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한 뿌리에서 나온 두 개의 열매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 그리고 ‘사춘기’
2009-08-17 뉴스관리자
원소스멀티유즈는 다양한 장르에서 하나의 문화 트랜드로 자리 잡았다. 뮤지컬도 예외가 아니다. ‘라디오스타’,‘주유소 습격사건’,‘미녀는 괴로워’ 등 무비컬은 몇년 전부터 눈에 띄게 증가해 올해도 각광받고 있다. 또한 ‘기발한 자살여행’을 비롯한 노블컬(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뮤지컬)도 무대 위에 올려졌다. 그 중에서도 같은 원작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두 개의 뮤지컬이 눈길을 끈다. 2007년 토니어워즈 8개 부문 수상작으로 최근 라이선스 공연이 개막된 ‘스프링 어웨이크닝’과 제3회 뮤지컬어워즈 소극장 창작뮤지컬상 수상작 ‘사춘기’가 그것이다. 독일 희곡 작가 베데킨트 작 ‘사춘기’를 원전으로 하는 이 두 작품은 모티브는 같지만 각자의 분명한 개성을 살려 관객들에게 사랑받았다.
- 성에 눈뜨는 청소년들의 암중모색 ‘스프링 어웨이크닝’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은 공연 전부터 관객들 사이에서 대단한 관심과 기대를 받았다. 자라나며 자연스럽게 성적 호기심을 키워가는 청소년들과 그를 금기시하던 19세기 독일사회의 충돌을 그린 이 작품은 원전에 충실한 대본을 자유롭고 파격적인 형식을 통해 무대에서 재탄생시킨다. 다른 뮤지컬에서는 보기 어려운 독창적 시도들이 작품 곳곳에 숨어있다. 수업중인 고등학교 교실에 별안간 강렬한 음악이 울려 퍼지고, 배우들이 핸드 마이크를 꺼내드는 장면은 콘서트를 연상케 한다. 배우들은 자신의 등장 장면이 아닐 때 무대에서 퇴장하는 대신 무대 양편의 무대 석에 관객들과 함께 앉는다. 무대석의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자신들도 공연 속 교실에 있는 것처럼 느낀다.
‘스프링 어웨이크닝’의 이야기는 자살, 낙태 심지어 근친성폭행과 동성애까지 포함한다. 국내 공연에서는 드물게 파격적이라 한국 관객들의 정서에 맞을지 우려를 낳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다방면의 높은 완성도와 창의성은 소재의 선정성 이상으로 관객을 놀라게 한다. 폭발적인 에너지와 연약한 감성을 동시에 아우르는 뮤지컬 넘버들은 한국 배우들의 기량에 힘입어 멋지게 살아났다. 무대와 조명 역시 브로드웨이 공연장을 그대로 옮겨온 듯 완벽하게 재현됐다. 번역가사의 의미와 청각적 흐름이 아쉽다는 점이 유일한 흠이다.
멜키어 역의 배우 김무열과 모리츠 역 조정석 등은 요즘 가장 주목받는 배우들이다. 대부분의 주연 배우들이 공연 초기임에도 안정적으로 각자의 역을 연기했다. 성인 남자역 배우 송영창과 성인 여자역 이미라는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며 젊은 배우들 사이에서 연륜을 과시했다. 무대에서 존재감이 아쉬운 배우들도 있지만, 장기 공연이 예정된만큼 앞으로 발전이 기대된다. ‘스프링 어웨이크닝’은 내년 1월 10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만날 수 있다.
- 위태롭지만 눈부신 젊은 날의 초상 ‘사춘기’
작년 초연 당시 마니아들에게 사랑받았던 ‘사춘기’가 대폭 수정을 거쳐 지난 5월부터 명동에서 재공연됐다. 베데킨트 작 원전과는 달리 이 작품은 지금 우리사회의 현실을 배경으로 시험걱정을 하고 짝사랑을 하는 평범한 고등학생들을 보여준다. 뮤지컬 넘버의 가사처럼 ‘객관식 답안지 밀려 쓰는 놈, 답안지 다 쓰고 이름 안 쓴 놈, 고장 난 mp3 훔쳐가는 놈’등 못 말리는 녀석들 사이에 조금은 눈에 띄는 세 명의 고등학생이 있다. 똑똑하고 냉소적인 영민, 성경만 읽는 모범생 수희, 그리고 백댄서가 꿈인 소심한 선규가 ‘사춘기’의 주인공들이다.
‘사춘기’는 단순한 성적 호기심만이 아니라 미성숙함, 혼란, 치기 등 사춘기의 여러 모습을 이야기한다. 불행한 가정환경으로 마음을 닫은 영민, 지나치리만큼 순진한 수희는 얼핏 보면 일일 연속극에나 나올법한 작위적 캐릭터다. 하지만 솔직하지 못하고 감정을 내보이길 두려워하는 이들의 모습은 누구나 경험하는 사춘기의 초상이다. 관객들이 이 다소 어둡고 극적인 공연에 몰입할 수 있는 이유다. 더구나 ‘사춘기’는 결코 우울하기만한 뮤지컬은 아니다. 발랄하고 소란스러운 고등학생들의 생활상이 에너지 넘치는 춤과 노래로 표현된다. 고등학생들이 실제로 쓸 법한 걸쭉한 욕에 객석에서는 폭소가 터진다.
주인공 세 사람 외에도 주변 인물들의 심리가 복잡하게 얽혀 들어가는 이 공연에서 이희준 작가, 김운기 연출을 비롯한 제작진들은 뮤지컬의 모든 요소를 노련하게 이용한다. 한 곡의 뮤지컬 넘버 안에 두 장면이 오버랩 되고 몇 단계의 감정변화가 멜로디를 따라 흘러간다. 세트나 소도구 하나 없이 텅 비어있던 무대는 공연이 시작되면 영상과 조명, 그리고 배우들의 움직임으로 채워지게 된다. 온라인 공간이며 캐릭터들의 심리상태 등이 별다른 화려한 장치 없이도 효과적으로 시각화된다. 삼면을 객석으로 사용해 시야에 따라 이야기의 다른 면을 볼 수 있다는 점도 이 공연의 특징이다. 초연에 이어 재공연에서도 어김없이 생겨난 ‘사춘기’ 마니아들은 자리를 바꿔가며 수십 차례 재 관람한 경우도 많다고 한다.
영민 역의 오승준, 선규 역에 더블 캐스팅 된 에녹, 배승길 외 8명의 배우들 중 소위 스타배우라 할 만한 이는 없지만, 하나같이 탄탄한 실력과 매력을 갖췄다.
[뉴스테이지=이현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