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최성원, 원액의 진정성만을 담은 눈동자
뮤지컬 ‘더 매지션스(The Magicians)’를 통해 진짜 삶을 보여준다
2009-10-13 뉴스관리자
이성적 냉철함보다는 일종의 즉흥성과 순간적 용기, 열정의 영역에 들어있는 단어들이 있다. 이를테면 열정, 사랑, 방황, 청춘과 같은 단어들. 우리 삶 어느 지점에서 눈이 멀도록 빛나고 있는 그 단어들은 언제 시작되는지도 모르게 다가온다. 그리고 그만큼 언제 가는지도 모르게 빠른 속도로 지나가버린다. 여기, 그 찰나의 순간을 마법처럼 그려낸 뮤지컬이 있다. 그리고 그 청춘의 끝자락을 붙잡고 있는 재성이 있다. 절정의 순간에서 차갑게 돌아서버리는 로맨틱, 그 애절함을 간직한 배우 최성원이 재성으로 관객과 만난다.
배우 최성원은 소나기의 순수한 소년에서 서로마제국 왕자 피핀의 방황을 지나 이집트의 명민한 옥타비아누스를 연기했다. 그리고 2009년 낯익으면서도 낯선 이순신을 건너 진짜 삶의 리얼한 아픔에 속해있는 뮤지컬 ‘더 매지션스(The Magicians)’의 재성에 닿았다.
▶ 나는 무대 위에서도 진짜 삶을 산다
뮤지컬 ‘더 매지션스(The Magicians)’는 송일곤 감독의 영화 ‘마법사들’을 원작으로 한다. 극중 재성은 마법사밴드의 드러머이자 카페 주인이다. 기타리스트였던 연인 자은의 죽음을 잊지 못한 채 그녀와의 추억이 있는 숲 속의 카페를 인수해 살고 있다. 재성 역의 최성원은 ‘진짜 우리’의 모습을 입는다. “기존의 로맨틱 코미디 등 보이는 사랑이야기가 밝고 유쾌했다면 이 작품은 그 경쾌함의 분위기와 다르다. 사랑의 아픔, 슬픔, 고통 속으로 더욱 깊게 들어간다. 20대 후반 30대 초반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정말 흔하디흔한 청춘들의 예쁜 사랑이 아닌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다.” 영화 ‘마법사’들은 몽환적이면서 어둡다. 이 영화는 편집 없이 한 쇼트 안에서 현재와 과거를 번갈아 비춘다. “우리는 조명 등을 통해 보이는 몽환적 분위기보다 영화 ‘마법사들’이 가지고 있는 사랑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다. 어두워질 수 있는 분분들을 네 명의 주인공 외에 스님이나 멀티 역을 통해 조금 순환시켰다.” 그는 실질적 경험이 없음에도 연인의 죽음으로 인한 상처를 안은 재성이 낯설지 않다고 말한다. “내가 이상한건지 모르겠지만 누구나 내가 비련의 주인공이라면, 생각을 가끔씩 할 것 같다. 나와 결혼을 했거나 결혼을 약속했던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다면 어떨까, 내가 그런 비련의 주인공이라면 어떨까 하는 것은 오래전부터 생각 해왔던 부분이다. 이 작품을 만나게 됐을 때 그동안 생각했던 것들을 많이 반영하고 보여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와의 헤어짐은 대부분의 경우 아쉬움이나 상처로 다가온다. 배우 최성원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관계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믿음과 인내라고 말한다. “믿은 만큼 더 상처가 큰 것 같다. 개인적인 경험만을 이야기하지면 그래서 더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 문을 닫게 되는 것 같다. 서로 사랑한다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말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오랜 세월을 다른 환경에서 서로를 모른 채 살았는데 그에 따른 갈등과 개인차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이해하려는 마음과 인내가 필요하지 않을까. 고통도 참을 수 있는 인내, 모든 것은 인내라고 생각된다.” 노력이나 경험에 의해 인내가 많이 생겼는지 물었다. “그렇다. 그런데 사랑보다는 사회생활에 대한 인내가 많이 생긴 것 같다. 지나고나니 이성을 만나는 것도 사회생활의 일원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라는 게 결국 사람을 만나는 곳이지 않나.”
