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억원짜리 CI '화약통 성격' 한방으로 날린 김승연
감옥생활 등 숱한 위기 겪었지만 이번 '보복폭행'이 가장 '화끈'
2007-04-30 장의식 기자

한화그룹 김승연(55) 회장이 둘째아들을 폭행한 술집 종업원들을 경호원을 대동해 직접 보복 폭행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김 회장에 대한 세인들의 관심이 깊어지고 있다.
특히 인터넷에서는 '그룹 회장이 무슨 조폭이냐''정경유착이 아니라 조(폭)-경(제)유착이다' '그 아버지에 그아들'등등 비판적인 댓글이 퍼지면서 김회장의 성격과 가족등 개인사에대한 궁금증이 커져가고 있는 상황이다.
그룹 직원들도 “얼굴들고 다니기가 챙피하다”며 할말을 잃고 있다.
한화그룹은 재계 순위 12위의 막강한 기업. 그러나 예전부터 김승연 회장의 외환관리법 위반과 해외 호화저택구입, 동생인 김호연 빙그레 회장과의 법정싸움등으로 개인적인 이미지가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은 점이 그룹 이미지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분석, 올초부터 150억원의 거액을 들여 그룹 이미지 개선작업을 의욕적으로 추진해왔다.
그러나 결국 이번 김회장의 엽기적 돌출 행동으로 모두 물거품이 돼버렸다.

재계는 김회장의 이번 아들 보복 폭행사건이 두가지 관점에서 단초가 됐다고 분석하고 있다.
불같은 성격과 아들에대한 과도한 애착이다.
김회장은 평소에도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로 재계에 이름나 있다. 한화의 옛이름은 한국화약. 1952 년 故 김종희 회장이 창업한 다이너마이트 제조업체가 모체다.
이 때문에 주변에선 김회장의 불같은 성격을 빗대여 '다이너마이트 김'이라고 부르고 있다.
예전 그룹 회의에서 담배를 피우던 전직 장관 출신의 계열사 사장에게 재떨이를 집어 던졌다는 일화는 아직도 한화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이번에도 아들이 맞은 사실을 알고 욱하는 성격에 경호원들을 이끌고 직접 대응했던 것으로 재계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자식에대한 과도한 애착도 세상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김회장은 3공시절 내무장관을 지낸 서정화 전 장관의 딸인 서영민씨(46)와 1982년 결혼해 동관(23) 동원(21) 동선(18) 3남을 두고 있다.
부인 서씨와는 무려 9살 차이다.서씨가 서울대 약학대 3학년 재학중일때 결혼했다.
큰 아들 동관씨는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공군에 복부하고 있고, 둘째 아들은 예일대, 셋째 동선군은 승마로 유명한 미국 태프트 스쿨에 재학 중이다.
김회장의 자식에대한 애착은 작년 부인 서영민씨와 함께 국가 대표 승마선수로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막내 동선씨를 직접 카타르도하까지 찾아가 응원하는 모습으로 세인으로 관심을 크게 끌기도 했다.
김동선은 마장마술 단체전에서 평균 62.278%를 얻어 출전 선수 25명 가운데 9위에 그쳤으나 팀의 다른 선수들 선전으로 당당히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김회장은 아들이 말을 타고 경기장을 돌자 박수를 치고 V자를 그리며 아들의 선전을 축하했다.
이번에 북창동 술집에서 폭행사건을 일으킨 아들은 둘째 동원씨. 동원씨가 술집 종업원들에 맞아 눈부위가 찢어진 것을 보고 부정(父情)과 불같은 성격이 함께 솟구쳐 보복 폭행길로 나섰을 것으로 그룹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김회장은 이번 아들 사건외에도 그동안 몇번의 스캔들로 유명세를 치뤘다.
김회장은 1981년 약관 29세의 나이에 국내 재계 사상 최연소 그룹회장으로 ’한국화약그룹’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올해로서 그룹 회장 취임 26년째를 맞고 있다.
김회장은 회장 취임 이후 명성그룹, 태평양건설, 경향신문 등 당대의 기업들을 손에 넣으면서 승승장구했다.그러나 태평양건설과 삼희종합금융이 침몰한 뒤 1997년 외환위기로 침몰 일보직전까지 갔다.
여기에 외환관리법 위반 혐의로 영어생활도 했다.해외에 호화저택을 구입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또 동생인 김호연 빙그레 회장과의 재산권 다툼으로 3년동안 법정소송도 벌인 일도 유명하다.
한화의 창업주인 고 김종희 회장은 1981년 타계하면서 승연-호연 두 아들의 지분 분할에 대한 명확한 유언을 남기지 않았다.
처음에는 두형제간 역할 분담 구도에 별 문제가 없어 보였지만 1992년 분가 과정에서 뒤늦게 일이 터졌다.
김호연 빙그레 회장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한화유통 경영에서 밀려난 데 반발해 형을 상대로 재산권 분할 소송을 제기한 것. 이 송사는 30여 차례나 재판을 벌일 정도로 지루한 공방으로 이어졌지만 1995년 어머니 강태영 여사의 칠순 잔치를 계기로 화해했다.
이번 보복 폭행사건으로 한화그룹은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다.그룹 회장이 어려운 형편의 술집 종업원들을 무자비하게 폭행한데대한 사회적 반발심이 커지고 있다.
지난 반세기 숱한 우여곡절을 겪으며 국내 10대 재벌의 반열에 오른 한화그룹이 또 한번 김회장의 개인 스캔들로 휘청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