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재벌 총수 황혼기 '각양 각색'
2009-04-05 뉴스관리자
한때 최고의 기업을 일구겠다는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내달렸지만, 기업을 떠나 말년을 보내는 `회장님'들의 모습은 저마다 다르다.
각종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여전히 사회 곳곳에서 정력적인 활동을 펼치는 대외활보형, 미술이나 음악 등 개인적으로 애호하는 활동에 열심인 취미몰두형이 있는가 하면, 이들과는 대조적으로 외부활동을 일체 삼가고 자택에 칩거한 채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은둔형도 있다.
◇식지 않는 `리더 본능' = 전성기 시절 만큼은 아니지만 나이에 굴하지 않고 정력적인 활동을 펴는 인물로는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대표적이다.
포스코에게 있어 `오너' 이상인 박태준 명예회장은 만 81세의 고령이지만 서울 광화문 파이낸스센터와 을지로의 포스코청암재단 등에 사무실을 두고 여전히 다양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달 24일에도 재단의 연례행사 청암상 시상식에 참석해 직접 상의 의미를 설명했다.
박 명예회장의 아호 청암(靑巖)을 딴 이 재단은 1971년 `포스코장학회'로 출범해 현재 1천657억 원의 기금을 두고 매년 100억 원 수준의 사회공헌활동을 하고 있고, 올해부터는 물리, 화학 등 기초과학 분야의 우수인재를 집중 지원하는 `청암 베세머 과학장학'사업을 본격 추진하는 등 의욕적으로 사업을 벌이고 있다.
과거 국민의 정부 출범에 한 몫을 하며 국무총리를 지내기도 했던 박 명예회장은 재단 활동 외에도 현 정부 들어서는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 국민원로회의 위원으로도 위촉돼 지난달 12일 이명박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청와대에서 열린 첫 회의에도 참석하기도 했다.
회사 관계자는 "박 명예회장이 사무실에 자주 출근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사회활동에 나서고 있고 건강도 좋은 편"이라고 전했다.
현역 시절 세계시장을 분주하게 누볐던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오랜 공백을 깨고 최근 공식석상에 모습을 나타냈다.
그룹 해체 이후 10년 만에 처음으로 지난달 20일 서울 힐튼호텔에서 열린 대우그룹 출범 42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했던 것.
김 전 회장은 비공개로 진행된 당시 행사에서 전 대우 임원들에게 "고맙고 미안하다. 1년 정도 몸을 추스르고 그 이후에는 자주 볼 수 있도록 하자"라고 인사말을 건넨 것으로 전해졌다.
당장은 건강 회복에 힘쓰겠지만 머지않아 새로운 사업에 나설 수도 있음을 짐작케하는 대목이다.
김 전 회장은 일단 태국이나 중국 등지에서 요양할만한 장소를 물색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취미에 푹 빠진 회장님들 = 취미활동에 푹 빠져 세월을 잊고 사는 회장님들도 있다.
지난 1995년 경영 현장을 떠난 구자경(84) LG 명예회장은 일과 취미를 병행하고 있다.
구 회장은 충남 성환 천안연암대학 캠퍼스 근처 농장에서 매일 오전 8시께 기상해 농장 내 연구소에서 전통식품 개발에 몰두한다. 된장, 청국장 등 전통음식을 연구, 첨가물을 넣지 않고 옛 맛을 살린 장 만들기에 한창이다. 아울러 초등학교 은사의 영향으로 난(蘭)과 분재, 버섯도 재배한다.
매주 월요일에는 여의도 LG트윈타워로 출근해 LG복지재단.LG연암문화재단.LG연암학원 등 자신이 이사장 또는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공익재단 업무를 챙긴다.
코오롱그룹 이동찬 명예회장은 그림에 푹 빠져있다.
지난 1일자로 88세 생일, 미수(米壽)를 맞아 2일부터 6일까지 서울 태평로 조선일보 미술관에서 기념 전시회를 열고 있다.
이 전시회는 1992년 고희전(古稀展), 2001년 팔순전(八旬展)에 이어 세 번째로 열리는 이 명예회장의 개인전이다.
이 명예회장은 이번 전시회에서 직접 그린 작품 88점과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 등 가족이 그린 12점을 보태 모두 100점을 선보였다.
`우정(牛汀), 자연에서 숨은 그림을 찾다'라는 부제에 걸맞게 이 명예회장이 지난 30여 년간 산과 강, 바다 등 자연을 접할 때마다 틈틈이 그린 작품들 위주로 짜여 있다.
◇회장님은 두문불출 = 외부활동을 거의 끊고 공식석상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근황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경우도 많다. 특히 나이가 들어 기력이 많이 쇠한 경우에는 집에서 요양하면서 소일하는 것이 보통이다.
작년 4월 삼성 특검수사에 대한 후속조치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이건희(67) 전 회장의 경우 1년 가까이 뚜렷한 대외 활동없이 `은둔'하고 있다. 지난 2월 일본을 잠시 방문한 것이 거의 유일한 외유였다.
지난달 18일에는 감기, 몸살을 동반한 기관지염 증세로 삼성병원에 입원, 4일 동안 치료를 받기도했다.
회삿돈 횡령 혐의로 올해 초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김석원 쌍용 전 회장도 최대한 공식활동을 자제하며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2년 전 신정아 학력위조 파문에 휩쓸려 마음 고생을 했던 김 회장은 현재 공식적으로 유일하게 맡고 있는 한국스카우트지원재단 이사장, 세계스카우트지원재단 이사직만 수행하면서 관련 업무로 해외 출장을 다니거나 지인들을 만나며 조용히 지내고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아직까지 경영복귀 등은 고려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박용곤 명예회장(77)은 퇴진한 후에도 평일에는 일주일에 2∼3회 가량 을지로에 있는 그룹 사무실에 나오지만 외부 활동은 거의 끊은 상태다.
박 회장은 업무와는 무관하게 지인이나 그룹 원로들을 만나 식사도 하고 개인적인 환담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그룹 관계자들이 전했다.
사무실에 나오지 않는 날에는 성북동 자택에서 TV도 보고 책도 보면서 소일하고 있다.
대상 창업주인 임대홍(89) 전 회장도 아흔을 바라보는 고령이어서 자택에서 쉬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1987년 아들인 임창욱 명예회장에게 경영권을 넘겨준 뒤에도 1990년대 초반 자신이 당뇨병으로 고생하던 중 효험을 본 클로렐라에 대한 개발을 지시, 대상이 클로렐라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하기도 했다.
이후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대상 사옥 뒤에 따로 연구실을 두고 고추장.된장 등 장류에 대한 연구를 할 정도로 정력적이었지만 최근에는 별다른 외부 활동이 없으며 근황이 잘 알려져 있지 않다고 대상 측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