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 계약'..유령이 대필 서명?"
보험.통신 대리서명 피해 급증..들통나면 '배째라'
[소비자가만드는신문=성승제 기자] "멋대로 서명해 계약서를 작성하고, 들통나도 배째라네요"
보험사와 통신업체들이 가입자 유치를 위해 불법적인 대리서명도 불사한다는 소비자 제보가 줄을 잇고 있다.
보험 설계사들의 경우 장기 변액보험을 단기 펀드로 속여 팔며 장기 보험 상품이라는 설명이 들어가지 않은 청약서에는 고객 서명을 유도하고 보험 주 계약 확인란은 자신이 직접 대리서명으로 처리하는 방식이다.
이 때문에 설계사 말만 믿고 수개월 동안 보험금을 납부한 고객들은 뒤늦게 땅을 치며 해지 요청을 하지만 되돌이킬 수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초고속 인터넷과 이동통신업체도 별반 다르지 않다.
어느 날 가입하지도 않은 인터넷 요금이 청구돼 내용을 확인해보면 누군가 대필로 계약서에 서명했고, 단순히 명의를 빌려주었을 뿐인데 엉뚱한 이동통신에 가입돼 피해를 입기도 한다.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대필로 계약이 이루어져도 계약 취소는 하늘의 별따기다. 영업사원이 교묘한 수법으로 합법적인 절차를 모두 밟아 책임을 빠져 나가거나 개인들로선 고소, 고발이 어렵다는 점을 악용해 배째라식으로 버티는 경우도 많다.
취소가 돼도 신용상 불이익을 당하거나 정신적인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녹색소비자연대 정영란 팀장은 "무조건 설계사나 영업사원의 말만 믿고 가입하는 것은 금물"이라며 "가입전 인터넷을 통해 가입하려는 상품이 무인지 꼼꼼히 살펴보고 최종 서명하게 될 청약서와 계약서를 되도록 자세하게 읽어봐야 한다. 또 대리서명이 확인되면 3개월 이내에 취소가 가능하다. 대리서명이라는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고 소비자단체나 사회단체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좋다"고 덧붙였다.
#변액보험을 펀드라 속이고 설계사가 대리서명 가입
경기도 성남에 거주하는 장 모(29,여) 씨는 지난 해 5월 말 서울 도곡동에서 홀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가게 사장의 남자친구로부터 솔깃한 제안을 받았다.
장 씨가 2년 후 이사를 위해 여유자금 500만원을 은행에 넣어두고 있다고 하자 AIA생명(구 AIG생명) 설계사인 가게 사장의 남자친구는 AIA 보험 상품에 넣어 2년 만기를 채우면 은행보다 2~3배 높은 이자를 챙길 수 있다고 가입을 권유한 것.
장 씨는 처음에는 다른 보험사 변액보험에 가입해 엄청난 손실을 보고 해지한 경험이 있어 정중히 거절했지만, 설계사는 그 보험과는 전혀 다른 상품이라고 수차례 장 씨를 집요하게 설득해 결국 매달 30만 원을 납부하는 'AIA 아이인베스트변액보험' 상품에 가입했다.
4개월이 지난 작년 9월 장 씨는 인터넷을 통해 가입한 상품을 알아본 순간 깜짝 놀랐다.
과거 변액보험에 가입한 뒤 큰 손실을 보고 해약한 상품과 이름만 다를 뿐, 10년 이상 납부해야 하는, 말 그대로 과거와 똑같은 변액보험이었던 것.
장 씨는 곧바로 콜센터에 연락해 펀드로 변경해줄 것과 자신을 속인 설계사가 정중한 사과해 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펀드로 변경하려면 해당 설계사에게 연락을 해야한다'는 엉뚱한 답변만 돌아왔고 설계사는 사과는 커녕 이후로 단 한 번도 연락조차 하지 않았다.
어이없는 장 씨가 '도대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며 계약서를 확인한 순간 또 한 번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상품이 변액보험이라는 내용과 납부한 돈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를 안내한 '보험 주계약 내용 확인란'을 설계사가 제 멋대로 서명을 한 것.
이 때문에 장 씨는 사업구성비와 특약비, 위험부담비가 추가된다는 내용을 전혀 알지 못한 채 최종 계약서에 서명을 하게 된 셈이다.
장 씨는 "올해 초 2년간 모은 돈으로 서울 쪽으로 이사를 가려고 했는데 결국 돈을 찾지 못해 경기도로 이사를 했다“면서 ”현재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데 차비와 엄청난 시간을 잘못 가입한 보험 상품 때문에 모두 허비하게 됐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명의도용해 위성방송 신청하고 멋대로 서명
경기도 부천에 사는 박 모 씨는 2007년 12월 경 통장 잔액을 확인하던 중 깜짝 놀랐다.
