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병합조약'양측 필적 동일.."무효 근거"
일본이 대한제국의 국권을 강탈한 `한일병합 조약'이 최소한의 외교적 요건조차 갖추지 못했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서울대 국사학과 이상찬 교수는 1910년 한일병합조약 문서의 물리적·외형적 특징을 비교한 결과 한국측 문서와 일본측 문서를 동일한 인물이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6일 밝혔다.
이 교수는 이날 자신의 연구결과와 관련자료 공개를 통해 양국 병합조약을 같은 인물이 만들었다는 근거로 필체(筆體), 지질(紙質), 색깔과 제본(製本), 봉인(封印) 방식 등이 같다는 점을 들며 정상적인 여건에서 체결된 조약이라면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통상적으로 국제조약을 맺을 때 각 당사국은 개별적으로 자국어 문서를 작성한 뒤 이를 상대방과 교환·서명하고 각 문서를 동등하게 정본(正本)으로 삼는 형식을 취한다는 것이 이 교수의 지적이다.
경술국치(庚戌國恥) 이전 한일의정서(1904년)와 을사늑약(1905년), 한일협약(1907년) 등 세 건의 조약을 맺을 때 까지만 해도 양측의 문서는 외형적 특징이 확연히 달랐다.
반면 서울대 규장각이 소장한 한일병합조약의 한국측·일본측 문서는 글자 대부분이 동일 필체의 한자(漢字)다.육안으로는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똑 같다.다른 것은 토씨가 한글이냐 일본 글자냐 하는 점, 맨 앞에 나오는 `한국 황제폐하'와 `일본국 황제폐하'의 순서뿐이다.
이는 1910년 8월 일본측이 양쪽 문서를 모두 작성해 일방적으로 체결을 강요했음을 보여 주는 증거라고 이 교수는 설명했다.
이 교수는 "국제조약에서 문서를 교환하는 까닭은 쌍방합의에 따른 것이란 증거를 남기려는 것이다. 당시 일본은 이 것조차 불필요한 것으로 볼 만큼 오만했다"며 "이렇게 명백한 오류가 지금껏 학계의 주목을 받지 못한 것은 거시적 문제에 치중하다 보니 문서학(文書學) 등 미시적 관점의 연구에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탓"이라고 지적했다.
당시 조약 체결에 관여했던 고위 관계자들의 필적을 감정하면 이 문서들이 누구의 손으로 작성됐는지도 쉽게 드러날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이 교수가 제시한 한일의정서, 을사늑약, 한일협약, 병합조약 등 4개 조약 원본의 외형 비교을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
한일의정서 (1904.2) |
을사조약 (1905.11) |
한일협약 (1907.7) |
병합조약 (1910.8) |
종이 | 한국 | 인쇄양식(녹색) | 인쇄양식(적색) | 인쇄양식(적색) | 흰종이 |
일본 | 인쇄양식(회색) | 인쇄양식(회색) | 인쇄양식(회색) | 흰종이 |
판심 | 한국 | 대한국외부 | 없음 | 없음 | 없음 |
일본 | 재한일본공사관 | 재한일본공사관 | 통감부 | 없음 |
제본 | 한국 | 실끈(적색) | 실끈(보라색) | 스태플러 | 천끈(흰비단) |
일본 |
실끈(보라색) | 실끈(보라색) | 실끈(연두색) | 천끈(흰비단) |
글씨 | 한국 | 다르다 | 다르다 | 다르다 | 같다 |
일본 | |
봉인 | 한국 | 없음 | 없음 | 없음 | 봉인 |
일본 | 종이도장(재 한일본공사관) |
없음 | 봉인과'통감 부'인 |
봉인 |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