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in]지금의 당신을 위해 건배!

‘브로드웨이 42번가’ 도로시 브룩

2009-08-13     뉴스관리자

누구에게나 ‘내가 그땐 그랬지……’로 회상되는 시절이 있다. 술 한 잔 기울이면 허름한 술집에는 그 옛날의 전성기 시대가 필름처럼 펼쳐진다. 현실 위로 눈부신 조명과 화려한 무대,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 열정의 순간이 덧입혀진다.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는 그 제목과 알맞게 화려하고 경쾌하다. 그러나 작품 안에는 흑백 필름의 무채색과 선명한 일곱 빛깔이 공존한다. 스타로 성장하는 페기 소여는 순간적 신분상승의 신데렐라처럼 하늘을 치는 상승선이다. 반대로 스타의 기억을 안고 무대와 멀어질 준비를 하는 도로시 브룩은 초라한 하향선이다. 올라가고 내려오는 두 선이 엇갈리며 겹치는 순간, ‘브로드웨이 42번가’의 페기와 도로시가 만나는 순간이다.

도로시 브룩은 시작도 아니고 끝도 아닌 지점에서 헤매고 있는 우리의 모습과 닮았다. 나이와 상관없이 사랑을 갈구하는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그녀는 무대 위 화려했던 자신의 끝자락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 아슬함을 감추려고 차가운 카리스마로 위장한다. 그러나 내면은 곪아 독한 술로 마비시키고 싶을 만큼 아프다. 그녀의 눈빛에는 군중 속에서의 외로움과 잊혀져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서려있다. 재력가 남편을 무기삼아 무대에 서려는 도로시가 그래서 얄밉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도로시의 지난 발자국은 젊은 페기의 화려한 탭댄스로 인해 서서히 지워져간다. 페기의 눈은 하늘에 떠있는 별, 스타를 바라보고 있다. 도로시는 페기를 통해 자신의 옛날을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질투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그녀가 다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다. 바로 잃어버린 사랑을 찾는 것이다. 시대가 변하고 세대가 변해도 결국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가장 원초적이고 오래된 것이다. 결국 우리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사랑이고 위로다.

한없이 순수하고 귀엽게 그려지는 페기보다 자존심만 남은 도로시가 더 매력적인 이유는 그 속에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극에서 가장 많은 것을 잃고 가장 많은 것을 얻은 인물은 바로 도로시다. 사랑을 되찾은 그녀는 여유가 생겼다. 도로시는 솜털 돋은 페기를 보고 말한다. 그리고 언제나 망설이기만 하는 우리에게도 외친다. “무대에 나가서 맘껏 뽐내. 내가 미치게 샘이 나도록!”

[뉴스테이지=이영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