앞으로 달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서서 지나온 시간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최성원, 그가 생각하는 인간 최성원은 아직 청춘일까. “청춘이고 싶다. 내가 배우로서 가장 실수한 것은 내 관리를 못하고 있다는 거다. 나는 내가 아직 청춘이라고 생각하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몸이 너무 힘들다. 나이 서른셋이 많은 것도 아닌데 몸이 축나서 골골하고, 사람 만나는 게 뭐가 그렇게 좋다고 늦게까지 함께 있는지.” 믿은 만큼 받은 상처가 컸던 최성원은 그럼에도 결혼을 꿈꾼다. “사람을 만나는 것에 있어서 스스로 통제하기 힘들다면 핑계거리라도 있어야하지 않나. 이 역마살 낀 듯한 성향을 잡아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면 잃어버린 나의 청춘도 다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웃음).” 결혼이 하고 싶은지 물었다. “정말이지 너무너무너무 하고 싶다. 안한 게 아니라 못한 거다. 일단 그동안의 연인들과 다 헤어지게 됐으니 임자가 아니었던 것 아닌가.”
뮤지컬 ‘더 매지션스(The Magicians)’는 지난 아픔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는 인물들의 외로움과 후회, 고독을 그려낸다. 청춘이라 부를 수 있는 그 지점을 돌아봤을 때 누구나 후회 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배우 최성원은 후회보다 그것이 자신임을 인정하는 법을 택했다. “나의 좌우명 같은 것이기도 하다. 아쉬워는 해도 절대 후회하지 말자라는 것. 설사 큰 죄를 지었더라도 후회하기 전에 무조건 책임을 지자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아쉽고 다시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그렇지만 그 시간을 통해 지금의 나로 조금 더 성장하고 성숙하지 않았나 싶다. 옛날과 지금 나의 모습을 비교하자면 가장 부러운 건 아까 말했던 대로 몸 관리다(웃음).”
▶ 아픔, 나는 그것과도 소통하기를 원한다
▶ 최성원은 현재 뮤지컬 ‘더 매지션스(The Magicians)’ 준비 외에도 뮤지컬 ‘영웅을 기다리며’ 공연 중에 있다. 뮤지컬 ‘영웅을 기다리며’에서 이순신 역을 맡은 최성원은 구수한 사투리와 걸쭉한 욕설을 내뱉으면서도 따뜻함을 지닌 인간 이순신으로 등장 한다. 두 역할의 병행이 힘들 것 같았다. “두 작품을 더블플레이로 진행하기 시작했던 초창기 때는 굉장히 힘들었다. 이제는 몸에 익숙해졌는지 매일의 작품에 임하는 마음가짐, 그리고 호흡을 빨리 바꿀 수 있는 요령과 집중력이 생긴 것 같다. 배역에 대한 생각만을 가지고 집중을 하다보면 혼란 등은 별로 없다.” 그럼에도 두 작품을 병행하는 것은 육체적으로 힘든 일이 분명하다. 지금 이 시점에서 뮤지컬 ‘더 매지션스(The Magicians)’를 택한 이유에 대해 물었다. “배우생활을 하다 보니 창작, 초연 작품에 대한 욕심이 많이 생겼다. 내가 만들어가고 또 분석하고. 흔한 비유로 자기 자식 열 달 동안 뱃속에서 키우고 있다가 세상에 내놓는 느낌과 비슷하다. 그래도 조금 반신반의했으나 영화를 보고 도전의식이 많이 생겼다. 영화가 가진 자체적 분위기도 매력적이지만, 저것을 어떻게 무대 위에서 표현해낼까라는 호기심이 생겼다. 더불어 어떻게 하면 내가 잘할 수 있을까라는 도전의식도 많이 생긴 것 같다.” 함께 연기하는 배우들 역시 호기심 동시에 캐릭터에 대한 애정과 연민으로 작품에 임하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자은 역의 베니와 명수 역의 여운은 가수 활동을 하고 있다. “누구나 한번쯤 가슴 아픈 사랑을 해봤고 이 캐릭터들과 비슷한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누가 죽고 안 죽고의 문제가 아니라 주관적 입장에서는 자기가 겪은 사랑의 상처가 굉장히 크다고 느낄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런 부분에 있어서 배우들끼리의 공감대가 많이 형성됐다. 직접 악기를 연주해야한다는 부분에 있어서는 여운이나 베니 등 현재 가수로 활동을 하고 있고 악기를 다뤄본 유경험자이기 때문에 작품 안에 잘 녹아드는 것 같다. 무대 위의 테크닉 등은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어려울 수도 있었지만, 그래서 연습을 하는 거니까. 다들 매력적으로 비춰질 것 같다. 오히려 내가 제일 걱정이다.”
