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Q&A]헤밍웨이가 왜소 콤플렉스?

2009-09-17     뉴스관리자
[소비자가만드는신문] 40대 중반인 A씨 부부 등 몇 부부가 술자리를 같이 했다. A씨는 취기가 오르자 매일 성관계를 한다며 엄청난 정력을 자랑한다. 그의 이야기에 친구들은 부러움이 가득한 시선을 보냈다.

필자도 A씨 부부와 술자리를 함께 한 적이 있다. 아니나 다를까. A씨는 술자리가 무르익자 아내가 옆에 있음에도 자신의 강한 정력에 대해 침을 튀기면서 말했다. A씨가 화장실에 잠깐 간 사이, 그의 아내에게 물었다.

취기가 제법 오른 A씨 부인 왈, "매일 가랑비가 소리 없이 왔다가 옷만 적시고 가더라구요"

많은 남성들은 자신의 성능력에 대해 뻥튀기를 하는 경향이 있다. 성 컴플렉스가 심할수록 과대 포장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의 소설가 헤밍웨이는 대표작 '노인과 바다'로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세계적 거장인 헤밍웨이도 오랫동안 무명과 가난 사이에서 고통을 받았고 심지어 파리 체류 시절에는 공원의 비둘기까지 잡아먹기도 했다.

그는 19세에 간호사인 아그네스와 사랑에 빠지지만 거절당해 깊은 상처를 받는다. 그런데 그가 퇴짜를 맞은 이유는 왜소음경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그의 음경 크기는 새끼손가락보다 작았다고 한다. 그의 왜소 음경 콤플렉스는 여러명의 여자를 정복하고자 하는 '성 과잉증'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헤밍웨이는 지독한 성욕 때문에 나중에는 약물을 복용해야 했다. 그는 매우 쾌활한 성격의 소유자이면서 열정적이었고 남에게 헌신적이었지만 내면에는 왜소 콤플렉스가 마음속 깊게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네 번이나 결혼한 헤밍웨이는 행복하지 않았고 우울증을 앓아 결국 엽총으로 자살한다.

헤밍웨이는 음경왜소증 콤플렉스는 문학의 열정으로 승화되는 계기도 됐다. 5분이면 시술하고 바로 성생활이 가능하며 흔적도 남지 않는 쁘띠음경확대술이 성행하는 오늘날 헤밍웨이가 살았다면 과연 작가로서 성공했을지 궁금하다.

도움말=웅선 성의학클리닉 홍성재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