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핫’한 배우와 ‘쿨’한 연출의 만남
뮤지컬 ‘사춘기’
2009-07-16 뉴스관리자
눈부신 청춘에 대한 찬가일 것이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사춘기’는 사회적 인습과 편견 속에서 억압받고 뒤틀린 청춘의 그림자에 대한 이야기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브로드웨이산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과 같은 프랑크 베데킨트의 희곡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청교도주의적 가치관이 지배하고 있던 19세기 독일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한국적 상황에 맞게 개작했다. 원작이 당시 청소년들의 성(性)에 대한 무지와 충동적인 욕망에 포커스를 맞춘데 비해, ‘사춘기’는 입시 스트레스, 왜곡된 인터넷 문화, 가족의 해체 등 오늘날 한국 사회의 병폐에 시달리는 우리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머리는 좋지만 불우한 가정환경으로 인해 매사에 냉소적인 영민, 입시 강박에 시달리다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선규, 뜻하지 않은 임신에 죽음을 택하는 수희, 성(性)적 정체성에 혼란스러워 하는 경찬, 학교를 자퇴하고 밤거리를 배회하는 화경 등 ‘사춘기’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는 한국 청소년의 어두운 현실을 반영한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엿본다. 그런 점에서 어쩌면 ‘사춘기’는 청소년보다는 어른이 봐야할 작품일지도 모르겠다.
지난해 초연 때 호평을 받았던 연출은 특유의 쿨한 감각은 유지한 채 조금 더 친절해졌다. 무대를 둘러싼 삼면에 객석을 배치하고 다양한 시선에서 감상이 가능케 해 보는 재미를 높였다. 소품과 장식을 최소화하는 대신 무대와 바닥, 벽면에 영상을 쏘아 감각적인 볼거리를 제공한다. 배우의 동선을 따라 이동하며 배우를 둘러싸는 차가운 빛깔의 네모난 불빛은 청소년에 대한 억압을 연상케 해 특히 인상적이다. 초연 때 남녀 주인공들의 성적 일탈을 암시하던 안무가 보다 구체적인 행위로 묘사된 점은 독특함을 버리고 평범함을 취한 선택인 듯해 다소 아쉽다.
용철 역의 맹주영을 제외하고 모두 바뀐 출연진들의 연기는 신선했다. 익숙한 배우들이 아니기에 관객은 그들을 작품 속 캐릭터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친숙한 얼굴이 연기했다면 이렇게 펄떡이는 싱싱한 느낌을 받기 힘들었을 터. 오승준, 에녹, 이희준, 김보현 등 패기 넘치는 젊은 배우들은 아카펠라와 블루스, 힙합을 넘나드는 뮤지컬 넘버와 격렬한 안무를 열정적으로 소화해내고 있다.
결코 해피하지 않게 끝난 청춘들의 이야기를 뒤로 한 채 공연장을 나서며 나는 즐겁지만은 않았던 나의 10대 시절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이 눈물 나게 그리웠다. “나도 다 겪었던 일이야. 그것도 시간이 지나면 다 추억이 된단다” 하며 어깨를 토닥거려 주던, “내가 너희들만 할 땐 더했거든? 똑바로 해 이것들아!” 하며 툭툭 등을 두드려 주던 이 시대의 모든 10대들에게 응원을 보내고 싶다. “힘내라. 청춘들이여. 그대들은 존재 자체가 아름답다!”
[뉴스테이지=조수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