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설계사.보험사에게 속았다"vs"법대로"

2009-12-03     임민희 기자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임민희 기자] 보험설계사들의 불완전 판매가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보험 가입자가 설계사의 과장 광고, 알릴의무 방해, 사인 위조 의혹을 제기하며 계약무효를 관철하기 위해 보험사와 법정 투쟁을 벌이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소비자는 보험 계약 시 녹취록을 증거로 제시하며 설계사의 불안전 판매에 따른 보험 계약 무효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보험사는 "모집인의 과실을 발견할 수 없다"며 법원에 채무부존재확인소송을 제기했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사는 배 모(여․32세) 씨는 부모님 보험 계약을 위해 AIA생명보험(구 AIG) 소속의 설계사로부터 상품설명(텔레마케팅)을 듣고 2007년 6월 7일 활기찬 노후보험(아버지)과 9월 29일 원스톱 암보험(어머니)에 가입했다. 자신도 어머니와 같은 날짜에 암보험을 들었다.

당시 설계사는 노후보험과 관련해 '진단시점에 치매진단이 내려지면 수술이나 입원을 안 해도 치료 전에 무조건 3천만원을 지급하기 때문에 치료비뿐만 아니라 간병비 자금으로 활용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암보험에 대해서도 '10월부터 보험료가 많이 오르고 보장이 축소된다. 여성들에게 많이 일어날 수 있는 유방암, 갑상선암 등은 보장내용이 빠지던지 10% 밖에 못 받지만 오늘(9월 29일) 가입하면 동일한 보험료로 80세까지 보장된다'는 말에 어머니는 물론 자신도 함께 가입했다.

하지만 설계사의 설명과 실제 보장내역은 전혀 달랐다.  어머니 서명 위조, 배 씨의 청약서 조작 등의 의혹도 불거졌다.


배 씨에 따르면 5년 전 어머니(계약자)가 아버지(피보험자) 명의로 들었던 AIA 다보장 의료보험이 올해 초 실효가 돼 다시 부활시키는 과정에서 보험사로부터 재계약을 위한 고지요구를 받았다. 그는 보험관련 자료를 인터넷에서 찾아보던 중 '계약자와 피보험자가 다를 경우 서명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확인, 보험사에 첫 계약 시 작성했던 청약서를 요청했다. 하지만 보험사는 계약 당시 녹취록도 없고 청약서도 파기됐다며 난색을 표했다. 그는 보험사에 강력 항의하고, 계약무효를 주장해 원금 127만860원을 환불받았다.

배 씨는 이를 계기로 나머지 3건의 보험 또한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됐다. 3건 모두 배 씨가 1회부터 20회 보험료를 납입했기 때문에 당연히 자신이 계약자가 되어 그 보험에 대한 권리를 행사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당시 보험 상식이 취약했던 탓에 설계사의 질문에 별뜻 없이 아버지와 어머니 이름으로 보험을 넣고 납입은 자신이 한다고 얘기했다.

그는 "설계사는 1회부터 보험료를 납입하는 자가 계약자가 된다는 보험 계약의 중요사항을 알리지 않은 채 계약의 구성에도 없는 '납입자'를 지칭하며 '계약자'와 같은 의미로 혼동을 주어 임의대로 계약자와 피보험자를 지정했다"고 주장했다. 현재 3건의 보험 계약자(=피보험자)는 각각 아버지, 어머니, 배 씨로 되어 있다. 

상법639조 3항에 따르면 보험계약자는 보험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 또한 상법 650조 1항에도 보험계약자는 계약체결 후 보험료의 전부 또는 제 1회 보험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배 씨는 보험사에 어머니와 자신의 보험 청약서를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 보험사 측은 가입 직후 아버지에게 계약자 보관용 청약서(배 씨가 계약자와 납입자란에 서명) 사본을 보내준 반면 어머니와 배 씨에게는 계약자와 피보험자가 같고 전화녹취가 청약서와 같은 효력을 갖고 있어 자필서명이 필요 없다며 청약서를 보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배 씨가 이를 문제 삼자 AIA 측은 어머니의 서명(한자)이 들어간 의문의 청약서 사본과 어느 보험사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엑셀로 작업된 듯한 자신의 청약서를 보내왔다.

