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만에 돌아온 ‘조규찬’을 만나다

“살아남아서 음악 하겠습니다!”

2009-02-27     뉴스테이지제공


꼭 ‘어떤 일’을 하기 위해서 태어난 것 같은 사람이 있다. 그 일만이 자신의 숙명이자 그 사람 자체인 것 같은. 조규찬이 바로 그렇다. 1989년 제1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무지개’로 1등을 수상하며 대중 앞에 선 그는, 그 전에도 그랬듯 쭉 ‘뮤지션 조규찬’으로 살아왔다. 2005년 연말 콘서트 이후 4년 만에 소극장 콘서트로 돌아온 그를 대학로의 한 공연장에서 만났다. 공연준비로 분주한 무대 위에서 그는 더없이 행복해 보였다.

▣ 4년 만의 콘서트. 지금 만나러 갑니다, “close to you”

- 쉬는 동안에 굉장히 많은 활동을 했다. 해이, 장윤주, 플라이 투 더 스카이, 이소라 등의 음반 참여를 비롯해 한양여대에서 강의까지 하신다고 들었다. 그래도 팬들과의 만남에는 항상 목말랐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소감이 어떠신지.

“자전거 타는 법은 한번 배우면 잊어버리지 않잖아요. 노래하는 법, 무대 위에서 관객을 만나는 법도 잊어버릴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막상 오랜만에 공연을 하려고 하니 굉장히 떨리더군요.‘내가 공연을 어떻게 했었지?’ 하는 그런 묘한 두려움과 긴장이 있었죠. 그런데 첫 공연을 일단 마치고 나니까 마치 형상기억합금처럼, 모든 기억들과 뉘앙스들이 다시 제자리를 찾았어요. 요즘에는 오히려 지나치게 익숙한 것 같아서 스스로 긴장을 부추기고 있어요.”

- 이번 콘서트에서 들려주는 음악은 대부분 초창기 곡들이다. 오랜 팬이 아니라면 생소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기본적으로 제 음악을 듣는 분들은, 그리고 이 공연을 4년 만에 찾아와 주신 분들은 최근 제 노래들, 소위 제 히트곡만 아는 분들은 거의 없을 거예요. 제가 이번 공연에서 ‘가까이 다가가고자’ 했던 분들은 저에게도 ‘가까이 다가오시는’, 오랜만의 만남에도 잊지 않고 찾아와 주시는 분들이에요. 옛날 노래들을 다시 부르면서 그때 함께 그 음악을 공유하던 추억들에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 Remake. 조규찬의 색깔로 덧칠한 열 두곡의 노래

조규찬 소극장 콘서트 ‘Close to You’의 포스터는 그가 최근 발매한 리메이크 앨범 ‘Remake’의 표지와 같다. 눈에 익숙한 반고흐의 자화상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 이목구비는 고흐의 그것과 다르다. 고흐의 것보다 작지만 날카로운 눈빛, 뭉툭한 코 끝, 굳게 다문 작은 입술에서 조규찬씨의 얼굴이 보인다. 서양화를 전공한 그가 직접 디자인한 그림이다. “고흐의 그림에 고흐만의 향기와 아름다움이 있듯, 이번 리메이크 앨범에서도 원곡과는 다른 나만의 오리지널리티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하는 그는 원곡의 느낌이 증발되지 않은 분위기와, 그 속에서 빛나는 자신만의 느낌을 담기 위해 직접 붓을 든 셈이다. 그가 손수 그려낸 재킷 이미지는 소리바다에서 개최한 제1회 앨범 커버 어워드 본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 리메이크 앨범에 있는 곡들이 모두 여성보컬의 노래인데. 특별한 선곡 의도가 있는가?

“여성 보컬들이 불렀던 사랑의 감성을 조규찬의 터치로 그려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기본적으로 남녀 성별 차이에 의해서 새로움이 입혀지는 부분도 있으니까요. 서로 상치되거나 비교되는 부분은 없으면서도 서로를 끌어올려주는 작용이 있을 거라고 봅니다.”

