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재미 없는' 선거= 가장 '깨끗한' 선거

2007-03-05     유태현 기자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은 지난달 28일 실시된 중소기업중앙회(이하 기협중앙회) 신임회장 선거 운동을 집중 모니터했다.

소비자 기자들을 '암행어사'로 풀어 취재한 결과 선거문화가 환골탈태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임 김기문 회장이 역대 선거중 가장 깨끗한 선거를 통해 선출됐다는 데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깨끗한 선거풍토가 조성된 데는 여러가지 요인이 있다. 선거인단이 기존 200여명에서 500여명으로 크게 늘어나 밀실선거가 아닌 개방형 선거로 전환된 것이 주효했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위탁관리로 부정발생의 소지가 원천차단된 점 등을 꼽을 수 있다.

물론 이번 선거에도 흠집이 있었다. 회비 대납 의혹이 불거졌고, 일부 후보는 그야말로 더 은밀하게 ‘돈을 풀었다’는 소문도 떠돈다. 

그러나 예년 선거에 비하면 환골탈태라는 말이 가장 적합하다. 중앙선관위도 이번 선거중 위법행위는 경고 1건, 주의 2건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기협중앙회 회장선거는 그간 금품이 난무하는 부정의 늪이었다.

‘10억 이상 쓰면 붙고, 아니면 떨어지고’가 중앙회장 선거의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예전 일부 후보의 경우 30억원을 썼다는 소문도 떠돌았다.

최근 기협중앙회 산하 모 조합 이사장이 고백한 예전 선거실태 한 토막. 

“부산에 회장 후보가 와서 3명의 회원와 함께 저녁을 먹고 밥값하라며 봉투를 주었다. 열어보니 3000만원이 들어 있었다. 돈이 너무 많아 그 자리에서 나누지 못하고 그 중 한 사람의 차안에 실어 놓고 다시 밤새 술을 마셨다. 새벽에 나가보니 차 창문이 깨져있고 누가 봉투째 가져갔더라. 돈 봉투가 차 안에 있는 것을 아는 3사람 중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시켜 한 짓 같았지만 어쩔수 없었다.”

예전 선거에 직접 출마했다 떨어진 후보 한 사람의 증언.

“호남지역 표를 좌지우지한다고 하는 모 인사에게 선거운동을 도와주는 대가로 월 3000만원을 주겠다고 했는 데 그가 다른 후보 참모로 들어가 버렸다. 돈이 적은 게 그 이유라는 느낌을 받았다.”

향응은 현금 뿐만 아니었다. 대의원들이 돈 걱정 없이 고급 식사·술·골프·고스톱을 맘껏 즐길 수 있는 기회가 선거 때였다. 선거철이면 서울 여의도가 들썩거렸다. 후보자들은 여의도와 강남 주변의 고급 호텔방을 장기 대여해 ‘아지트’를 만들고 대의원들을 불러들였다.

호텔에 죽치고 앉아 ‘돈버는’ 고스톱을 치고 공짜 밥과 술을 먹고 수시로 골프장을 들락거렸다.

흥청망청한 선거때문에 선거후 후유증도 만만치 않았다. 패배한 쪽에서 돈 선거를 문제삼아 어김 없이 수사기관에 진정ㆍ투서를 했다. 승리한 쪽도 마찬가지였다.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은 세력들이 양심선언을 하겠다고 회장을 위협해 이권을 챙겼다. 오죽하면 전임 김용구 회장이 36개월 재임중 30개월을 검찰과 경찰에 불려 다니며 허송세월했다고 한탄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완전히 달랐다. 금품과 향응이 거의 사라졌다. 물론 후보 본인은 뒤로 빠지고 선거 운동원들이 대납한 일부 사례가 지적되고 있기는 하지만 예전에 비하면 ‘새발의 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권자들에게는 역대 가장 ‘재미없는’ 선거였을 것이다. 깨끗한 선거는 회장의 권위를 강화시킨다. 선거 약점으로 인해 볼모 회장이 되는 일도, 선거후 수사기관에 불려다니는 일은 없어야 한다.

기협중앙회 회장 선거는 앞으로 더욱 더 재미가 없어져야 한다. 재미없는 선거만이 중소기업중앙회를 똑바로 세우는 유일한 수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