또한 배 씨는 '활기찬 노후보험'의 무배당 치매보장특약 부분과 '원스톱 암보험'의 여성 질병 보장에 대한 설계사의 설명이 사실과 다르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그는 "설계사는 진단 즉시 무조건 3천만원 지급을 약속했으나 위험률 변경으로 인한 보험료 및 보험가입금액 또는 보험금 등이 변동될 수 있다는 등의 중요한 내용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며 "여성 질병 보장도 2007년 10월 1일 원스톱 암보험 상품요약서와 약관 등을 살펴본 결과 10%만 보장되는 허위판매였음을 확인했다"고 분개했다.

흡연(6개월), 음주(주 2회) 등 계약자가 고지한 사항에 대해서도 설계사가 임의대로 흡연기간을 1년으로, 음주를 주 1회로 늘리는 등 계약녹취와 다르게 기재해 알릴의무를 방해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배 씨는 보험사 측에 설계사의 허위설명 등으로 인해 보험을 체결한 것이라며 계약무효를 주장, 납입한 보험료를 전부 돌려줄 것을 요구했다. 또한 금융감독원에도 이 같은 내용으로 민원을 제기했다. 

이와 관련 금융감독원은 "청약서 상 자필서명 등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보험계약 체결의사가 없었다고 보기는 어렵고 계약체결 후 보험료를 1년 이상 납입한 것 등으로 보았을 때 보험계약을 추인한 것으로 보인다"며 기각했다. 

3건의 보험은 올해 4월부터 보험료 납입을 거부해 7월 1일 실효됐고 보험사는 11월 30일까지 연체 보험료를 모두 납입하면 이자 없이 부활해주겠다는 안내문을 보내왔다. 그러나 보험사 측은 배 씨가 금융감독원의 기각에도 불구, 계약무효 주장을 굽히지 않자 11월 13일 서울서부지방법원에 채무부존재확인소송을 제기했다.

보험사는 모집인의 과실이 없음을 주장하며 배 씨가 납입한 보험료 80만4천600원 중 실효로 인한 환급금 7만2천419원을 제외한  73만2천181원은 지급할 채무가 없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AIA생명 관계자는 "제보자의 주장일 뿐 사실과 다르다"며 "이 보험은 TM상품으로 모든 내용이 전화녹취 되어 있고 확인 결과 모집인의 판매과정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제보자는 4건의 민원을 제기했는데 다보장 보험의 경우 보험사에서 청약서 사본을 계약자에게 우편으로 보냈으나 이를 부인하고 회사에서도 확인이 안 돼 불가피하게 원금을 환불한 것"이라며 "3건의 보험은 보상액수가 400만원에 불과해 제보자를 설득, 원만히 해결하려 했으나 막무가내로 나와 소송을 제기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설계사의 허위판매와 사인조작 의혹에 대해 "자필서명이 필요 없는 TM 계약으로 모든 내용이 녹취되어 있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될 게 없다"며 "제보자의 요청으로 전산청약서를 보냈고, 어머니의 경우 어떤 경위에서 종이 청약서가 발부돼 서명한 청약서가 회사로 발송됐는지 좀 더 조사를 해봐야 겠지만 이 역시 전화녹취를 통해 모든 계약이 이뤄지기 때문에 서명의 진위여부는 중요치 않다"고 의혹을 일축했다. 

하지만 배 씨는 "나는 전혀 들은 바 없고, 아버지나 어머니한테 무턱대고 전화해 약관내용을 빠르게 읽어주고 이해했냐고 동의를 요구한 게 다다"며 "어머니와 내 청약서를 위변조 한 것은 명백한 범죄이기 때문에 반드시 진실을 가려 책임을 묻겠다"고 주장했다.


보험사에서 보내온 배 씨의 어머니 청약서. 배 씨는 설계사의 서명위조 의혹을 주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