의외의 곡이 있다고 운을 뗐다. 솔직한 그가 예외 없이 솔직한 답변을 들려준다. “저도 의외였어요(웃음). 이은미씨의 ‘애인 있어요’는 사실 기획사로부터 제의받은 곡이거든요. 그 곡은 멜로디와 가사가 참 아름다운 곡이지만 리메이크하기에는 시대적으로 너무 근접해요. 너무 최근의 곡이고 지금 이 곡을 다시부르는 건 상업적 냄새가 다분한 일이라 생각 했었는데.”

- 그렇다면 요즘 한국 가요 중에서 즐겨 들으시는 곡이 있는지?

“관심이 가는 친구들이 얼마 전에는 ‘재주소년’이 그랬고, 최근에는 ‘루싸이트 토끼’가 있어요. 두 팀이 음악적 색깔이 비슷하면서도 각자 나름의 매력이 있어요. 오래 음악 할 친구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메인스트림에서도 그런 친구들이 있어요. 그런데 기본적으로 워낙 시장 자체가 침체가 되어있고 상업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 그들이 가진 진정한 아름다움, 독특한 음악적 외모가 다 드러나지 않는 게 사실이에요. 심지어는 음악 자체가 드러나지 않고 예능에 묻혀가는 경우도 많이 있죠. 안타까운 일인데, 각자 살아남는 그들만의 방식이 있다고 생각해요. 어느 것이 옳고 그르다고 할 수 없어요. 다만 그렇게 생존해서 나중에 음악적 얼굴을 오롯이 드러내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 혹시나 아이돌 중에서 같이 작업해 보고 싶으신 분들이 있는지?

“아이돌이요? 아이돌이 저랑 작업을? 그런 설정 자체가 안 되는 것 같은데(웃음).”


▣ 앞으로의 20년이 더 기대되는 뮤지션, 조규찬

- 아내 ‘해이’도 뮤지컬 배우로써 대단한 활약 중이다. 최근 보았던 공연 중 추천해 주실 만 한 것이 있다면?

“음......‘지붕 위의 바이올린’? (뮤지컬 지붕위의 바이올린은 ‘해이’가 주연한 공연이다) 한동안 공연을 많이 봤습니다. 창작 뮤지컬이 우후죽순으로 나오고 있지만 저는 품격미달의 작품이 꽤 많다고 느꼈습니다. 감명 깊게 본걸 얘기하기 전에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좋은 뮤지컬 음악을 만들고 싶어요. 뮤지컬이 지금 하향세잖아요. 잘 된다고 너무 쉽게 만들어 지고 매너리즘에 빠지고 쇄신이 없고. 그런 것을 좀 이겨내서 제대로 된, 오래 공연될 수 있는 그런 뮤지컬 음악을 만들고 싶어요.

- 이번 공연이 3월 15일까지 연장됐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다.

“생각했던 것 보다는, 걱정 했던 것보다는 여러분이 많이 와 주셔서 기간을 연장했어요. 사실 소극장이라 객석 수가 워낙 적어요. 공연이 대박 나서 그런 건 아니구요. 저를 찾아 주시는 분들을 모실 수 있는 횟수가 조금 늘어나서 기쁩니다.”

시종일관 무겁지 않으면서도 진지한 자세로 인터뷰에 응하는 조규찬. 그의 솔직하고 진심어린 답변에서 뮤지션으로서의 자부심과 음악에 대한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걸어온 20년보다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기대되는 가수다. 공연을 두 시간 앞둔 즈음, 그는 상기 된 표정으로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이 자리는요. 조규찬이 최대한 장식을 떼 내고, 마치 작은 방에서 둘러앉아 있는 것처럼 가까이에서 목소리를 들려 드리는 자리에요. 공연이라는 격의가 있어야 하겠지만 그 격의에 묻혀서 음악적 진정성과 본질이 차단될 염려는 없는 곳입니다. 조규찬이 진짜로 노래 어떻게 하나. 조규찬이 어떤 표정으로 말하나, 어떤 생각을 하고 사나. 궁금한 분이라면 이 자리에 오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뉴스테이지=박치연 기자,사진 이예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