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데칼로그-살인하지 말라’

자연에 기초한 인간 본연의 실체를 들추다!

2009-07-06     뉴스관리자
트러스트무용단의 ‘데칼로그-살인하지 말라’가 지난 7월 1일 공연을 시작해 오는 5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이 작품은 제목 그대로 살인에 관한 모든 것들을 음악과 노래, 몸짓으로 거침없이 표현해냈다. 또한 중간 중간 작품의 시퀀스가 유동적으로 흘러, 보는 이들에게 공감과 뭉클함을 안겨주었다. 물론 갑작스레 등장한 몇몇 장면들은 관객들에게 혼란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그것은 무대 위 무용수들의 모습이 바로 나 자신의 또 다른 얼굴이 될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 가장 원초적인 방식으로 쉽게 풀어내다!

데칼로그는 성경에서 ‘십계명’을 의미한다. 그래서 무대의 배경 역시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는 듯 성전처럼 꾸며졌다. 여러 개의 갈색 기둥들이 세워져 있는데, 그것은 나중에 문이 되기도 했다. 역시나 무용수들의 등장도 새로웠다. 그들은 바벨탑 사건을 연상시키며 서로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계속 시끄럽게 떠들었다. 결국엔 지쳐 쓰러질 때까지 말이다. 또한 붉은색 외투를 입은 여자 무용수는 마이크에 대고 말을 하며 무대로 나왔다. 이어서 사과를 든 두 남녀가 등장했다. 이건 바로 성경에서 말한 선악과 장면이다. 여기서 안무가는 ‘원죄’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아담과 하와의 선악과 장면을 통해 인간의 욕망이 살인의 시발점이 된다는 것을 말이다.

이후 더 많은 살인(전쟁, 왕따, 낙태, 자살 등) 장면들이 나온다. 안무가의 의도대로 칼로 찔러 죽이는 것만이 아닌, 생각으로 말로써 대상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이 장면들을 종합적으로 묶어서 한 무대 위에 정신없이 풀어놓는다. 보는 관객들은 이들의 거침없는 행동에 놀라기도 하지만 적나라한 죄의 모습을 보면서 깊은 생각에 잠긴다. 작품은 갖가지 살인의 요소를 보여주고 난 뒤, 살포제라는 소품으로 해결 방안을 찾았다. 그 소품으로 죄의 모습들을 정화시키며 씻어 내렸다.

전체적으로 ‘데칼로그-살인하지 말라’는 모든 요소, 상황들을 조금도 커버하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가장 원초적인 방식으로 현실감 있게 보여주었다. 어쩌면 너무 과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 작품의 추구하는 방향성과는 가장 잘 맞아떨어진다. 이것은 안무가와 연출가의 탁월한 팀워크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래서 살인의 주제를 가장 정확하면서도 가장 효과적으로 드러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 일체감보다 통일감을 중시하다!

대부분의 무용에선 전체적인 작품 위주로 공연을 보게 된다. 하지만 이 작품은 전체적인 상황과 더불어 무용수 개개인의 특징을 너무나도 잘 집어내주었다. 그들은 무대에서 몸짓으로만 말하지 않는다. 말과 소리, 솔직한 감정까지 그대로 드러내어 작품의 전달력을 높였다. 이번 안무는 대부분 무용수들이 만들어낸 즉흥이라고 들었다. 그래서인지 무용수들이 뿜어낸 그들의 열기, 에너지들은 모두 달랐다. 그들의 몸짓에서 스며든 내면의 열기가 아직도 생생하게 다가온다. 또한 작품의 안무도 일체감보다 전체적인 통일성을 중시했다. 무용수 개개인의 모습이 중요하기 때문에 똑같은 움직임을 자주 사용하지 않은 것이다.

무대 위 의상은 카키색과 갈색 톤이 적절히 섞인 빈티지풍의 느낌이다. 서민적인 이미지를 더해주기 위해 의상도 일반 무용의상처럼 화려하지 않았다. 그 의상 역시 무용수 개개인의 특징에 맞게 잘 어우러졌다. 이 작품에서 무대와 의상은 참으로 우울해보이고 어둡기 만하다. 하지만 연출은 계속해서 어둡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각 장면에 갖가지 웃음코드를 집어넣어 서민들의 삶에 공감을 더해주었다. 이는 작품에 크나큰 생동감을 준다.

- 효과적인 꼴라주 기법!

‘데칼로그-살인하지 말라’를 보면 꼴라주 기법처럼 장면이 나열되었다. 이는 현대무용의 거장 피나 바우쉬의 작품들을 연상시킨다. 피나 바위쉬는 의도적으로 짜 맞추기보다는 하나하나를 각기 나열함으로써 그 무질서함을 동시에 받아들인다. 그래서 그의 공연에는 기승전결의 방식이 필요치 않는다. 그보다 동시적으로 이해하는데 주력한다. 또한 무용에 연극을 집어넣는 극 형식을 강력한 이미지의 장면들로 순간순간 흘러가게 했다. 이번 작품 ‘데칼로그-살인하지 말라’도 마찬가지다. 살인에 대한 갖가지 요소들을 순서 없이 나열했다. 이런 방식의 장점은 장면들이 바로바로 눈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그만큼 강력한 이미지만을 보여주는데 주력한다.

이 작품에 꼴라주 기법은 너무나 탁월하게 사용됐다. 작품의 상황과 모습들이 다르지만 하나로 연결되었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전체적인 연결고리를 한명의 남자 무용수로 두었다. 그는 무대 위 무용수들 가운데 갑자기 등장해 나팔을 불기도 하고, 드럼을 치기도 했다. 그가 등장할 땐 음악이 흐르고 다음 장면이 전개됐다. 어쩌면 뜬금없는 상황이 될 수도 있겠지만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이번 ‘데칼로그-살인하지 말라’ 어쩌면 가장 난해한 작품이 될 수도 있었다. ‘살인’ 이라는 의미 자체만 보더라도 우울하고 어둡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그 근본적인 어려움을 가장 원초적인 방식으로 풀어낸 점과 모든 장치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적절히 사용했다는 점에서 공감할 수 있었다.

[뉴스테이지=박하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