가입하지도 않은 스카이라이프에서 1만3천원이 출금이 된 것.박 씨는 명의도용 사건으로 생각하고 곧바로 경찰에 알렸다.
경찰의 도움으로 최종 수사 결과를 확인하자 가입 대리점은 대구지역이었고 최종 명의 도용자는 전남 광주 지역 사람이었는데 실제 사용자는 그사람이 사는 월세집 주인이었다.
스카이라이프 청약서를 월세집 주인이 대필로 작성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 박 씨는 "근복적인 책임은 가입자 명의를 정확히 확인하지 않은 스카이라이프에 있다"며 "불법행위 방조와 설치기사를 관리 감독할 책임과 의무를 소홀히 한데 대한 배상하라"고 요구했지만 끝내 거절당했다.
# 대필로 걔통된 대포폰에서 거액 사용료 청구
서울 서초구에 사는 이 모(여, 24) 씨는 작년 7월 두 달 정도 부산에 거주하면서 지역정보지를 통해 알게 된 한 대부업체에 대출 문의를 했다.
수년간 외국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아온 그는 개인 사업을 위해 부모님 모르게 혼자 부산에 입국했고 이 과정에서 급작스럽게 돈이 필요했던 것.
대출을 문의한 결과 대부업체는 무조건 '가능하다'며 일단 내방할 것을 요청했다. 이 씨는 큰 의심 없이 약속 날짜에 맞춰 찾아갔다.
그러나 전화 상담 때와는 달리 말이 점점 바뀌기 시작했다. 그동안 금융기관과 거래가 없어 소액만 가능하고 이 역시 통신사에 핸드폰 2대를 가입 신청하는 조건으로 1대당 30만원을 주겠다고 했다.
어차피 본인확인이 없으면 가입을 해도 개통은 불가능 할 것으로 생각한 이 씨는 통신사 대리점도 방문하지 않은 채 대부업체 직원이 준 서류에 사인을 했고 총 60만원의 대출금 중 선수수료 13만원을 뺀 나머지 47만원을 받았다.
이후 3개월이 지난 10월 이 씨는 빌린 원금 60만원과 이자 30만원을 합쳐 90만원을 모두 갚았고 이 씨는 모든 것이 해결된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올해 2월 초 이 씨는 통신사 채권 추심팀에서 한 통의 전화를 받고 기겁을 했다.
두 대의 휴대폰에서 요금 150만원이 미납됐다는 황당한 얘기였다.
어떻게 개통이 됐는지 경위를 몰라 이 씨는 곧바로 대출 사무실에 연락을 했지만 처음에는 '해결해주겠다'는 말만 되풀이 하더니 한 달이 지나서는 아예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모든 책임을 떠 넘겼다.
그는 경찰서에 신고를 하고 고소장을 제출하려고 했지만 이마저 대부업체가 사무실을 이전하고 대부업체 사장 이름도 몰라 진정서로 대체해야만 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이 씨는 통신사 지점을 찾아가 자초지종을 설명했지만 '명의대여'라며 보상이 힘들 것이라는 답변만 되돌아 왔다. 통화내역서라도 뽑아 달라고 요청했지만 이 역시 최근 3개월까지만 가능하다고 해 어디에 통화했는지도 전혀 알 수 없었다.
통화료가 발생한 싯점이 이미 3개월 전이이기 때문에 최근 3개월 동안의 통화내역은 아무 것도 없는 백지 상태였다. 통신사 시스템을 모두 꿰뚫고 있는 지능범들의 교묘한 사기에 걸려 든 셈.
답답한 이 씨가 통신사측에 계약서를 요구하고 확인한 순간 또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생애 한 번도 가지 않았던 전라북도 익산에 있는 대리점에서 휴대폰이 개통됐고 생전 처음 본 계약서에는 이 씨의 서명이 대부분 대필로 작성되어 있었다.
주소지 역시 익산으로 기록되어 있었으며 특히 신분증 복사본은 팩스 카피본을 2~3번 복사해 아예 얼굴 형태조차 알아볼 수 없었다.
이를 입증하듯 계약서에도 '사진식별불가'라고 기재돼 있었다.
서류상 이 씨의 계약을 담당한 직원의 이름이 적혀 있어 통화를 시도했으나 바쁘다는 핑계로 회피하기만 했다.
이 씨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인데 어떻게 같이 서류를 작성한 것처럼 꾸몄고 또 대리점에서 내 주민등록번호는 어떻게 알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서 "아무래도 대부업체 직원과 대리점 직원이 서로 공모해 명의도용을 한 것 같다"고 한탄했다.
그는 이어 "현재 서울에 식당을 개업했는데 신용불량자라서 카드 단말기도 설치하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이 많은 돈을 어떻게 다 갚아야 할지 막막하다"며 "무엇보다 아직까지 부모님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어 하루하루를 가슴 태우며 살아가고 있다‘고 울먹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