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연극 ‘거리의 사자’ 연출 문삼화

‘존재하기’를 멈추고 ‘살아가기’

2009-09-17     뉴스관리자

연극 ‘거리의 사자(Lion in the streets)’가 유씨어터에서 공연되고 있다. 작품은 17년 전 살해당한 이조벨이 자신을 죽인 사자를 찾는 이야기다. 문삼화 연출은 처음 대본을 접했을 당시의 감정에 대해 입을 열었다. “정말 오랜만에 숨 막히게 빨려 들어간 대본이었어요. 강렬한 느낌과 이야기의 구조가 좋았죠. 스토리텔링 구조, 즉 기승전결이 아니거든요. 너무 사실주의적인 리얼리즘의 구조도 아니었고요. 그런 것을 싫어하는 것이 아닌데 방송 등의 다른 매체에서도 충분히 잘하고 있잖아요. 연극만이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싶었어요.”

이 공연은 챌머스상을 수상한 캐나다 현대작가 ‘쥬디스 톰슨’의 작품이다. 다민족국가인 캐나다에서는 계층문제, 언어문제가 중요하게 다뤄진다. 문삼화 연출은 한국의 무대에 오르기에 적절하지 않은 부분들을 조절했다. “한국 공연이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빼낸 부분이 있죠. 원작에서는 이조벨이 브라질 이민자에요. 대사도 브로큰잉글리시로 되어있어요. 이민자의 아이가 떠돌아다니는 게 중요한 메타포인 것 같은데 어쩔 수 없었죠. 동성애 코드 등도 아이디어만 넣어놓고 강조하지는 않았어요.”

공연장에 들어서는 관객들을 압도하는 거대한 계단들은 연극 ‘거리의 사자’ 무대만의 특징이다. 모던하고 절제된 무대와 의상의 모티브를 물었다. “판화작가 애셔(Escher)의 그림이 모티브에요. 그의 작품에 나오는 계단이 평범한 것 같은데 굉장히 묘해요. 자세히 보면 아무 곳도 가지 않고 뱅뱅 돌기만 하죠. 무대 디자이너가 그 그림에서 아이디어를 얻었고 저도 바로 마음에 들었어요. 연출 할 때 등퇴장은 언제나 골칫거리인데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극 중에서 이조벨은 굉장히 독특한 아이로 표현된다. 극 초반에서는 자신이 죽은 사실을 모르고 마을을 떠돌아다니면서 자신을 집까지 보내줄 사람을 찾는다.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이조벨은 자신을 죽인 사자를 찾아다닌다. 사자라고 느껴지는 사람에게 ‘죽여버려’라고 외치는 모습은 보통 꼬마의 이미지와는 다르다. 문삼화 연출은 이조벨과 사자에 대해 설명했다. “이조벨은 2막에서 성숙해져요. 많은 장면 속에서 자신을 죽인 사자를 밝혀내려고 하다가 먹고 먹히는 사람들 간의 관계를 보게 되죠. 그 누구도 단지 사자인 사람은 없어요. 마지막 장면에서 사자를 정작 만났을 때 이조벨은 용서를 하려고 노력을 하게 되죠. 나를 죽인 사자지만 그도 나름의 상처를 가지고 있었으니까요. 물론 용서가 쉽지는 않겠지만요. 극의 메인은 이조벨이에요. 각 장면이 워낙 강하다 보니까 이조벨을 잊더라도 금방 깨달을 수 있게 끈을 당기는 작업을 계속 해나가고 있어요.”

문삼화 연출이 이 작품을 통해 관객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것을 무엇일까. “왜 죽은 애가 우리의 삶을 들여다보고 있을까. 우리가 죽은 애보다 더 생기 없이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고통 때문에 짓눌려서 찌부러져서 그런 것 같아요. 관객들이 극을 보면서 ‘과연 누가 살아있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계속 가졌으면 해요. 이 극에는 삶과 죽음이 섞여 있죠. 경계선이 없다는 것은 안전장치가 없다는 의미에요. 마이클 잭슨의 노래 ‘Heal the World’에서 ‘We stop existing and start living’이란 구절이 있어요. ‘존재하기’를 멈추고 ‘살아가기’를 하자는 거죠.”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연극 ‘거리의 사자’는 9월 27일까지 유씨어터에서 공연된다.

[뉴스테이지=백수향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