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스파이 '국부유출'피해 100조원+무한대?

2007-05-01     헤럴드경제
#1. 2003년 5월. A사의 반도체 생산 공정 프로젝트 업무를 총괄하다 퇴직한 B씨는 동료 연구원 5명을 포섭, 중남미 케이만 군도에 반도체 전문 제조업체를 페이퍼컴퍼니(명목회사)로 설립하고 A사의 공장 설계 자료와 제조 공정 기술 관련 자료 일체를 복사, 반출했다.

이들은 국내외 투자설명회를 통해 12억달러의 투자 유치를 하고 중국 현지 공장에서 플래시메모리를 생산하려 했지만 공장 설립 직전에 적발돼 모든 계획이 무산됐다.

#2. 반도체 제조업체 C사 책임연구원인 D씨는 회사의 경영 악화로 5년간 급여가 동결되자 불만을 품고 동료 연구원 3명과 함께 미국 E사를 방문, 취업 여부를 확인한 뒤 동시에 사표를 제출했다. 이들은 C사의 반도체 공정 핵심 기술 20기가바이트(GB)를 반출, 보관하다가 적발됐다.

산업스파이가 기승을 부리면서 유출될 뻔한 고급 기술 규모가 100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되고, 이를 훌쩍 뛰어넘는 금액이 이미 유출됐거나 지금도 암암리에 해외 시장에 넘겨졌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국가 간 기술경쟁이 격화되면서 엄청난 규모의 연구비용과 시간, 인력 등이 투입된 국내 핵심 산업 기술을 몰래 빼앗아가는 산업스파이는 더욱 늘고 있다.

국가정보원 산업기밀보호센터에 따르면 2003~2006년 국내 기업에 대한 해외 기술 유출 적발 사건은 총 92건으로, 금액으로 환산하면 95조9000억원에 이른다. 엄청난 규모의 국부가 순식간에 유출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적발되지 않은 피해금액을 고려하면 해외 기술 유출에 따른 피해는 이미 100조원을 돌파한 것은 물론, 수천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의 분석이다. 잃어버린 기술은 ‘100조원+무한대’라는 의미다.

적발되지 않았지만 실제 기술 유출 가능성이 의심되는 경우도 많다. 한국과 경쟁 국가인 대만과 중국의 반도체ㆍLCD 기술은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실제 삼성전자가 현 16개의 반도체 생산라인을 짓는데, 20년이 넘게 걸렸지만 중국은 불과 4년 만에 10개 라인을 건설했다.

국정원 관계자는 “고도의 기술 개발을 요하는 반도체 공장 건설을 중국이 이렇게 빠른 기간 내에 이뤄낼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고 언급했다. 다른 관계자도 “자체 고발ㆍ신고를 통해 이뤄지는 기술 유출 외에는 밝혀내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었다”고 말했다. 서은정 기자(thankyou@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