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 없이 전화로 돈 이야기 99.99%가 '사기'
금융기관사칭ㆍ납치ㆍ인질 으름장…고약한 메시지도 갈수록 지능화
2007-04-17 백상진 기자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과 금융감독원, 인터넷 포털사이트 등에는 피해사례와 ‘사기전화를 조심하라’는 내용의 글들이 새까맣게 올라오고 있다.
은행, 신용카드사 등 금융기관을 공공연하게 사칭하는 것은 물론, 문자메시지를 통한 전화사기에, 가족 또는 친구가 납치됐으니 돈을 보내라는 등 수법이 날로 교묘해지고 있다.
전화사기 수법도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아르바이트생을 고용, 전화사기 행각을 벌이는 사례까지 등장하고 있다.
전화사기의 경우 추적이 잘 되지않는 인터넷 전화나 국제전화, 초·중·고교 자녀에게까지 보급된 휴대전화를 범죄에 이용하는 점이 특징이다.
최근의 피해 사례와 수법을 유형별로 정리한다.
◆금융기관 사칭=회사원 황철하(34·경기 안산시 원곡동)씨 가족은 이달 들어 몇 번이나 집으로 걸려온 이상한 전화를 받았다.
“○○은행에서 카드결제가 200만원 연체되었으니 연락을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바로 연락을 취해보니 다짜고짜 신원 확인을 위해 주민등록번호를 물어봤다. 그런 통장이 없다고 하자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전형적인 전화사기라고 판단했다.
황 씨는 “무심코 그런 통장이 있다고 하고, 주민번호를 대면 어떻게든 당한다”며 “이런 전화를 받으면 기본적으로 발신자의 신원을 먼저 확인해보라”고 조언했다.
그는 또 “시간적 여유를 갖고 잠깐 있다가 전화해 달라고 요청했을 때 끊지 않고 급박한 상황 얘기를 해서 끊지 못하게 하거나 전화번호를 남겨달라고 할 때 바로 끊으면 사기전화가 분명하다”고 경험담을 털어놨다.
아이디 ‘sweetlove12'란 네티즌은 지난 3월 30일 “△△은행입니다. 156만원의 카드 연체비가 있습니다. 빠른 결제를 부탁드립니다. 다시 듣기를 원하시면 1번을, 상담원과의 연결을 원하는 9번을 눌러주세요”라는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인가 싶어 9번을 눌렀다. (가짜) 상담원이 이름을 물어보더니 유명 백화점 이름을 대면서 연체 내역을 설명했다.
사용한 내역이 없다고 하자 상담원은 “그럼 아마도 카드도용인 것같다”며 자세한 조회를 위해 주민등록번호, 핸드폰번호를 물어봤다.
그러고는 경찰쪽으로 신고를 해준다며 전화를 끊었다. 조금 뒤에 경찰청이라고 하면서 (가짜) 전화가 왔다. “신고를 받고 전화를 했다. 조치를 취해주겠다. 자주 사용하는 은행계좌번호와 통장잔액 등을 알려달라”고 했다.
sweetlove12는 “뉴스에서나 보던 일을 우리집이 겪고 나니 황당하고 화가 났다”며 “전화로 연체알림이나 개인정보를 묻는 전화는 무조건 끊고 직접 관련업체로 전화해서 확인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말했다.
◆허위 납치·인질 사기=네티즌 ‘kjs41818'은 지난 10일 알지도 못하는 번호로 여러번 전화를 받았다. 받으면 아무 말이 없다가 바로 끊어지고, 끊어진 직후에 계속 전화가 왔다.
이런 일이 몇분간 계속 되던 중 집에서 전화가 왔었다는 ‘캐치콜’이 날아왔다.
집으로 전화를 하려는데, 정체 불명의 전화번호들로부터 전화가 계속 걸려오는 바람에 통화를 하지 못했다.
할 수 없이 옆에 있던 동료 직원의 핸드폰을 빌려 집에 전화하니, 어떤 젊은 사람이 아들의 이름을 대면서 “지금 자기들한테 잡혀있다”고 말했다.