그는 ‘주인공이라 재미가 없나보다’고 이야기하지만 최성원의 출연은 뮤지컬 마니아들이 이 극을 선택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재성이라는 캐릭터가 주는 가장 큰 메리트는 이 극의 중심이라는 것이다. 재성을 중심으로 한 인맥들의 관계다. 이는 남자 주인공이라는 타이틀로 보일 수 있지만 다르게 보면 가장 밋밋한 캐릭터다. 명수는 누군가를 현재 짝사랑하고 있는 진행형의 사람이고, 우리 밴드의 곡을 만든다. 또 하영에게 곡을 선물하는 등 사건이 많다. 반면 하영은 자은이 자신 때문에 죽었다는 죄책감으로 인해 보컬임에도 노래를 하지 않는다. 자은은 죽은 후에도 극에 나오는 등 다들 특별한 캐릭터다. 정작 나는 그런 게 없다. 물론 나 스스로 나만의 재성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많이 노력했고 찾기도 했다.”
스님과 멀티 역 또한 각자의 아픔과 에피소드를 갖고 나온다. 그는 여섯 명의 캐릭터 모두가 관객과 소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예전에 했던 ‘알타보이즈’라는 작품이 떠오른다. 수많은 관객이든 시청자든 자신이 공감하고 좋아하는 캐릭터는 다 다르다. 여자주인공과 남자주인공이라는 대표적 인물들에 대한 관객의 관심과 응원이 아니라 보는 사람에 따라, 개인적 상황이나 심리, 경험에 의해 모든 인물들이 살아날 수 있는 공연이다.” 그는 재성에 대한 분석 외에 악기와의 전쟁을 치렀다. 뮤지컬 ‘더 매지션스(The Magicians)’는 출연 배우들이 직접 악기를 연주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에서 피아노를 다뤘던 경험이 있는 최성원은 이번 뮤지컬에서 드럼을 친다. “처음에는 많이 겁났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행히도 잘 소화했다. 그 난이도는 피아노와 비슷한데 드럼이 조금 더 어려운 것 같다. 지금도 걱정이 되긴 한다. 내가 민폐 끼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에. 뮤지컬에 있어서는 선배라 할지라도 악기를 연주할 때는 제일 막내라는 느낌으로 한다.” 늘 자신 있는 무대를 선보이기 위해 늘 연습하는 그는 언제나 준비된 배우다. “배우는 늘 준비돼 있다. 나는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 배우들은 밤을 새서라도 어떻게든 만들어낸다. 사람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아무도 모르지 않나. 무대 위에서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게 된다. 첫 공연 때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날 때도 있다. 연기를 죽어라 못했던 사람도 첫 무대에서는 이상하게 잘한다. 조명 받고 오히려 흥분해서 문제지.”
▶ 나는 나를 돌아보며 성장한다
“작년 12월부터 올해 5월까지 뮤지컬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5, 6개월 정도를 쉬었다. 그때 많은 생각을 했다. 무엇이 그렇게 급했는지 너무 앞만 보고 달려 온 것 같았다. 그동안 참여했던 공연의 대본이나 악보, 자료들을 보며 그때의 순수하고 풋풋했던 열정을 많이 생각했다. 지금은 자꾸 분석을 하려하는 등 너무 업으로만 생각을 한 것이 아닐까 하는. 그 후 생각이 바뀌어 매일의 공연을 즐겁게 하려고 한다. 내가 즐거워야 관객도 즐거울 테니까. 나는 한 작품을 몇 달씩 공연하지만 처음 관람한 관객도 있을 수 있는데, 누군가에게는 생에 첫 뮤지컬일수도 있는데 이렇게 해서 되겠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숙한 만큼 무대 위에서 자유로워지는 배우 최성원은 이제 한껏 가벼워진 걸음으로 무대에 선다. 인간 최성원 대신 마법사밴드의 완벽한 재성을 보여줄 그가 기대된다. “예전에는 나를 보여주려는 모습이 많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가지 경험과 고민 속에 얻어진 여유가 생겼고 시야도 점점 넓어졌다. 이제는 무대 전체를 보려고 노력한다. 주인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에게 맞는 배역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이제는 후배들과 공연할 기회가 많아지다 보니 책임감도 생겼다. 이러나저러나 나는 무대 위에서 행복하다.”
[뉴스테이지=이영경 기자,사진 강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