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무언극 뮤지컬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
여자의 변신은 무죄
2009-12-28 뉴스관리자
사람을 용감하게 만드는 것 중 하나는 사랑이다. 자신이 오랫동안 고수했던 것들이라고 할지라도 사랑하는 사람의 한 마디에 쉽게 버리기도 한다. 오랜 시간 길러온 긴 머리카락을 서슴없이 자르게 하는 힘도, 천직이라 여기며 목숨 걸었던 직업을 바꾸게 하는 힘도 사랑이다. 여기 사랑 때문에 발레를 포기한 발레리나가 한 명 있다. 비보이를 보고 첫 눈에 반한 그 발레리나는 말 한마디 나눠보지도 못한 비보이 때문에 자신이 사랑했던 발레를 버리고 비보잉을 연습하기 시작한다. 사랑의 힘은 이렇듯 때때로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가능케 하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
발레리나, 사랑에 빠지다
발레리나 연습실 옆에 힙합광장이 조성되면서 발레리나들은 시끄러운 음악소리로 인해 연습에 방해를 받는다. 결국 발레리나 소연은 힙합광장으로 나가 그들과 춤 대결을 펼친다. 서로의 자존심은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다. 대결이 한창 무르익으며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을 것 같은 그 순간, 비보이들이 등장한다. 그 중에서도 유독 소연의 눈길을 잡아끄는 소년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비보이 석윤이다. 첫 눈에 반한 소연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토슈즈를 신은 채 발레가 아닌 비보잉을 연습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사랑에 빠진 소연은 발레를 버리고 비걸이 되기로 결심한다. 결심이 쉽지 않았던 만큼 더 열심히 비보잉을 연마하는 소연은 어엿한 비걸로 거듭나 힙합광장에 나타난다. 관객들은 그녀의 변신에 놀라기 보다는 환호한다.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에서가 아닌 순수한 마음에서 우러난 사랑의 힘이 그녀를 바꾸어놓았음을 알기에 관객들은 더 큰 환호를 보내는 것이다. 그녀가 발레리나로서 무대에 설 때보다 비걸로서 무대에 설 때 더 반짝거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권이 다 무엇이냐
발레는 대중과 친한 장르는 아니다. 비보잉이라는 장르 역시 대중들에게 친숙해진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거리의 춤이라는 점에서 발레와는 비교된다. 발레리나는 일종의 특권층을 상징하고 있다. 한편 광장의 힙합 친구들과 비보이는 대중과 소외계층을 의미한다. 사랑에 빠진 발레리나가 광장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서는 자신의 특권층 포기가 우선시되어야 한다. 발레리나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지만 결국에는 비보이에 대한 사랑으로 특권을 포기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발레리나는 특권이 아니라 그저 일반대중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사랑은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라 하던가. 동화(同化)의 첫걸음은 자신을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것을 대사가 아닌 몸짓으로, 눈빛으로 표현하는 극이 바로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다.
결말을 알아도 다음 장면이 궁금하다?
공연 제목만으로도 스토리 전개가 빤히 보인다면 그 극은 정말 실패일까? 우리가 즐겨보는 드라마 중에서는 욕하면서도 보는 드라마들이 있다. 내용 전개가 궁금해서 시청하기 보다는 다 아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도 다음 장면이 궁금해 시청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 역시 결말이 짐작가면서도 다음 장면이 궁금해지는 공연이다. 그 배경에는 춤꾼들의 열연이 자리하고 있다. 무언극 뮤지컬인 만큼 대사는 없지만 등장인물들의 표정과 행동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특히 발레리나 소연은 극의 중심에 자리해 공연을 이끌어간다. 반면 비보이와 힙합보이, 힙합걸, 팝핀, 락킹을 하는 춤꾼들은 따로 또 같이 번갈아가며 등장, 감칠맛 나는 무대를 선보인다. 관객들은 뮤지컬을 관람하러왔다가 콘서트를 관람하러온 듯한 착각에 빠질지도 모른다. 자신도 모르게 발박자도 모자라 환호성을 지를 테니까.
화려한 조명 아래 펼쳐지는 춤꾼들의 대향연 그리고 비보이를 사랑하게 된 발레리나의 눈물겨운 비걸 되기 고군분투기를 만나고 싶다면 롯데월드예술극장에서 그 현장을 직접 확인하길 바란다. 12월 10부터 시작된 공연은 오픈 런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뉴스테이지=정지선 기자,사진 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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