이유인즉 선배 보증을 섰는데, 그 선배는 일본으로 나르고, 그 돈을 받기 위해 감금해 두었으며, 살리고 싶으면 돈을 보내라는 것이었다. 전화하는 도중에 옆에서 살려달라는 소리와 우는 소리까지 들렸다.
kjs41818는 “다행히 회사 동료의 전화를 빌려 부모님 핸드폰으로 전화를 해서 통화를 했기에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더라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 지 모를 일”이라고 한 숨을 쉬었다.
화가 나서 찍힌 전화번호로 통화를 해보았지만 계속 통화중이었다. 참고로 kjs41818의 핸드폰에 찍힌 번호는 0900-0355, 0900-0663 등 인터넷 전화번호 2개와 02-3784-0782, 02-3432-0663, 02-3784-0781, 02-3432-0645등 서울 전화번호 4개였다.
또 학생 tvx2047은 지난 8일 학교에서 집에 도착한 후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한 남자가 아빠 이름을 대면서 “□□□집 맞느냐”고 한 뒤 “아빠가 돈을 안갚아서 지금 데리고 있다. 네가 갚을 수 있느냐. 어떤 관계냐”고 다 물어보는 것이었다.
무섭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엄마에게 연락해봐야 하니까 1시간 후에 전화를 달라”고 하자 그 쪽에서 “1시간 후면 너희 아빠는 어떻게 되어 있을지 모른다”고 겁을 줬다.
그러면서 자신과 어머니의 핸드폰 번호를 물었다. 겁을 먹은 상태라 이것저것 생각할 틈이 없었고, 거기에 아빠가 있다는 말을 듣고 불안해서 알려주었다. 그날 따라 어머니가 핸드폰을 집에 두고 나가셨다.
핸드폰 통화를 확인한뒤 집 전화를 끊고, 휴대폰을 켜고 집 근처 놀이터로 나오라고 했다. 휴대폰을 끄면 아빠를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아파트를 나가는데, 마침 집 앞에 이웃집 아주머니가 계셨다. 어머니의 핸드폰에 친척의 전화번호를 찍어주며 전화를 걸어달라고 건넸다.
그런데 어머니의 핸드폰도 통화중이었다. 그 쪽에서 허튼 수작 부리지 말고 놀이터에서 통화만 하고 있으면 된다고 했다.
한참을 집 앞에서 휴대폰 붙들고 있는 사이 동네 아주머니가 아시는 분에게 연락을 했고, 그 분들과 함께 놀이터로 나갔다. 아파트에 사는 친구도 tvx2047를 발견하고 달려왔다.
20여분 정도 그곳에 서 있는 사이 친구 핸드폰으로 아빠의 전화가 왔다. 택시운전사인 아버지는 일하는 중이었고, 잡히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복받쳤던 울음이 터져나왔다.
전화번호는 00700-000으로 인터넷 전화였다. tvx2047는 “요즘 학생들이 핸드폰을 많이 갖고 있는 것을 이용해 사기치는 사람들이 있는 것같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문자메시지 통한 전화사기=서울에 사는 K(여·36)씨는 최근 핸드폰으로 “미국 00백화점에서 330만원 결제됐습니다. 사용내역을 확인하시려면 통화버튼을 누르세요”라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K씨는 해외에 나간 적이 없기 때문에 신용카드가 부정사용됐다고 판단, 항의를 하기 위해 통화버튼을 눌렀다. 상담원과 통화를 원하면 2번을 누르라는 안내가 나왔다.
대부분 콜센터의 직원이 여성인 것과 달리 남자가 전화를 받았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에 전화를 끊었다.
이에 대해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이런 문자메시지가 무작위로 뿌려지고 있다”며 “새로운 전화사기 수법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밝혔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최근 2주 사이에 이같은 전화사기 피해사례만 30건 접수되었으며, 신고건수가 계속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