈 예정이었으며 아파트에서 행복하게 온 가족이 모여 사는 꿈을 꾸었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식당과 파출부 일이 힘들었지만 가족들에게는 지내기 좋다며 걱정 말라고 했던 엄마.
"그 방 들어가 보니까 아주 캄캄해요. 그 조그만 움직일 수도 없는 방에서 있었다는 게 정말 마음이 아파요. 엄마는 저한테 전화할 때는 늘 편안하고 조용하고 하니까 안전하다고.... "
-故 조영자 큰딸 천련화'
방에는 일기장 한 권이 남아있었다. 가족들조차도 차마 보지 못한 엄마의 일기장을 공개한다. 세상을 뜨기에는 너무 아까운 사람이었고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었던 사람. 죽는 순간까지 눈을 감지 못했던 엄마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들어본다.
4. 가슴에 묻은 고운 내 딸, 내 동생
논현동 고시원 방화사건으로 죽은 여섯 명의 여성 중 가장 나이가 어렸던 故 서진(22)은 학비를 직접 마련하기 위해 고시원에 들어갔다가 끔찍한 참사의 희생자가 되었다. 몸이 아픈 아빠 대신 실질적인 가장의 역할을 했던 축구선수인 오빠 서성철(25)이 K리그 인천유나이티드와의 재계약에 실패하면서 학비를 대줄 수 없을 만큼 집안의 형편이 어렵게 된 것이다.
"너무 갑자기 제가 한 6개월 노는 바람에 동생한테 아버지가 반 학기만 휴학을 해라했는데 이렇게 돼서... 다 제 탓인 것 같아요." -故 서진 오빠 서성철
누구보다 책임감 강하고 가족을 사랑했던 기특했던 딸은 학비를 마련하려 아르바이트를 하며 고시원 생활을 시작했다.
"진이는 항상 아빠 챙기는 게 일이었지. 참 착하고 기특한 딸이었어요. 철이 너무 빨리 들어버렸지..." "칼 맞고 피를 흘리고 죽을 때 얼마나 아팠겠어요. 엄마 아빠 다 찾았겠지요. 다 찾으면서 얼마나 아프다고 하면서 갔을까... 너무 힘이 들어요 한번이라도 보고 싶은데 한번이라도 봤으면 좋겠는데 못 보니까... "
-故 서진 아빠 서병호'
묻지마 범죄로 인한 희생자들. 무참히 깨져버린 좁은 방의 꿈과 희망들. 용서할 수 없는 유가족들의 슬픔. 영화배우 김상경의 내레이션으로 2월 15일 방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